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디플레이션 우려 고조…소비자물가 2년5개월만에 마이너스 전환
중국 소비자물가지수(CPI)가 2년 5개월만에 마이너스로 전환됐다. 생산자물가지수(PPI)도 10개월째 마이너스 상태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중국 CPI와 PPI가 동시에 마이너스를 기록한 건 코로나19 팬데믹이 한창이었던 2020년 11월 이후 처음이다. 중국이 물가가 하락하고 경기가 침체하는 디플레이션에 빠져들고 있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중국 국가통계국은 7월 CPI가 지난해 같은 달보다 0.3% 하락했다고 9일 밝혔다. 중국 CPI가 하락한 건 2021년 2월 이후 처음이다. 월별 추이를 보면 중국 CPI 상승률은 지난해 12월 1.8%에서 지난 1월 2.1%로 올라간 뒤 지속적인 하락 추이를 보이다가 지난 6월 0%를 찍은데 이어 이번에 마이너스로 돌아섰다. 올해 초 리오프닝(경제활동 재개) 이후에도 기대만큼 소비 심리와 내수가 살아나지 못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7월 소비자물가를 품목별로 보면 중국에서 물가 변동에 큰 영향을 미치는 돼지고기 가격이 지난해 같은 달보나 26.5% 떨어지며 식품가격 하락(-1.7%)을 이끌었다. 또 교통수단용 연료 가격이 13.2% 낮아지는 등 교통·통신 가격이 4.7% 하락했고, 생활용품·서비스 가격도 0.2% 떨어졌다. 다만 숙박, 관광, 영화 등 각종 서비스 가격은 지난해 같은 달보다 1.2% 상승한 것으로 나타났다. 여행 등 일부 분야를 제외하면 전반적으로 소비가 부진했던 것으로 풀이된다.
PPI는 10개월째 마이너스다. 7월 PPI는 전년 동기 대비 4.4% 하락한 것으로 나타났다. 전달(-5.4%)보다는 하락폭이 다소 둔화 됐지만 블룸버그통신이 조사한 시장 예상치(-4.0%)를 뛰어넘었다. 7월에는 생산자재 가격이 전년 동기보다 5.5% 하락했고, 생활자재 가격도 0.4% 낮아졌다. 산업별로는 석유·가스채굴업(-21.5%), 석탄 채굴·세척업(-19.1%), 석유·석탄·기타연료가공업(-18.3%) 등에서 하락폭이 컸다.
중국 통계당국은 물가 하락이 일시적이고 단기적인 현상이라며 디플레이션 압력을 부인한다. 둥리쥐안(董莉娟) 국가통계국 수석통계사는 “CPI가 전년 동기 대비 하락했지만 다음 단계에서는 점차 반등할 것으로 예상된다”며 “경제가 회복되고 시장 수요가 점진적으로 확대됨에 따라 수급관계가 지속적으로 개선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외신과 전문가들은 중국이 이미 디플레이션에 빠져들었다고 진단한다. 장즈웨이 핀포인트자산운용 수석이코노미스트는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에 “중국 CPI와 PPI는 모두 디플레이션 영역에 있고, 내수 부진으로 인해 경제 모멘텀은 계속 약화되고 있다”면서 “최근 발표된 정책들이 경제 모멘텀을 반전시킬 수 있을지 명확치 않으며, 디플레이션은 추가적인 재정 부양책에 대한 압력을 가중시킬 것”이라고 말했다.
모건스탠리의 로빈 싱 이코노미스트도 블룸버그TV 인터뷰에서 “중국이 확실히 디플레이션에 빠졌다”며 “문제는 디플레이션이 얼마나 지속되느냐인데, 이것은 재정·통화 정책에 따라 달라질 것”이라고 말했다.
투자자들은 중국의 중앙은행인 인민은행이 금리를 내려 경기를 활성화할 것을 기대하고 있지만, 금리 인하는 위안화 약세 등 부작용이 있기 때문에 인민은행이 섣불리 금리를 내리지 못할 것이라고 블룸버그는 예상했다. 정부의 재정 확대도 한계가 있다. 그동안 인프라 투자를 남발했던 지방 정부들이 부동산 거품이 꺼지면서 모두 빚더미에 앉아 있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중국의 디플레이션이 장기화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고 블룸버그는 전망했다. 장기간 광범위한 상품 가격 하락이 이어지면 추가 하락에 대한 기대로 소비자들이 지출을 미루면서 경제 활동이 더욱 위축되고, 그로 인해 기업들이 가격을 계속 낮추면 수익 감소로 투자와 일자리가 줄어드는 악순환이 발생할 수 있다는 것이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지난 30년 간 고도성장을 이뤄온 중국이 앞으로 ‘잃어버린 30년’을 겪은 일본식 침체를 고스란히 따를 수 있다”는 관측까지 내놓은 바 있다.
다만 현재 모든 물가가 하락하고 있는 것은 아니어서 향후 추이를 지켜볼 필요가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그러나 미·중 갈등 등 지정학적 불안까지 이어지고 있어 전망은 밝지 않다. 중국이 리오프닝에도 불구하고 장기 불황에 진입한다면 중국은 물론 세계경제 전반에 미치는 부정적 영향이 적지 않을 것으로 예상된다.
베이징 | 이종섭 특파원 nomad@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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