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 폭염’ 닥친 중남미, 안데스 산맥의 눈마저 녹는다

최서은 기자 2023. 8. 9. 16: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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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르헨티나 파타고니아 지역에 있는 안데스 산맥. 게티이미지

지구 남반구에 위치한 남미 국가들에 기록적인 수준의 ‘겨울 폭염’이 닥쳤다.

8일(현지시간) BBC 등에 따르면 현재 한겨울인 칠레와 아르헨티나 등 남미 국가들에서 일부 도시의 기온이 30도를 넘어서는 등 이상고온 현상이 빚어지고 있다.

칠레 북부 코킴보주 비쿠냐는 최근 37도를 기록했다. 이맘때 이 지역의 평균 기온인 18도보다 무려 20도 가까이 높은 기온이다. 이는 1951년 8월 이후 72년 만에 최고 기록이다. 기록적인 겨울 폭염으로 눈이 녹아 칠레의 일부 스키장은 며칠 동안 폐쇄되기도 했다.

지리학 박사인 파블로 사리콜레아 교수는 엘파이스에 “기후변화와 엘니뇨 현상 때문에 현재 이상고온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이번 폭염은 이례적”이라며 “비쿠냐의 이같은 고온현상은 2064년에나 닥쳐올 것으로 예상했는데 40년이나 빠르다”라고 말했다.

아르헨티나의 수도 부에노스아이레스도 최근 30도를 넘어섰다. 이는 아르헨티나에서 기상 관측이 이뤄진 117년 동안 유례를 찾을 수 없는 8월초 기온이다. 종전 최고 기록은 1942년 8월1일의 24.6도로, 81년 만에 새 기록을 썼다.

이들 국가 뿐 아니라 브라질·우루과이·페루·볼리비아 등도 20~30도를 기록하며 한겨울에 무더위를 겪고 있다. 남미 각지 해발 1000m 이상의 수십 개 기상관측소 수은주도 35도를 넘어섰다.

로이터통신에 따르면 페루의 최근 기온은 27도를 기록했다. 겨울을 뒤덮은 폭염으로 페루 수도 리마에서는 주민들이 마치 여름 휴가철처럼 사람들이 해변으로 몰리고 있다. 리마의 서핑 강사인 세르히오 로드리게스는 “거의 일주일 넘게 강한 햇살이 내리쬐고 있다”며 “점점 더 여름 같은 느낌이 든다”고 말했다.

칠레 산티아고에서 8월3일(현지시간) 더운 날 사람들이 거리를 걷고 있다.EPA연합뉴스

전문가들은 엘니뇨 현상과 기후변화에 더해 안데스 산맥의 고기압 등의 영향으로 남미의 겨울에 유례 없는 폭염이 발생했다고 분석하고 있다. 지난 며칠 동안 안데스 산맥 동쪽에 ‘블로킹 하이’라고 불리는 고기압이 머무르면서 폭염이 심화됐다. 블로킹 하이는 고위도에서 정체하거나 매우 느리게 이동하는 온난 고기압을 뜻하는데, 한 곳에 오래 머물면서 주변 대기의 흐름을 가로막는다.

이러한 이상 고온 현상으로 아메리카 대륙에서 가장 해발 고도가 높은 안데스 산맥의 눈마저 녹고 있다. 전문가들은 안데스 산맥의 폭염으로 해발 3000m 이하 지역에 쌓인 눈이 녹아 봄과 여름이면 해빙수에 의지해 살아가는 현지 주민들에게 연쇄 파급효과가 일어날 수 있다고 우려하고 있다. 안데스 산맥의 눈이 녹으면, 안데스 산맥에서 식수와 농업 및 발전용 물을 제공받는 인간들과 이곳에서 살아가는 많은 동식물도 영향을 받는다.

기상학자 막시밀리아노 에레라는 “남미는 세계가 본 적 없는 극한 현상에 처해 있다. 이 사건은 모든 기후 서적을 다시 쓰고 있다”고 밝혔다.

이같은 기후변화는 폭염 뿐 아니라 각종 자연재해도 더욱 부추길 것으로 예상된다. 10년 넘게 극심한 가뭄을 겪고 있는 칠레에서는 늦여름인 지난 2월 폭염으로 인한 대규모 산불로 수십 명이 사망했다. 우루과이는 74년 만의 최악의 가뭄으로 수도 몬테비데오와 그 일대 저수지들이 모두 말라붙어 더 이상 수돗물을 마실 수 없을 정도로 심각한 물 부족 사태를 겪고 있다.

기록적인 겨울 폭염이 이어지자 마이사 로하스 칠레 환경부 장관은 기후변화의 악영향을 완화하기 위한 에너지 전환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그는 트위터에서 “우리는 해결책을 알고 있다. 화석 연료 사용을 시급히 중단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칠레는 지난해부터 늦어도 2050년까지 탄소중립과 기후 회복력을 갖추겠다는 기후변화법을 제정했다”고 설명했다.

현재 기후변화 문제를 해결하는데 필수적인 아마존 보호를 위해 중남미 8개국이 브라질에 모여 아마존 정상회의를 진행 중이다. 이들 국가는 8일(현지시간) 아마존 열대우림 보호를 위해 협력한다는 내용의 선언문을 채택했다.

최서은 기자 cielo@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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