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월16일, 방송사 이사진 축출의 날…끝없는 복수의 굴레
[미디어 전망대]
[기고] 홍원식 | 동덕여대 ARETE 교양대학 교수
유례없는 방송사 이사진 동시 해임이 추진되고 있다.
방송통신위원회(방통위)는 한국방송(KBS) 남영진 이사장 해임 추진에 이어 문화방송(MBC) 대주주인 방송문화진흥회(방문진) 권태선 이사장과 김기중 이사 해임 절차에 들어갔다.
지난 3일 방통위는 방송문화진흥회에 권 이사장 해임처분 사전통지서를 전달했다. 현재 감사원의 방문진 감사가 진행 중이고 그 결과는 아직 나오지 않았다. 여기에 방통위 현장 검사, 감독도 진행되지 않은 상태에서 다급하게 권 이사장 해임 절차를 밟기 시작한 셈이다. 이는 오는 16일 방통위 전체회의에서 앞서 해임 절차를 밟고 있던 남 이사장과 함께 권 이사장까지 해임하기 위한 것으로 보인다.
방통위는 전체 5명 위원 체제로 운영되는데, 윤석열 대통령은 지난 5월 말 한상혁 전 위원장을 면직하고 후임 임명을 두달가량 미루다 최근 이동관 전 대외협력특보를 위원장 후보로 지명했다. 또 임기를 마치고 퇴임한 야당 몫 위원 후임은 아직 임명하지 않은 채 대통령 몫 위원 후임만 임명했다. 이에 따라 방통위는 3명 위원 체제로 파행 운영되고 있는데, 여당 쪽인 김효재 방통위원장 권한대행의 임기가 8월23일까지다. 결국 김 권한대행의 남은 임기 안에 방송사 이사진 문제를 일괄 처리하기 위해, 방통위 내부에서도 너무한다는 말이 흘러나올 정도로 무리한 진행을 하는 것이다.
일정도 그렇지만, 내용에서도 이번 방통위의 방문진 이사진 해임 추진은 다분히 무리하다. 알려진 방통위의 권 이사장 해임 제청 사유는 경영 및 운영에 대한 관리·감독 의무 위반, 사장 선임 과정 선관주의 의무 위반, 공공기록물 폐기 및 감사 방해 등이다. 현 상황에서 일일이 이를 반박하는 것은 무의미하겠지만, 방문진 이사회는 각 사안에 조목조목 반박하는 입장을 밝힌 바 있다. 대표적으로, 사장 선임 과정은 이사회 논의와 합의를 통해 시민평가단을 구성해 진행한 것으로 특정 이사 해임 사유가 될 수 없다고 밝혔다. 또 공공기록물 폐기 및 감사 방해는 문화방송의 자료를 방문진이 보관하고 제출할 의무를 갖고 있지 않으므로 이사 해임 사유가 될 수 없다고 주장했다. 따져보면 이러한 사안들은 논란의 대상이 되거나 향후 법적 판단의 대상이 될 수 있을지는 몰라도, 행정절차법상 해임 사유에 해당한다는 판결이 확정되기 이전에 일종의 우격다짐으로 이사진을 쫓아낼 근거는 될 수 없다.
또한, 한국방송이나 문화방송을 비난하는 과정에서 전가의 보도처럼 등장하는 높은 임금과 성과급 역시, 애초에 과도한 임금 수준이나 무리한 투자 등의 명확한 기준이 있는 것이 아니기에 ‘귀에 걸면 귀걸이, 코에 걸면 코걸이’식 문제 지적이라고 할 수 있다. 이사회의 의무 위반이 있다면 현 이사진 체제에서 급여 수준이 급격하게 올랐는지, 이사진이 임금 사안에 어떤 논의 과정을 가졌는가를 살펴보는 게 합당하지 않겠나. 물론, 이와 관련해 현재 한국방송이나 문화방송이 비슷한 수준의 다른 방송사에 비해 월등히 높은 임금이나 성과급을 지급하거나, 방문진이 이를 방치했다는 근거는 찾아보기 어렵다.
사실 모두 알다시피, 이미 정해진 일정에 따라 기계처럼 움직이고 있는 현 상황 속에서 이런 사안을 일일이 논의하는 건 무소용이다. 16일 방통위 전체회의에서는 남영진·권태선 이사장 그리고 교육방송(EBS) 정미정 이사 등이 한꺼번에 해임될 것으로 보인다. 조선일보는 이미 한국방송 이사장에 서기석 전 헌법재판관, 방문진 이사장에 차기환 변호사가 유력하다고 보도했는데 그대로 되어가는 모양새다.
영화 ‘대부’의 마지막 장면에서는 상대 패밀리들에 대한 일사불란한 복수와 함께 아들 마이클 시대의 서막이 그려진다. 때로 현실은 영화보다 더 냉혹하다. 방송계에 16일은 이동관 방통위원장 시대의 서막을 알리는, ‘대부’ 영화 속 디데이가 될지 모르겠지만, 사실 이는 우리가 익히 여러번 봐왔던 그 시절 그 영화의 재방송일 뿐이라는 것을 알고 있다.
정연주 사장 해임부터 고대영 사장 해임까지, 매 정부가 바뀔 때마다 봐왔던 그 모습일 뿐이다. 알다시피 그때 해임됐던 이들은 모두 훗날 법원 판결을 통해 해임이 부당했음을 확인받았다. 또다시 반복되고 있는 이 넌덜머리 나는 솎아내기를 이제는 멈춰야 하지 않을까? 이제는 이 소모적인 복수의 누아르에서 벗어나, 방송의 공정성과 독립성을 제도화할 수 있는 사회적 합의를 향한 새로운 시리즈가 시작되길 희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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