"정신질환자 강제 입원시키자"…'사법입원제' 뜨거운 논란

정심교 기자 2023. 8. 9. 16: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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故임세원 교수 사망 후 시동 건 사법입원·외래치료명령제

최근 연이은 흉기 난동 범죄로 법무부가 지난 4일 "보건복지부와 협의해 사법입원제 도입 추진을 검토하고 있다"고 밝힌 데 이어 김기현 국민의힘 당 대표도 추진동력에 힘을 싣겠다고 언급하면서 '사법입원제'가 정신질환자들의 뜨거운 감자로 떠올랐다. 의료계에선 2018년 마지막 날 벌어진 고(故)임세원 강북삼성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의 피살 사건을 계기로 사법입원제를 도입해야 한다고 강력하게 주장해왔다. 이와 함께 '퇴원했지만, 치료를 더 받아야 하는' 환자의 치료 공백을 메우기 위해 정신건강복지법에 따른 '외래치료명령제'를 더 강화해야 한다는 게 의료계의 주장이다. 하지만 '인권 침해'를 이유로 환자 단체의 반발이 만만치 않다. 이 제도를 둘러싼 핵심 논란은 무엇일까?

사법입원제도는 '폭력성이 높거나 입원 치료를 받아야 하는' 중증 정신질환자의 입원 여부를 보호자가 아닌, 법원이 판단해 환자를 강제로 입원시키는 제도다. 독일·미국 등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대부분이 이 제도를 시행하고 있다. 우리나라에선 2018년 12월, 임세원 교수가 환자의 흉기 난동으로 사망한 데 이어, 2019년 4월 안인득의 진주 방화·살인사건으로 무고한 시민 5명이 사망하고, 17명이 다치면서 사법입원제 도입을 촉구하는 목소리가 의료계에서 터져 나왔다.

당시 이들 사건의 범인 모두 '치료받지 않은 정신질환자'였다. 2019년 4월 대한의사협회(이하, 의협)는 성명을 내고 "그동안 발생한 정신질환자 범죄의 공통점을 살펴보면, 적절한 시기에 치료받았다면 상태가 호전될 수 있었지만, 치료가 이뤄지지 못해 결국 사람의 목숨까지 빼앗겼다"며 "사법입원제도 도입이 조속히 이뤄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입원'을 강제화한 게 사법입원제라면 '외래'를 강제화한 게 외래치료명령제다. 퇴원 후 치료를 계속 받아야 하는 환자에 대해 지방자치단체장이 집행할 수 있는 '외래치료명령제'는 2008년 3월 당시 정신보건법에 신설됐다. 비자의 입원(강제입원)한 환자 가운데 정신질환 증상으로 자신·타인을 해친 자에 대해 보호의무자의 동의를 받아 시장·군수·구청장에게 1년 이내의 외래치료명령을 청구하는 방식이다. 이후 해당 단체장은 소관 정신건강심의위원회의 심의를 거쳐 외래 치료를 받도록 정신질환자에 명령할 수 있다.

하지만 현행 외래치료명령제는 '유명무실'하다는 지적이다. 보호자 동의 없인 강제력이 없는 데다, 운영 인력도 턱없이 부족해서다. 이에 의협은 "외래치료명령제를 강화하면 입원이 아닌 외래 치료만 꾸준한 잘 받아도 증상이 개선될 수 있는 환자가 치료를 기피하는 것을 차단할 수 있다"며 "이를 통해 정신질환자가 치료를 기피하지 않으면 덩달아 자·타해 위험성을 현저히 줄일 것"이라고 주장한다.

환자들 "강제입원은 인권 침해…지역사회 서비스 늘려야"
사법입원제가 도입되거나 외래치료명령제를 강화하더라도 넘어야 할 '산'이 있다. 먼저 '환자 단체의 거센 반발'이다. 환자의 동의 없는 사법 입원은 인신구속이나 다름없다는 게 이들의 입장이다. 한국정신장애인연합회 이한결 본부장은 "법무부·복지부는 원인이 분명하지 않은 사건에 대해 '이전 치료경력이 있다'는 이유만으로 이를 호도해 개인의 문제로 치부하고 있다"며 "이는 정신질환에 관한 편견을 키우고 치료를 방해해 전국민적 '포비아(공포증)'을 확산하는 결과만 초래할 것"이라고 언급했다.

정신질환 환자 단체는 입원·외래 치료를 강제할 게 아니라, '높은 수준의 정신 의료와 좋은 지역사회 인프라부터 만드는 게 우선돼야 한다'고 주장한다. △15분 이내 짧은 진료 △병상 간 좁은 이격거리 등 의료서비스 수준이 낮아 병원 치료를 받고 싶지 않은 데다 △입원 후 휴대전화 압수 등 △사설 응급이송단의 출동 이후 강제적 포박 등으로 인한 인권 침해 소지가 다분하다는 것이다.

이 본부장은 "정신질환 치료 선택지가 병원에 국한해선 안 된다"며 병원 밖 지역사회에서의 의료 서비스가 구축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예컨대 미국·프랑스 등에서 활성화한 '동료 지원 서비스'를 도입, 확대하자는 것이다. 이 서비스는 정신질환을 공통분모로 회복 중인 동료 환자가, 회복해야 하는 환자의 일상과 감정을 챙겨주며 함께 회복한다는 취지로 만들어졌다. 국내에선 서울시정신건강복지센터가 정신질환자가 동종질환 환자의 자립과 사회적 복귀를 돕는 동료지원가를 2013년부터 지난해까지 93명 배출한 바 있다.

사법입원제가 도입돼도 급성기의 중증 정신질환자가 입원할 병실이 부족하다는 점도 난관이다. 이미 수년째 종합병원 이상 병상이 줄고 있다. 손지훈 서울대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가 조사한 '서울 시내 정신 병상 현황'에 따르면 서울 시내 종합병원급 이상 병원 56곳 가운데 정신건강의학과 입원실을 유지하는 곳은 25%에 불과했다. 이들 병상의 가동률은 상급종합병원이 99%, 종합병원은 95%로 사실상 '만실'이었다. 이 때문에 당일 응급입원이 가능한 병상은 최대 18병상에 불과했다. 지난 6월 한 조현병 환자가 망상 증세가 심해져 병원을 찾았지만 입원할 곳을 찾지 못해 260㎞를 돌아다닌 일이 벌어지기도 했다.

이런 입원 병상 감소는 '낮은 수가'가 주원인으로 지목된다. 대한신경정신의학회에 따르면 지난해 기준 상급종합병원 정신건강의학과의 입원 일당 진료비는 25만134원으로 다른 진료과 평균의 39% 수준에 불과했다.

한편 현재 중증 정신질환자 가운데 치료, 요양 서비스를 받지 않는 환자는 42만 명에 달하는 것으로 집계됐다. 복지부에 따르면 국내 중증 정신질환자 약 50만 명 가운데 정신의료기관과 정신요양시설에서 치료 및 관리를 받는 환자 수는 약 7만7000명에 불과하다.

정신질환은 예방할 수 있으며, 치료를 통해 극복할 수 있습니다. 정신건강에 어려움이 있거나 도움이 필요한 경우, 정신건강복지센터 등을 통해 전문가의 상담을 받을 수 있습니다. 자세한 정보는 국가정신건강정보포털 또는 블루터치 홈페이지에서 확인하세요.

정심교 기자 simkyo@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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