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정규직 고용 불안이 저출산 야기…獨서 가족중심 접근법 배워야"

김유승 기자 2023. 8. 9. 14: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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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반도미래인구연구원 미래인구포럼…"獨, 업무 외에도 부모 역할 중시"
월100만원 양육수당 주장도…"무계획적 이민 정책, 자칫 사회적 혼란 야기"
11일 서울 마포구 웨딩타운 드레스 샵 앞으로 시민들이 지나가고 있다. 2023.7.11/뉴스1 ⓒ News1 장수영 기자

(서울=뉴스1) 김유승 기자 = 비정규직 증가 등 청년의 고용 지위가 불안해지면서 저출산 현상이 심화했다는 전문가들의 분석이 나왔다. 청년의 경제적 어려움을 해결하는 것이 저출산 극복의 관건인 만큼, 양육 수당 등 경제적 지원을 획기적인 수준으로 늘려야 한다는 지적이다.

저출산 해결을 위해선 청년층에 대한 경제적 지원과 함께 일과 가정의 양립을 위한 제도적 뒷받침도 중요하다. 독일의 사례를 참고해 국가와 기업이 가족과 아버지의 역할을 중요시하는 패러다임 전환이 필요하다는 제언도 나왔다.

한반도미래인구연구원은 9일 서울 삼성동 오크우드호텔에서 '인구감소에 대응하는 일본과 독일의 인구 정책 및 민간 기업의 노력'을 주제로 포럼을 열었다.

이날 행사에는 정운찬 연구원 이사장(전 국무총리)과 이인실 연구원장(전 통계청장)을 비롯해 각계 인사와 전문가들이 자리했다. 정현숙 방송통신대 일본학과 교수와 남현주 가천대 사회복지학과 교수가 각각 일본과 독일 사례 발표를 맡았다.

◇日, 비정규직 늘리다 저출산 발목 잡혀…"韓 상황은 더 심각"

정 교수는 "1990년대 이후 일본에서 고용 지위가 불안정해 장래를 전망할 수 없는 남성이 크게 증가한 현상이 초저출산으로 이어졌다"고 지적했다.

정 교수에 따르면 2020년 일본 남성 청년층의 비정규직 비율은 15~24세 22.4%(40만명), 25~34세 14.4%(82만명), 35~44세 9.0%(59만명) 등으로 높았다.

고용이 불안정한 비정규직 남성은 결혼과 출산을 통해 가족을 형성할 수 있는 경제적 안정 지대에서 벗어나 있는 만큼, 비정규직 증가가 초저출산이라는 형태로 사회의 발목을 잡았다는 분석이다. 실제 2015년 기준 일본 35~39세 정규직 남성의 미혼율은 26.8%에 불과하지만, 비정규직은 71.6%에 달한다.

정 교수는 우리나라의 비정규직 청년 비율이 일본보다 높다는 점을 지적했다.

그는 "우리나라의 30대 남성의 비정규직 비율은 2020년 18.5%, 40대 18.9%로 일본보다 훨씬 열악하다"며 "일본과 비교해 대기업 일자리는 더 적고, 기업 간 임금 및 기업 복지 격차는 더 크며, 비정규직 비율이 전 연령대에서 높다"고 했다.

정 교수는 "가장 도전적이고 에너지가 넘치며 창의성을 발휘해야 할 청년 세대가 미래에 대한 불안으로 꿈을 펼치지 못하는 국가는 성장과 발전을 할 수 없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청년 세대가 안정적인 일자리를 얻고 가족을 형성해 안정적으로 살 수 있는 수준으로 지원해야 한다"며 △비정규직 일자리 제한 △생활비 지원 △공공임대주택을 통한 주거 불안 해소 △출산·육아·교육비용에 대한 체계적 지원이 이뤄져야 한다고 역설했다.

일본 혼슈의 동해 연안에 있는 도야마현에서 시민들이 거리를 걷고 있다. ⓒ AFP=뉴스1 ⓒ News1 최종일 기자

◇"日, 고령자 중심 사회보장제도·근로방식 개혁 부진…저출산 정책 실패"

이날 포럼에서는 저출산 문제 해결을 위한 일본과 독일의 정부 차원의 노력도 소개됐다.

정 교수는 "일본은 맞벌이 부부의 양육 지원에 중점을 두고 보육소와 보육서비스 확충, 방과후 아동돌봄, 일과 육아 양립, 남성의 육아휴직률 확대 등을 펼쳐 왔다"고 했다.

또 "일본은 젊은이의 취업 상담 및 지원을 위한 기관을 확충하고,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 기업에 조성금을 제공했다"며 "다만 비정규직과 정규직의 격차를 시정하고 동일노동 동일임금 실현을 위한 근로 방식 개혁은 부진했다"고 했다.

정 교수는 일본의 저출산 정책이 결과적으로는 성공하지 못했다고 평가했다.

그는 "일본의 경우 결혼하지 못하는 젊은이의 문제를 파악하는 데 시간이 오래 걸렸고, 해결에도 상대적으로 소극적이었다"며 "사회보장제도가 고령자에 편중돼 있고, 현행 사회보장제도를 유지하는 것만으로도 매년 막대한 적자가 발생해 과감한 지원이 어려웠다"고 원인을 분석했다.

2020년 기준 일본의 합계출산율은 1.33명으로 저출산 문제 해결에 성공했다고 평가를 받는 스웨덴(1.67명), 프랑스(1.79명)보다 낮은 수준에 머물러 있다. 다만 같은 해 기준 0.84명인 우리나라보다는 상황이 낫다.

◇저출산 정책 성공한 獨, '일' 아닌 '가족 중심' 관점 패러다임 대전환…기업 적극 동참

남 교수는 출산율이 1994년 1.24명에서 2021년 1.58명으로 반등한 독일의 성공사례를 소개했다.

독일에서는 육아휴직을 '부모시간'으로 부르고 있는데, 국가가 국민에게 노동자의 역할 외에도 부모의 역할과 의무를 강조하려는 철학이 녹아 있다. 이같은 배경에는 독일 정부가 노동정책과 관련해 패러다임을 기존의 일과 경제 중심 관점에서 '가족 중심'으로 바꾸는 '대전환'이 있었다는 설명이다.

남 교수에 따르면 독일은 최대 3년의 부모시간 권리를 보장하고 있다. 3~8년까지 기간 동안 24개월의 부모시간을 고용주의 동의 없이도 신청이 가능하다.

단시간 근로 전환 체계도 잘 마련돼 있다. 고용주의 동의를 얻으면 부모가 각 주 32시간 미만으로 근로 시간을 줄일 수 있다. 부모가 동시에 부모시간을 이용하면 부모 합산 주당 근로시간이 64시간에 불과하다.

특히 기업들도 가족친화 인사 정책을 통해 가족 중심 패러다임 전환 주축이 되고 있다는 점이 특징이다.

육아 관련 단시간 근로를 시행 중인 독일 기업은 2015년 89.3%에서 2018년 91.5%로 늘었다. 자녀의 질병 시 법적인 규정을 초과하는 휴가를 허용하는 기업도 2018년 46.3%로 절반에 달한다.

남 교수는 "특히 아버지의 일·가정 양립 욕구에 대한 독일 기업들의 감수성이 높은 수준"이라고 강조했다. 남성 근로자에게 명시적으로 육아휴직(부모시간) 사용을 장려할 것을 권하는 기업은 2015년 13.9%에서 2018년 23.6%로 늘었다. 2018년 약 28%의 기업에서 남성 임원들까지 부모시간을 신청하고 있다.

ⓒ News1 양혜림 디자이너

◇"韓 저출산 어느 나라보다도 심각…비용 아닌 미래 투자라고 생각하고 파격 조치를"

이날 참가자들은 우리나라의 저출산 문제가 어느 나라보다도 심각한 만큼, 획기적인 해결책이 나오지 않으면 국가가 큰 위기에 봉착할 것이라는 데 의견을 모았다.

정 교수는 "한국의 저출산은 아직 일본보다 겉으로 덜 나타날 뿐 실상은 일본보다 훨씬 심각하다"며 "이 인구구조로 가면 2070년까지 기다리지 않아도 10년, 20년 내 젊고 똑똑한 인구가 해외로 빠져나갈 수 있다. 대한민국 붕괴가 10~20년 내 일어날 수 있는 만큼 파격적인 조치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토론에 나선 이현훈 강원대 교수는 이와 관련해 "저출산의 근본적 원인은 경제 문제"라며 "육아 수당으로 매월 100만원씩 20세까지 지원해야 한다. 자녀가 대학에 갈 때까지 3억원 양육비가 드는데, 정부가 이를 비용이 아닌 미래 투자라고 생각하고 지원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남 교수는 이에 대해 "우리나라는 자녀를 어린이집 이후에도 밤까지 학원에 보내는 경우가 많은데, 이 비용을 국가가 지원해주지 않는다"며 "육아수당뿐만 아니라 교육의 개혁도 함께 병행돼야 한다"고 했다.

독일 등 일부 유럽 국가의 경우 적극적인 이민정책을 저출산 해결의 한 축으로 활용한 경우가 많다. 우리나라에서도 최근 저출산 문제 해결책으로 적극적인 이민 정책이 거론되고 있다. 하지만 깊은 고민 없는 이민 정책은 사회적 혼란만 가중할 수 있는 만큼 근본적인 해결책이 될 수 없다는 지적도 나왔다.

정 교수는 "최근 지자체들이 외국인을 끌어들인다면서 정책 경쟁을 하는데, 노동력이 부족한 상황에만 대처하는 것 같다"며 "통상 이민 집단이 5%가 넘으면 사회변화가 나타나고, 10%를 넘기면 이(異)집단이 돼 자기 이해를 주장하기 시작한다. 우리나라가 캐나다처럼 자국민과 동일하게 사회보장제도를 적용할 준비가 되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정 교수는 "이민자를 노동력으로만 쓸 생각들을 하는데 자국민과 동일한 수준으로 대우할 준비가 안 되면 사회적 갈등만 야기할 것"이라며 "이민은 보조적 수단이고, 결국은 비정규직 문제 해결 없이 저출산 문제 해결이 어렵다"고 했다.

ⓒ News1 김초희 디자이너

kys@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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