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 폭염·칼부림에 외출 자제하는 사람들...서울 주요 상권 매출 ‘휘청’
살인 예고글 퍼진 강남 주요 유흥가도 ‘휘청’
”소비활동 위축으로 하반기 경제 악영향 우려”
지난 7일 오후 8시 20분쯤 서울 강남구 강남역에서 도보로 5분 거리에 위치한 3층짜리 대형 프랜차이즈 카페에는 손님 30여명이 각자 모여 앉아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하지만 점장의 표정은 어두웠다. 지난 4일 인터넷에 올라온 살인 예고글에서 강남역이 범행 장소로 지목되자 카페를 찾는 손님이 평소보다 10~20% 줄었기 때문이다. 점장 이모(28)씨는 “주말에는 매출이 40~50% 줄었다”며 “가게를 찾는 손님들도 강남역에 사람이 왜 이렇게 없냐고 물어볼 정도”라고 했다.
비슷한 시각 새벽 1시까지 운영되는 강남구의 100평짜리 오락실도 상황은 마찬가지였다. 역대급 폭염과 열대야에 활동을 자제하려는 분위기가 확산되면서 오락실에 온 사람은 평소의 절반인 8명에 불과했다. 오락실 주인 최모씨는 “더위 때문에 지난 7월 말 이후부터 매출이 조금씩 줄었고, 이제는 평소의 50%까지 떨어졌다”고 하소연했다.
정부와 한국개발연구원(KDI)이 올해 경기를 ‘상저하고’로 전망했다. 경기가 상반기엔 부진했지만 내수가 완만한 회복세를 보이고 있으며, 경제 심리도 개선돼 하반기에는 회복세를 보인다는 것이다. 그러나 서울 내 주요 상권에 자리 잡은 자영업자들은 “7월 말부터 손님이 끊겼다”고 입을 모았다. 예상을 웃도는 역대급 폭염과 잇단 칼부림 사건으로 인한 공포심이 소비심리를 위축시켜 경기 회복에 걸림돌이 될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 폭염에 버스킹 사라진 한강공원…냉방시설 부족한 전통시장은 ‘울상’
한국은행의 소비자동향지수에 따르면 지난 1월 90.7이던 소비자 심리지수는 매월 꾸준히 상승해 지난 6월 100.7을 돌파한 이후 지난달에는 103.2를 기록했다. 지수가 100보다 높으면 장기평균(2003∼2022년)과 비교해 소비 심리가 낙관적이라는 의미다.
하지만 조선비즈가 만난 자영업자들은 지난달 말 장마가 끝난 뒤 무더위가 시작되면서 매출이 점점 떨어지고 있다고 푸념했다. 과거 여름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폭염·열대야가 기승을 부리자 야외활동이 줄면서 시민들이 지갑을 닫아버렸다는 설명이다. 장마가 종료된 지난달 26일 이후 서울 폭염일수는 11일, 열대야 일수는 10일을 기록했다.
지난 7일 오후 8시쯤 찾은 서울 여의도 한강공원도 무더위로 사람들 발길이 끊긴 모습이었다. 한강공원은 여름에도 버스킹 등 각종 소규모 공연이 벌어지고 퇴근한 직장인들이 돗자리를 깐 채 치킨과 맥주를 즐기며 열기를 식히는 곳이다. 하지만 해가 진 오후 8시에도 기온이 31.8도까지 오르면서 이러한 광경은 찾아볼 수 없었다.
이곳에서 만난 직장인 송모(26)씨는 “요즘 날씨가 더워서 약속을 두 번이나 취소했다”며 “오늘까지 미루면 안 될 것 같아 억지로 나왔다. 근처에 직장을 다니니까 겸사겸사 온 것이지 다른 지역이었으면 오지도 않았을 것”이라고 했다.
한강공원을 찾는 사람들이 줄면서 인근 편의점과 노점상 매출도 떨어졌다. 한강공원에서 떡볶이를 팔고 있는 김모(50)씨는 “폭염으로 평일에는 손님이 진짜 없다”며 “작년 여름 저녁 시간에는 사람들이 많이 왔던 것 같은데, 올해는 눈에 띄게 없다. 그래서 다른 노점들도 영업을 잘 하지 않고 있다”고 했다.
냉방시설이 부족한 전통시장은 직격탄을 맞았다. 서울 영등포 전통시장은 9일 오전 개장을 앞두고 햇빛을 막기 위해 천장에 차광막을 설치하는 한편 선풍기를 틀고, 골목마다 물을 뿌리며 기온을 낮추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었다. 하지만 체감온도가 30도가 넘는 날이 지속되면서 시민들 관심에서 멀어진 지 오래였다.
이곳에서 21년 동안 한약재를 판매했다는 김모(80)씨는 “지난 1주일 동안 매출이 6000원밖에 없었다”며 한숨을 쉬었다. 그는 “코로나 이전에 사람이 많이 몰릴 때는 하루에도 10만원은 팔았다”며 “가판에 내놓은 물건들도 날씨 때문에 금방 상해 다 치워야 한다. 날씨 때문에 아예 장사를 하지 못하는 날도 많다”고 했다.
일부 점포는 최근 치솟은 물가 영향까지 받으면서 이중고를 겪고 있었다. 영등포 전통시장에서 수십년 동안 야채가게를 운영한 방모(67)씨는 “날도 더운데, 산지에서 가격을 올리면서 배추값도 2만원이 됐다”며 “평소에는 소매 상인이 하루에 100명은 왔는데, 지금은 거의 없다. 단골이 있어 그나마 버티는 수준”이라고 설명했다.
◇ 강남 유흥가도 휘청…백화점 고객들은 “쇼핑 무섭다”
시민들이 집 밖을 나서지 않는 또 다른 이유는 잇단 흉기난동 사건과 살인 예고글로 인한 공포심 때문이다. 경찰이 특별치안활동을 펼치며 치안에 역량을 집중하고 있지만, 시민들은 언제라도 자신이 피해자가 될 수 있다는 불안감에 있던 저녁약속도 취소하고 있는 상황이다.
지난 7일 오후 8시 20분쯤 찾아간 서울 송파구 방이동 먹자골목에는 평소 들리던 왁자지껄한 목소리는 없었다. 이곳에 위치한 100평 규모 갈비 전문점은 서현역 흉기난동 사건이 벌어진 다음날부터 하루 매출이 20~30% 줄어들 정도로 타격을 받았다. 직원 박모(22)씨는 “평소보다 손님이 30% 정도 줄었다”며 “지난 4일 이후부터 손님이 줄었다는 게 체감된다”고 했다.
강남구의 60평 규모 마라탕집은 텅 비어있는 수준이었다. 새벽 2시까지 영업하는 식당이지만, 손님이 없어 직원들은 이미 퇴근한 상태였고 점주 홀로 카운터를 지키고 있었다. 이곳은 여름임에도 매운 맛을 찾으려는 시민들 사이에서 맛집으로 알려지며 하루 매출이 400만~500만원에 달하는 곳이었다. 그러나 흉기난동 사건 여파로 지난 4일 ‘불금’ 매출은 200만원대로 떨어졌다. 점주 송모씨는 “매출로 체감할 정도로 식당을 찾는 사람들이 줄었다”며 “특히 금요일·토요일·일요일 매출이 반토막 났다”고 했다.
백화점은 눈에 띄게 사람이 줄어든 모습은 아니었지만, 고객들은 불안감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서울 영등포구 타임스퀘어 내 이마트 매장에 장을 보러 온 20대 여성 박모씨는 “여기서 살다 보니 사야 할 음식들이 있어 오게 됐다”며 “웬만하면 외부 일정을 삼가고 있고, 약속을 취소하거나 야외로 나가는 것을 꺼리게 된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역대급 폭염과 흉기난동 사건이 올해 하반기 경기에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진단했다. 최철 숙명여대 소비자경제학과 교수는 “폭염이 (경제에) 미치는 영향이 크다”며 “한강공원·놀이공원·전통시장 등 야외활동이 동반되는 곳을 중심으로 소비가 위축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폭염·폭우 등 이상기후로 농수산물 가격도 뛰어 물가에 악영향을 줄 것으로 본다”며 “폭염으로 인한 소비위축과 물가 부담이 하반기 경제에 부정적 영향을 끼칠 수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하준경 한양대 경제학부 교수는 “최근 흉기난동 등 각종 사건·사고들로 사람들이 외출을 자제하고 예정된 모임도 취소할 가능성이 있어 심리적으로 소비 위축을 불러올 수 있다”며 “사건이 발생한 지역 상권도 다소 죽은 걸로 안다. 평소 이런 사건이 많지 않았어서 충격이 오래 갈 수 있다”고 했다.
- Copyright ⓒ 조선비즈 & Chosun.com -
Copyright © 조선비즈.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배터리 열폭주 막을 열쇠, 부부 교수 손에 달렸다
- 中 5세대 스텔스 전투기 공개… 韓 ‘보라매’와 맞붙는다
- “교류 원한다면 수영복 준비”… 미국서 열풍인 사우나 네트워킹
- 우리은행, ‘외부인 허위 서류 제출’로 25억원 규모 금융사고… 올해만 네 번째
- [증시한담] 증권가가 전하는 후일담... “백종원 대표, 그래도 다르긴 합디다”
- ‘혁신 속 혁신’의 저주?… 中 폴더블폰 철수설 나오는 이유는
- [주간코인시황] 美 가상자산 패권 선점… 이더리움 기대되는 이유
- [당신의 생각은] 교통혼잡 1위 롯데월드타워 가는 길 ‘10차로→8차로’ 축소 논란
- 중국이 가져온 1.935㎏ 토양 샘플, 달의 비밀을 밝히다
- “GTX 못지 않은 효과”… 철도개통 수혜보는 구리·남양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