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명이 초등학생 성폭행했는데…집행유예라니 “왜 판사가 용서?”

합의금 공탁에 초등생 성범죄자 풀어줘

강원여성인권공동체·강원아동청소년인권지원센터 등 강원지역 30여개 인권단체가 지난 7일 강원 강릉시 춘천지법 강릉지원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지난해 초등학생 2명에게 현금과 게임기 등을 주고 성관계를 한 남성들에게 솜방망이 선고를 한 재판부를 규탄했다. 강원아동청소년인권지원센터 제공

지난해 초등학생 2명에게 현금과 게임기 등을 주고 성관계를 한 남성들이 최근 1심 재판에서 솜방망이 처벌을 받으면서 양형 논란이 이어지는 가운데 피해 부모가 “피해자가 용서를 안 하는데 왜 판사가 용서를 해주냐”고 반발했다.

피해 학생 2명 가운데 1명의 아버지 ㄱ씨는 9일 시비에스(CBS) 라디오 프로그램 ‘김현정의 뉴스쇼’에서 “1년 넘게 법원에 엄벌을 원하는 청원서만 해도 해도 수십번 낸 것 같다”며 “이 사람들하고는 도저히 합의가 안 되고 용서를 못 하겠다. 피해자가 용서를 안 하는데 왜 판사가 (남성들이) 공탁(금)을 걸었다고 해서 용서를 해주냐”며 이렇게 말했다.

시비에스(CBS) 라디오 프로그램 ‘김현정의 뉴스쇼’가 9일 공개한 피해 학생과 남성들의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대화. 김현정의 뉴스쇼 유튜브 갈무리

앞서 강원도에 거주하는 남성 6명은 지난해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통해 같은 지역 초등학생 2명을 만나 현금과 게임기 등을 주고 수차례 성관계를 했다고 한다. 이날 라디오에서 공개한 당시 초등학생과 남성 간의 대화를 보면, 한 피해 학생이 나이를 말하자 한 남성은 “아아 애기시구나”라고 웃으며 답했다. 또 다른 대화에서 한 남성은 한 피해 학생에게 나이를 물은 뒤 “간단히 말해 이런 정도라고 생각하심 돼요. 어려운 건 아니에요”라고 설명하기도 했다.

뒤늦게 이 사실을 알게 된 한 피해 학생의 부모가 남성들을 고소했고 남성들은 미성년자의제강간 등의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검찰은 4월 남성들에게 징역 3년에서 많게는 징역 20년을 구형했다. 그러나 1심 재판부는 지난달 18일 남성 1명에게 벌금 1000만원, 나머지 5명에게는 집행유예를 선고했다. 재판부는 “피해자 1명과 합의했고 다른 피해자에게도 공탁금을 냈고 피고들이 피해자의 의사에 반하는 행위를 한 것은 아니다”라고 양형 이유를 밝혔다.

이는 2020년부터 만 16살 미만의 미성년자와 성관계를 할 경우 동의 여부와 관계없이 형사 처벌을 받지만 지난해 공탁 방식을 간소화한 형사공탁특례제도가 감경 요소로 작용한 것으로 풀이된다. 형사공탁은 피해자와 합의하지 못한 피고인이 법원에 공탁금을 맡겨두고 피해자가 언제든 받아갈 수 있게 하는 제도다. 기존에는 피해자 이름과 주민등록번호, 주소 등을 알아야 공탁이 가능했다. 그러나 지난해부터 피고인이 사건번호만 알아도 공탁할 수 있게 제도가 간소화되면서 피해자 동의 없이 공탁한 피고인이 감형을 받는 사례가 잇따르고 있다. 한국성폭력상담소도 6월 성명을 내어 “성범죄 양형기준상 (공탁을 포함한 상당한 피해회복이) 감경요소에 포함돼 있어 감형을 목적으로 한 공탁이 빈번하다”며 “심지어 일부 가해자들은 범죄를 부인하면서도 유죄 판결을 대비해 공탁을 걸기도 한다”고 지적했다.

오승유 강원아동청소년인권지원센터 팀장도 이날 같은 라디오에 나와 “(이번 사건도) 피해자가 합의를 원하지 않음에도 가해자가 일방적으로 공탁했다는 이유로 형량 감경 요소로 봤다”며 “아동을 대상으로 한 성범죄는 합의도, 공탁금도 형량을 낮추는 데 고려돼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그는 “피해자들은 트라우마로 정기적으로 정신과 진료를 받고 있다”며 “한 친구는 너무 심한 트라우마를 겪어 정신과 입원까지도 앞두고 있다”고 전했다.

검찰은 지난달 21일 양형 부당을 이유로 항소한 상태다. 강원여성인권공동체·강원아동청소년인권지원센터 등 강원지역 30여개 인권단체도 7일 기자회견을 열어 “서로가 합의했고, 초범이기 때문에, 심지어 거금의 공탁금을 걸었다는 이유로 집행유예를 준다는 것은 가해자들에게 크나큰 면죄부를 주는 것이며 또 다른 누군가에게 정당성을 주는 행위”라며 “정의로운 판결을 2심에서 제대로 보여달라”고 촉구했다.

조윤영 기자 jyy@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