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드바에 ‘한국금거래소’ 상표 독점 사용 못 한다

김종용 기자 2023. 8. 9. 15: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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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허법원 “한국금거래소 상표, 지리적 명칭과 식별력 없는 기술적 표장이 결합한 것”
서울 종로구 한국금거래소 본점에서 직원이 골드바를 정리하고 있다. /연합뉴스

‘한국금거래소’ 상표를 독점해서 사용할 수 없다는 법원 판단이 나왔다. 지난해 매출 1조7000억원이 넘는 국내 최대 귀금속 전문회사 한국금거래소가 회사 이름을 상표로 출원했으나, 이 상표의 등록을 거절한 특허청 결정이 적법하다는 취지다.

특허법원 3부(부장판사 이형근)는 지난달 6일 한국금거래소 법인이 특허청장을 상대로 “상표 등록을 거절한 특허심판원의 심결을 취소하라”며 제기한 소송에서 원고 패소 판결했다. 이번 판결이 확정되면 한국금거래소는 자사의 이름을 골드바 등에 독점해서 사용할 수 없게 된다.

◇한국금거래소 상표 등록 거절…”식별력 없다”

코스닥 상장사 아이티센의 계열사인 한국금거래소 법인은 2020년 10월 ‘한국금거래소’ 상표를 출원했다. 그러나 특허청은 “‘한국금거래소’ 상표는 현저한 지리적 명칭에 해당하는 ‘한국’, 주거래 대상인 ‘금’, 지정상품의 매매 중개 등이 이뤄지는 ‘거래소’가 결합된 표장”이라며 “표장 전체적으로 새로운 관념이나 식별력을 형성하는 게 아니기 때문에 일반 수요자의 입장에선 특정인의 상표로 식별할 수 없다”라고 상표 등록을 거절했다. 상표가 본연의 가치를 인정받기 위해서는 상표를 접한 사람들이 특정인의 업무를 나타내기 위해 사용된 상표라는 점을 인식해야 하는데, ‘한국금거래소’는 이런 식별력이 없다는 취지다.

이에 한국금거래소는 특허청의 거절 결정에 대한 불복 심판을 청구했다. 해당 상표를 출원 전부터 이미 독점해서 지속적으로 사용해온 만큼, 수요자들이 ‘특정인의 상품에 관한 출처 표시’로 식별할 수 있다는 게 한국금거래소 측 주장이었다. 그러나 지난해 9월 특허심판원도 특허청과 같은 이유로 기각 심결을 내렸다.

한국금거래소는 결국 특허법원에 소송을 제기했다. 한국금거래소 측은 “상표 출원 전부터 약 10년 동안 출원 상표를 독점적, 계속적으로 사용하면서 다수의 광고를 집행하고, 골드바 등 지정상품에서 상당한 매출도 올렸다”며 “이로 인해 ‘한국금거래소’ 상표는 국내에서 수요자들 사이에 원고의 상품에 관한 식별 표지로 잘 알려져 있다”고 주장했다.

법원의 결정도 특허청, 특허심판원과 마찬가지였다. ‘한국금거래소’ 상표는 지리적 명칭과 식별력 없는 기술적 표장이 결합한 것에 불과하다고 판단했다. 지리적 명칭인 ‘한국’과 주거래 대상인 ‘금’과 ‘거래소’가 결합돼, ‘한국에 있는 금을 거래하는 거래소’ 정도의 의미로 인식된다는 것이다. 상표법상 현저한 지리적 명칭이나 그 약어(略語) 또는 지도만으로 된 상표는 상표 등록을 받을 수 없다.

재판부는 또 “한국금거래소라는 명칭은 한국거래소, 한국전력거래소 등 특별 법인의 명칭과 유사한 형태를 띠고 있다”며 “공익상 특정인에게 독점적으로 사용하게 하는 것이 적당하지 않다”고 설명했다.

법원. /뉴스1

◇꾸준한 홍보·마케팅에 소비자 식별 가능 주장…”인정 어려워” 판단

이번 재판에서는 ‘한국금거래소’ 상표가 상표법 제33조 제2항에 해당하는지가 쟁점이 됐다. 해당 조항은 ‘상표 등록 출원 전부터 그 상표를 사용한 결과 수요자 간에 특정인의 상품에 관한 출처를 표시하는 것으로 식별할 수 있게 된 경우 그 상품에 한해 상표 등록을 받을 수 있다’고 규정한다.

한국금거래소는 지난해 약 1조7800억원에 달하는 상당한 매출을 올렸고, 국내 주요 일간지의 홍보성 기사와 영상 광고, 투자 및 재테크 관련 박람회 행사, 온라인 광고 등 광고선전비로 21억원을 사용했다고 주장했다. 귀금속을 거래하는 소비자가 충분히 인식할 만한 상표라는 취지다.

재판부는 한국금거래소가 2011년부터 골드바 등에 출원 상표를 사용해왔고 꾸준한 홍보와 마케팅 활동을 통해 소비자들에게 소개했다는 점은 인정했지만, 그렇다고 해서 식별력을 취득했다고 보긴 어렵다고 판단했다. ‘한국금거래소’ 상표는 단독으로 쓰이기보다는 그림 등 다른 상표와 함께 사용됐는데, 이는 한국금거래소 법인 스스로도 ‘한국금거래소’라는 상표만으론 식별력이 낮다는 걸 인식하고 있다는 방증이었다.

매출액이 인지도를 그대로 반영한다고 보기도 어렵다는 게 재판부의 판단이었다. 금은 특성상 매출 원가 자체가 높고, 안전자산으로 금리나 경기 상황 등 거래 환경에 큰 영향을 받기 때문이다. 재판부는 “실제로 원고의 매출은 2021년 크게 증가한 뒤 작년 크게 감소하는 경향을 보이기도 했다”며 “이는 2021년 코로나19로 인한 전세계적 확장성 통화정책과 금리인하 기조, 안전자산 선호 심리 등으로 국제 금시세가 치솟다가 작년 하락한 것을 반영한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한국금거래소는 2021년 3월 30일부터 4월 12일까지 진행한 소비자 인식조사 결과를 증거로 제출했다. 설문에 응한 응답자 중 45.2%가 금 구입과 판매에 있어 가장 먼저 떠오르는 상표로 한국금거래소를 골랐고, 68%가 한국금거래소를 특정 회사의 상표로 인식한다고 응답했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 역시 재판부는 받아들이지 않았다. 모집단 설정이 부적절해 식별력 취득 여부를 판가름할 자료로 삼기 어렵다고 판단한 것이다. ‘골드바 구입 및 금 투자’에 관심이 없는 소비자도 금 제품의 수요자로 볼 수 있으므로 일반 성인이 광범위하게 수요자에 포섭돼야 하는데, 해당 설문조사는 ‘골드바 구입 등에 관심이 없다고 응답했거나, 관심은 있지만 알아보거나 한 적은 없다’고 응답한 경우 조사 대상에서 배제했다는 이유에서다.

결국 재판부는 “원고가 독점적, 계속적으로 ‘한국금거래소’ 상표를 사용해 일반 수요자에게 지정상품의 출처를 표기하는 것으로 인식될 만한 수준에 이르러 식별력을 취득한 것으로 인정하기 어렵다”며 원고 패소 판결했다. 한국금거래소는 이 판결에 불복해 상고한 상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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