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정 역사상 없던 일”…이화영 재판에 무슨 일이?
“미션 받고 왔나” “당신” 언쟁…민주 지지자들은 “화이팅” 외쳐
(시사저널=구민주 기자)
8일 '쌍방울 대북송금 의혹'과 관련한 이화영 전 경기도 평화부지사에 대한 재판이 불과 1시간 만에 파행됐다. 2주 전 이 전 부지사 부부 간 '변호사 해임' 갈등 사태 후 벌써 두 번째 파행이다. 법조계에선 재판 중 변호사 사임과 고성, 퇴정이 뒤섞였던 전날 재판을 두고 "법정 역사상 이례적인 풍경이 펼쳐졌다"고 지적하고 있다.
이날 재판 전부터 세간의 관심은 그 어느 때보다 이 전 부지사의 입에 집중돼 있었다. 이 전 부지사가 당초 방북 비용 제공 사실을 이재명 당시 경기도지사에게 보고했다고 검찰에 진술했다가 최근에 "그런 적 없다"고 진술을 번복했기 때문이다. 과연 이날 그가 법정에선 어떤 진술을 내놓을지 아무도 선뜻 확신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檢 "재판 지연 의심" 덕수 "내가 유령이냐"
재판 분위기는 시작부터 흔들거렸다. 재판 시작 직후 이 전 부지사가 재판부에 "법무법인 '해광'의 조력을 받고 싶다"는 내용이 담긴 2장짜리 자필 입장문을 제출하면서다. 해광은 앞서 이 전 부지사의 배우자가 해임신고서를 제출한 곳이다.
이 전 부지사는 배우자가 해광을 해임한 데에는 "오해가 있었다"면서 "오늘 재판을 넘기고 (다음 재판에서) 해광 변호인과 다시 함께 진행하고 싶다"고 밝혔다. 해광은 지난 재판에 이어 이날도 해광은 불출석한 상태였다. 그 대신 이 전 부지사 옆엔 법무법인 '덕수' 김형태 대표변호사가 앉아 있던 터였다.
그러자 검찰이 발끈했다. 검찰은 이 전 부지사와 배우자 간의 견해차를 두고 "솔직히 재판을 지연하려는 의도가 있는 것 아닌가 의심이 된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변호인 선임 문제가 해결되지 않으면 차라리 국선변호인을 전속시켜 재판을 진행하는 게 바람직하다"고 제안했다.
이에 덕수 김형태 변호사가 반발하고 나섰다. 그는 "변호사가 나와있는데 (검찰이) 마치 제가 유령인양 국선을 논하고 있다"며 "버젓이 덕수가 나와 있는데 국선변호 하자는 건 재판권 침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결국 재판장은 재판이 시작한지 30분 만에 10분 간 휴정을 결정했다. 이 전 부지사와 덕수 측의 의견 조율을 위함이었다. 휴정 동안 이 전 부지사의 입장을 들은 김 변호사는 결국 '사임계'를 제출했다. 김 변호사는 "공소장에 없는 내용으로 1년 간 하는 재판에 더는 변호인 조력을 할 의사도 없다"고 설명했다.
검찰과 덕수 간의 신경전은 여기서 멈추지 않았다. 검찰이 다시 김 변호사를 향해 "피고인(이화영 전 부지사)과 조율이 안 된 상태에서 검찰 조서에 부동의하는 (일종의) '미션'을 받고 온 것이 아닌지 의심이 든다"며 날을 세웠다.
김 변호사는 "무슨 미션을 받나? 훈계하지 말라"고 맞섰고 결국 "퇴정하겠다"며 곧장 재판정을 나섰다.
이날 방청석엔 쌍방울 그룹 관계자들은 물론,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 지지자들이 자리를 메우고 있었다. 이들은 김 변호사가 검찰과 맞선 후 퇴정하는 동안 "변호사님 화이팅"을 외치며 응원을 보냈다. 이에 재판장이 자제를 당부하기도 했다.
이 같은 혼란 속 결국 재판은 1시간 만에 파행을 맞았다. 재판 후에도 검찰과 덕수 측은 장외전을 이어갔다. 검찰은 김 변호사에 대해 "변호사 징계개시신청 등 필요한 조치를 검토하고 있다"고 밝혔다. 김 변호사가 의뢰인인 이 전 부지사의 의사에 반하였으며 일방적으로 퇴정해 공판이 공전됐다는 이유다.
김 변호사 역시 퇴정 후 취재진에 "난 진작에 이 재판 바로 잡으려 했다. 공소장에도 없는 증인은 왜 끝없이 부르고, 대북송금 얘기가 (해당 재판에) 왜 나오냐"며 "재판의 기초가 안 된 '엉터리 재판'"이라고 주장했다.
"'보이지 않는 손' 의심" "마피아 영화인 줄"
재판 파행 소식이 전해진 후 정치권에선 여당을 중심으로 이 전 부지사를 회유하려는 움직임이 작용하고 있다는 의구심을 제기했다. 강민국 국민의힘 수석대변인은 전날 논평에서 "쌍방울 대북 불법 송금 의혹의 끝에 이재명 대표가 있다는 사실이 드러날까 두려워 민주당이 앞장서서 회유, 협박, 증거 인멸 등을 시도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의심을 지울 수 없다"고 말했다.
여당은 이 전 부지사 재판과 관련한 일련의 과정이 "일반적인 재판에선 상상도 할 수 없는 일들의 연속"이라며 "거대 야당이 정상적인 재판 진행을 방해하는 술수를 부리고 있다"고 주장했다.
민주당 내에서도 비슷한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비명계 이원욱 의원은 9일 MBC 라디오에 출연해 "재판에서 아주 황당한 일들이 벌어졌다"며 "보이지 않는 손이 움직이고 있는 것 아닌가 하는 의구심을 줄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진행자가 '보이지 않는 손이 이재명 대표라고 보는 것이냐'고 묻자, 이 의원은 "거기까지는 모른다"면서 "(그게 이 대표라면) 그러면 보이는 손이라고 얘기했을 것"이라고 했다.
법조계에서도 전날 재판 상황에 대해 이례적이라는 입장이다. 한 변호사는 취재진에 "법정 사상 이런 해프닝이 있었나 싶을 정도다. 앞서 이 전 부지사 부부 간 석연치 않은 갈등부터 이번 재판 중 사임 과정까지 부자연스러운 건 분명해보인다"고 지적했다.
반면 또 다른 법조인은 "검찰이 덕수 측 변호인을 향해 '미션 받고 오셨나'라며 비꼬는 태도는 적절치 않았던 것 같다. 처음부터 음모론을 제기하면 싸우자는 것밖에 더 되나"라고 비판했다.
한편 한동훈 법무부 장관은 9일 오전 출근길에 이 전 부지사 재판 파행과 관련한 취재진의 질문에 "보스에게 불리한 법정진술 하는 것을 막으려는, 마피아 영화에서나 나오는 사법방해"라며 이재명 대표를 겨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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