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근 부실시공, 전국 모든 현장에서 일어난다고 단언할 수 있다”

심윤지 기자 2023. 8. 9. 16: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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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 검단 아파트 붕괴사고를 기점으로 ‘철근 누락’에 대한 불안감이 확산하고 있는 가운데, 현장 노동자들은 ‘더 빨리’ ‘더 싸게’를 강조하는 건설현장 관행을 부실시공이 사라지지 않는 원인으로 꼽았다.

숙련공들이 부실시공의 위험성을 인지한다 해도 건설현장의 ‘갑’인 건설사에게 재시공을 요구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한데다, 이를 지적할 수 있는 숙련공들의 수 자체도 점점 줄어들고 있다는 것이다.

9일 서울 영등포구 국회의원회관에서 민주노총 건설노조 주최로 열린 ‘긴급 아파트 안전진단:현장노동자가 말한다’ 토론회. 심윤지 기자

9일 서울 영등포구 국회의원회관에서 민주노총 건설노조 주최로 열린 ‘긴급 아파트 안전진단:현장노동자가 말한다’ 토론회에서는 30년차 래미콘 노동자 김봉현씨, 17년차 철근 노동자 한경진씨가 참석해 건설 현장의 부실 시공 실태에 대해 증언했다.

한씨는 “수직근과 수평근을 연결하는 결속 작업 자체를 하지 않고 철근만 붙어 있으면 넘어가는 관행이 전국의 모든 현장에서 일어나고 있다고 단언할수 있다”고 말했다. 철근 누락이 최근 적발된 일부 단지만의 문제가 아니라는 것이다.

한씨는 이른바 ‘무량판 구조’가 도입된 현장일수록 사고 위험이 더 커진다고도 했다. 무량판 구조는 하중을 분산해주는 대들보 없이 기둥과 천장을 바로 연결시키는 공법으로, 2010년대 후반부터 다시 유행하기 시작했다. 보 두께(60㎝~1m)만큼의 높이를 시공하지 않아도 되기 때문에 공간 효율성이 높고 공사 기간도 짧지만, 주철근을 보강철근으로 일일이 묶어주는 공정이 수반돼야 한다.

하지만 현장에선 보강근을 묶는 공정이 제대로 이루어지기 어렵다고 한씨는 말했다. 기한 내에 공사를 끝내라는 시공사의 압박 때문이다. 한씨는 “건설사들이 말로는 안전을 외치면서 철근 작업이 다 끝나기도 전에 콘크리트 타설 날짜를 미리 잡아놓고 그 날짜까지 무조건 끝내라고 요구한다”며 “콘크리트 속에 묻힌 철근은 눈에 보이지 않기 때문에 시공사와 감리만 눈 감는다면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했다.

숙련도가 낮은 외국인 노동자가 대폭 늘어난 것도 부실 위험을 키우는 요인으로 지적됐다. 한씨는 “전국 어느 현장을 가봐도 철근공 70명 중 도면을 읽을수 있는 숙련공은 30%도 안된다”며 “지상의 본층 공사로 들어가면 관리자를 제외한 모든 인력이 100% 이주노동자인 경우도 흔하다”이라고 했다.

이어 “관리자 1명이 말도 통하지 않는 이주노동자 20~50명에게 작업지시를 하면서 동시에 시공 상태까지 점검해야 하는 상황”이라며 “사측도 물량을 더 내기 위해 철근 묶는 작업 100 가운데 20~30만 묶으라고 압박하는 경우가 있다”고 했다.

건물의 ‘뼈대’ 역할을 하는 철근 누락 뿐 아니라, ‘살·근육’에 해당하는 콘크리트의 품질 저하 문제도 심각했다. 불량 콘크리트가 생기는 원인은 크게 세 가지로, 래미콘 제조사가 원가 절감을 위해 싸구려 골재를 섞거나, 작업시간을 앞당기기 위해 건설 현장에 래미콘차를 ‘몰배차’시켜 콘크리트를 굳게 하거나, 현장 작업자가 편의를 위해 물을 섞는 경우 등이다.

래미콘 노동자 김씨는 “원칙적으로 불량 콘크리트는 모두 폐기해야 하지만, 공기를 맞추기 위해 축구공 크기의 알갱이가 생긴 콘크리트를 타설해버리는 경우도 있다”고 했다. 이어 “일반 래미콘 기사가 이를 지적하면 시공사는 이를 무시하고, 심지어 래미콘 공장에 전화해 물량 배정을 끊어버리겠다고 협박을 하기도 한다”고 했다.

건설현장에 들어오는 래미콘은 원청이 직접 관리·감독하게 되어있지만, 대부분은 형식적으로만 이루어진다고 김씨는 전했다. 김씨는 “오늘 타설 차량이 50대라고 한다면, 처음 5대는 품질관리실험을 할 것이라고 건설사가 래미콘사에 미리 언질을 준다”며 “실험 결과를 짜맞추는 것”이라고 했다. “불량래미콘 타설로 타설 부위에 골재 분리 현상이 나타나면 미장으로 덮어버리는 경우도 흔하다”고도 했다.

노동자들은 부실 시공의 원인으로 ‘부실 감리’의 책임을 지적하기도 했다. 한씨는 “감리는 대개 공사 초반에만 현장에 자주 오고, 중간부터는 거의 모습을 보이지 않는다”며 “원청 말단 직원이 잘나온 사진을 몇 장 찍어 보내면 승인이 나는 구조”라고 했다.

민주노총 건설노조가 7~8일 형틀목수·철근·타설 등 건설노동자 2511명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무량판 시공현장에서도 빨리빨리 속도전을 강요받는다’는 응답은 전체의 43.5%(1093명)에 달했다. 함경식 노동안전연구원장은 “부실공사 방지를 위해 불법하도급 근절과 합리적인 공기 산정, 최저낙찰제를 폐지하고 정부 차원의 기능인력 육성관리방안을 수립·시행해야 한다”고 했다.

심윤지 기자 sharpsim@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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