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가려 폭행·협박’ 국정원 조사관들 1심 무죄···유우성 “납득 안 돼”
서울시 공무원 간첩 조작 사건에서 고문 수사를 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국가정보원 조사관들이 1심에서 무죄를 선고받았다. 재판이 시작된 지 3년 만이다. 간첩 조작 사건 피해자 유우성씨는 법원이 일부러 시간을 끌다 무죄를 선고했다며 반발했다.
서울중앙지법 형사12단독 이승호 판사는 9일 국가정보원법 위반 등 혐의로 기소된 국정원 조사관 유모씨와 박모씨에게 “검찰이 제출한 증거만으로는 합리적 의심이 없을 정도로 범죄 혐의가 증명됐다고 보기 어렵다”며 무죄를 선고했다.
유씨와 박씨는 2012년 11월 국정원 합동신문센터에 수용된 재북 화교 출신 유가려씨를 6개월간 불법으로 가두고 고문해 오빠 유우성씨가 간첩이라는 허위 자백을 받아낸 혐의로 2019년 3월 기소됐다. 이들은 2013년 유우성씨 재판에 나와 조사 과정에서 폭행이 없었다고 위증한 혐의도 받았다.
이들은 재판에서 혐의를 전면 부인했다. 재판은 이들이 국정원 직원이라는 이유로 대부분 비공개로 열렸다. 이날 선고공판도 피고인석에 차폐막을 친 채 진행됐다.
피해자 유가려씨는 법정에 나와 두 조사관이 여러 차례 자신을 때리고, 고문할 것처럼 위협했다고 증언했다. 조사관들이 유가려씨의 등에 ‘회령 화교 유가리’라고 쓴 종이를 붙인 뒤 합동신문센터 내 탈북민 거주 숙소 앞으로 데려가 망신을 줬다고도 했다.
그러나 이 판사는 “이 사건의 주요 증거인 유가려씨의 진술을 그대로 믿기 어렵다”고 했다. “유가려씨는 2013년 유우성씨 형사사건 증인과 2020년 검찰 조사 참고인으로 출석해 폭행과 협박을 당했다고 일관되게 진술하고 있다”면서도 “2012년 조사 당시 합동신문센터에서 유가려씨를 마주친 A씨의 진술과 부합하지 않는 점을 보면 수사관들의 폭행·협박 행위가 정말 존재했는지 의심된다”고 했다.
이 판사는 또 폭행 당시 상황에 대한 유가려씨의 법정 진술이 검찰에서 진술한 내용과 다르다고 했다. 그러면서 “유가려씨의 진술이 여러 차례 바뀌었는데, 진술을 번복한 경위에 대해 수긍할 만한 설명이 없다”고 했다.
이어 “피고인들은 행정조사관으로서 북한이탈주민법에 따라 보호 신청한 사람들에게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가 드러나면 진술 신빙성과 혐의 여부를 확인해 인계할 뿐, 직접 대공 혐의를 수사하지 않는다”며 “폭행·협박까지 하면서 유우성씨에 대한 진술을 받아낼 동기가 있다고 보기 어렵다”고 덧붙였다.
화교 출신 탈북민 유우성씨는 2011년부터 서울시 계약직 공무원으로 일하다 유가려씨를 통해 국내 탈북자 정보를 북한 보위부에 넘겨준 혐의로 2013년 재판에 넘겨졌다. 그러나 유가려씨의 자백이 허위이고 국정원의 증거도 조작됐다는 사실이 재판에서 드러났고, 대법원은 2015년 유우성씨의 무죄를 확정했다.
이날 방청석에서 선고를 지켜본 유우성씨는 굳은 표정으로 법원을 나섰다. 그는 재판이 끝난 후 기자들과 만나 항소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유우성씨는 “법정에서 가혹행위에 대한 유가려씨의 증언을 들었던 판사는 선고를 앞두고 (인사이동으로) 가버렸고, 이날 판사는 최후변론만 듣고 판결했다”며 “정의롭지 못한 대한민국 법정이 가슴 아프고 안타까우며, 판사님이 역사 앞에 큰 오판을 했다고 말씀드리고 싶다”고 했다. 10년이란 시간이 흐른 탓에 유가려씨의 기억이 정확할 수는 없는데도 법원이 지엽적인 진술 번복을 문제삼아 유가려씨 진술을 배척했다는 것이다.
유우성씨 측을 대리하는 김진형 변호사는 “이 사건은 어린 여성이 밀실에 갇혀 6개월 가까이 국가폭력을 당한 사건”이라며 “피고인들 두 사람이 독단적으로 저지른 범죄가 아니고, 국정원 조직이 상명하복 질서에서 톱니바퀴처럼 움직여 만들어진 일”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두 사람을 처벌하는 문제를 떠나 조직적 국가 범죄와 폭력이 반복되지 않기 위해 바로잡혀야 하는 판결”이라고 했다.
김희진 기자 hjin@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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