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세희의 정치사기] 고려시대 팔관회와 2023 새만금 잼버리

김세희 2023. 8. 9. 14: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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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화도서 재현된 고려 팔관회. 고려 건국 1100주년을 기념해 28일 인천 강화군에서 열린 '강화고려문화축전'에서 불교행사인 팔관회를 재현하고 있다.<연합뉴스>
세계스카우트연맹 잼버리 대회가 열리는 부안군에서 조기 철수를 결정한 7일, 행사 관계자들이 세계 각국 대표단이 문화를 홍보하는 부스 앞에 설치된 그늘막을 해체하고 있다.<연합뉴스>

고려시대 국가 행사인 팔관회, 대중들에겐 일종의 종교행사로 알려져있다. 태조 왕건이 유언으로 남긴 '훈요 10조'에도 하늘의 신령과 오악(五嶽)·명산(名山)·대천(大川)·용신(龍神)에게 기원하는 행사로 규정하고 있다.

국제적인 행사였다. 당시 팔관회가 열리면 송나라 상인과 변경에 사는 여진, 탐라 등이 와서 토산물을 바치는 의식을 거행했다. 주변에 오랑캐가 상국에 조공을 받치는 식이다. 또 이들에게 좌석을 내줘 행사에 참여하게 했다. 왕은 이 자리를 통해 주변국과의 관계에서 위상을 높이고, 왕권을 드러내는 정치적 효과를 극대화했다.

길거리에는 바퀴모양의 등과 향등이 세워지고, 용·봉황·코끼리·말·수레·배와 같은 의장물이 지나갔다. 관리들은 도포를 입고 의례에 참석했고, 백성들은 밤낮으로 즐기면서 구경했다. 말 그대로 축제였다.

규모가 크고 화려한 행사인 만큼, 준비도 철저했다. 음악과 의례를 연습하고, 호위하는 병력들도 호령에 따라 규칙적으로 행진했다. 모든 관리들은 의무적으로 참여해 '습의(習儀)'라는 예행연습을 했다. 행사장 자리도 신분과 예법에 맞춰 배치됐다.

연습 때 실수해도 처벌을 받았다. 추밀원에서 차린 과일 탁상이 법에 정한 것을 넘었다고 해서 대간이 담당 관리를 감옥에 가두는 일도 있었다. 준비과정이 본 행사 못지 않았던 것이다.

치밀한 준비 덕분일까. 팔관회에 대해선 조선시대 백성들의 부담문제로 폐지되기 전까지, 부실한 준비나 운영 미숙으로 파행을 겪었다는 기록이 보이진 않는다.

8월 1일~12일로 계획된 2023새만금 세계스카우트잼버리가 사실상 막을 내렸다. 세계 158개국에서 4만 3000명의 스카우트 대원들이 각자의 꿈을 펼치기(Draw your Dream!)위해 모였으나 초반부터 파행을 겪다가 새만금 행사장에서 조기 철수했다.

대회 전부터 여러 우려가 제기됐다. 염분이 높은 매립지, 폭염·폭우·태풍, 배수시설, 화장실, 급수대 등 한 두 가지가 아니었다. 부안을 지역구로 둔 이원택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1년 전 국정감사에서도 이런 문제를 제기했다.

잼버리 대회 준비 임무를 맡은 측도 모르진 않았다. 김현숙 여성가족부 장관은 국감에서 "태풍, 폭염에 대한 대책을 다 세웠다"며 자신감이 넘쳤다. 전북도는 잼버리 개최지가 확정되기 1년 전인 2016년, 나무를 야영장 곳곳에 심기로 하고 넝쿨 식물로 된 그늘을 최대한 많이 만들기로 했다. 우기에 배수가 잘 될 수 있도록 토질개선과 배수로 시설 설비를 확충하겠다고도 했다.

결과는 총체적 부실로 드러났다. 넝쿨터널은 완벽히 구축되지 않았고, 매립지 토양에 소금기가 많아 나무가 자랄 수 없었다. 샤워실과 화장실은 엉성했고, 그마저도 부족했다. 배수도 제대로 이뤄지지 않아 곳곳이 진흙탕 투성이었고, 벌레마저 들끓었다. 의료시설 역시 미흡했다. 고통은 스카우트 대원들 몫이었다.

올림픽과 월드컵 대회를 성공적으로 치러낸 나라가 맞나 싶을 정도다. 모든 것을 폭염 탓으로만 돌릴 순 없다. 결국 태풍예보에 대원들은 뿔뿔히 흩어지게 됐다.

컨트롤 타워 역할을 해야 할 여성가족부와 조직위원회는 무능했고, 전북도와 지역 정치권은 행사 유치에 따른 사회간접자본(SOC) 확충에만 몰두했다. 그렇다고 문재인 정부와 민주당도 책임에서 자유로울 순 없다. 적어도 지반 등 기초 시설은 완벽히 닦아 놓았어야 했다. 이런 상황에서도 여야 정치권은 전·현 정부를 향해, 전북도와 중앙정부는 서로를 향한 '네 탓'만 하는 작태를 보이고 있다.

전주에 사는 한 지인이 이런 말을 했다.

"(스카우트 대원들이) 텐트에서 자고 쉬어야 하는 데, 갯벌에 나무 한 그루 없는 곳에서 대회를 치르는 등 기본을 무시한 어처구니 없는 일이 벌어졌다. 이젠 전북도민으로서, 전북에 살고 있다고 말하기도 어려워 졌을 정도다."

전·현 정부와 여야 정치권, 전북도는 이 말을 새겨 듣길 바란다. 반성하고 탄식해야 할 사람은 지역 주민이 아니라 바로 당신들이다.김세희기자 saehee0127@d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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