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염 노동’ 117명의 기록…비극은 왜 반복됐나 [취재후]
2018년 7월 25일, 울산의 한 공원 공사작업을 맡았던 A씨. 혼자서 작업을 했고, 현장에는 그늘이 없었습니다. 그늘을 찾아 인근 초등학교로 들어갔지만 이내 열사병으로 쓰러졌고, 병원으로 옮겨졌지만 숨졌습니다.
▶ A씨 재해경위 (재해일자: 2018.7.25 / 산재승인일: 2018.12.28)
근린공원 공사에서 작업지시를 받고 혼자 작업 시작함. 폭염으로 14시50분경에 그늘을 찾기 위해 00초등학교 후문에 진입하였으나 35도 육박한 폭염을 이기지 못하고 열사병으로 쓰러졌으며, 이후 00병원을 거쳐 0000대학교병원에서 입원에서 입원치료 후 00000요양병원으로 이송 후 심폐부전으로 사망함.
KBS가 근로복지공단 산업재해경위서를 입수해 분석해보니, 최근 5년간 온열 질환으로 산업재해를 인정받은 노동자는 117명이었습니다. 이 가운데 19명은 숨졌습니다.
117명의 재해 경위를 하나하나 살펴보니, 노동자들은 폭염의 위험에 최소한의 보호장치도 없이 그대로 노출되어 있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폭염 속에서 점심 식사를 하고 휴식 시간 없이 일하다가 막판에는 물 먹을 시간도 없었다는 노동자는 결국 경련하며, 의식을 잃고 쓰러졌습니다.
▶ B씨 산재 경위 (재해일자: 2019.5.24/ 산재승인: 2019.11.28)
현장에서 작업반장의 지시로 동료와 함께 건축물 철거 작업을 진행하였습니다. 아침 7시경부터 진행된 건축물 철거 작업은 햇빛에 그대로 노출된 환경에서 지속적으로 진행되었으며 30도를 넘는 고온과 작업장 데코타일의 열이 더해져 힘든 상태였습니다.
현장에는 햇빛을 피해 휴식을 취할 수 있는 곳이 없었으며 컨테이너 박스가 있었으나 실외보다 더 기온이 높고 바람이 통하지 않았습니다. 점심 식사 후 오후 작업부터 몸에 이상 증세가 나타나 두통, 구토, 어지러움, 땀이 나지 않는 등 신체적으로 힘든 상태였습니다.
물을 마시고 몸에 물을 뿌리며 작업을 진행하려 하였으나 더 이상 견디기 힘들어 오후 3시경 작업반장에게 작업을 중단할 의사를 표현하였으나 컨테이너 박스 앞에서 쉬고 있으라는 지시가 있어 휴식을 취하려 하였습니다. 그러나 현장에 그늘이 없어 현장 정문 앞 텃밭 나무 밑에 그늘을 찾아간 이후 정신을 잃고 쓰려졌습니다.
온열 질환을 예방하기 위한 3대 기본 수칙, '물 ·그늘 ·휴식'이 모두 무시된 겁니다.
실내 작업장의 경우에도 내부 온도가 조절이 안 되면 온열 질환자가 발생하긴 마찬가지입니다.
근로복지공단 자료 중 명확하게 '실내'에서 발생한 것으로 드러난 온열 질환 산재는 6건입니다. 이 중 4건은 냉방 시설이나 환기 시설이 제대로 갖춰지지 않은 것으로 드러났습니다.
▶ C씨 재해경위 (재해일자: 2018.8.4/ 산재승인: 2018.11.26)
매장 내 파지(종이박스)를 압축하여 포장하는 작업으로 당일은 기온이 37도까지 오르는 무더운 날씨였습니다.
현장은 파지장 셔터를 사이로 건물 내외부가 나뉘어지고, 내부에는 소형 선풍기만 설치되어 있어 더운 바람만 환기되는 상태이고 외부에 대형 선풍기도 있으나 내부의 온도를 낮추지는 못하는 고온의 작업장에서 작업 중이었습니다.
외부와 연결된 셔터를 사이로 내부에서 파지 포장작업 후 건물 밖 외부로 반출하여 박스를 정리하다 5시 40분경 미리 검풍장에서 받아 놓은 물통의 물을 마시기 위해 파지장내 탈의실(파지장 직원용)로 들어간 이후 쓰러져 기억이 없는 상태로 구급차에 의해 병원에 실려 왔습니다.
■ 50인 미만 소규모 사업장, '온열 질환'에도 취약
소규모 사업장은 유독 '온열 질환'에 취약했습니다.
전체 온열 질환 산업재해 117건 중 70건은 50인 미만 소규모 사업장에서 발생했습니다.
50인 미만 사업장 중에서도 '5인 미만 사업장'이 29건으로 발생 비율이 가장 높았습니다. 그 다음으로 '5인 이상- 30인 미만 사업장' 26건, '30인 이상- 50인 미만 사업장'이 15건 순이었습니다.
특히 사망자 19명 중 15명은 50인 미만 사업장에서 일한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이에 대해 김성희 고려대 노동대학원 교수는 "충분한 휴식의 전제 조건인 '교대 인력' 이 부족하기 때문" 이라고 지적했습니다.
김 교수는 "대형 사업장보다 소규모 사업장이 시설 면에서 열악한 탓도 있지만, 교대 인원을 갖추고 있지 못하고 있기 때문에, 온열 질환 예방에 있어서도 취약하다"고 말했습니다.
■ 온열 질환자 발생해도 늦장 대응, 피해 키웠다
온열 질환이 발생한 뒤에 적절한 대처가 없어 피해를 키운 경우도 많았습니다.
스스로 이상을 느껴 진료를 요청했는데도 현장 관리자가 '사무실에 데려다 주겠다'고만 하거나, 급하게 응급처치가 필요한데도 '일단 쉬어 보라'고 권유하는 사업장이 적지 않았습니다.
쓰러지면서 경련을 일으키는 등 상황인데도 '옆에 계신 분이 간질 아니냐며, 좀 있으면 나아질 거라 이야기 했다' 는 현장도 있었습니다.
온열 질환으로 숨진 노동자 19명 중, 재해 경위서에 '쓰러진 뒤 발견됐다'는 정황이 명확하게 드러난 경우가 6명입니다.
전문가들은 온열 질환 증상을 보인 작업자가 휴식을 취할 경우, 혼자 둬서는 안 된다고 강조합니다. 어지럼증, 구토 등의 증상으로 잠시 쉬러 갔다가 상태가 더 나빠지는 경우가 적지 않기 때문입니다.
안종주 한국산업안전보건공단 이사장은 "정상적으로 돌아올 때까지 누군가가 지켜보면서 관찰해야 된다" 며 "더 나빠지면 곧바로 응급 조치를 하고 병원에 옮겨야 한다. 최소한 휴식을 할 때는 반드시 두 명 이상이 함께 있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 좀 더 일찍 개선됐더라면… 올해도 반복되는 비극
이 기사가 쓰여진 날은 8월 9일에도 폭염의 기세는 꺾이지 않았습니다.
올해 여름 들어서도 지금까지 3명의 노동자가 온열 질환으로 숨진 것으로 추정됩니다. 고용노동부는 이들의 작업 여건 등을 조사 중이라고 밝혔습니다.
최근 5년 동안 폭염으로 쓰러진 노동자들의 기록은 휴식, 물 제공 등의 '기본 원칙'만 지켰어도, 상당 수의 산업재해를 막을 수 있었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하지만 그 원칙은 아직 '권고사항'일 뿐입니다.
현재 고용노동부는 폭염주의보 발령시 매 시간 10분, 폭염 경보에는 15분씩 쉴 것을 현장에 가이드라인으로 제시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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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은진 기자 (ejch@k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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