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중국해 모래톱에 서있는 美 폐군함... 필리핀 서쪽 바다 수호자 된 사연

이철민 국제 전문기자 2023. 8. 9. 13: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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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이 또 다시 남중국해에서 필리핀 해군 수비대가 주둔한 지역에 식량과 연료, 식수 등의 물자를 전달하려는 필리핀 선박에 물 대포를 쏴서 국제사회의 비난을 사고 있다. 지난 5일 발생한 이 사건과 관련해, 페르디난드 마르코스 주니어 필리핀 대통령은 7일 중국 대사관에 항의 서한을 보냈고, 외무부는 “필리핀 해군의 생명을 위협하는 위험하고 불법적인 행동”을 비난했다.

필리핀 해군 수비대는 남중국해의 스프래틀리 군도((Spratly Islands) 내의 세컨드 토머스 숄(Second Thomas Shoal)에 주둔하고 있다. 중국 해안경비대는 지난 2월에도 필리핀 해군 수비대에 물자를 공급하려는 필리핀 선박에 레이저를 겨냥한 것을 비롯해, 수시로 충돌 위협을 하고 있다.

미 국무부는 6일 “남중국해의 필리핀 선박ㆍ항공기ㆍ군인들에 대한 무장 공격은 1951년 필리핀과 맺은 상호방위조약에 따른 미국의 개입을 초래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호주ㆍ일본ㆍ독일ㆍ캐나다 등도 이 사건 이후에 “위험하고 안정성을 깨는 행동”이라고 중국을 비난했다.

필리핀 해군이 남중국해 스트래틀리 군도의 모래톱인 세컨드 토머스 숄에 의도적으로 좌초시켜, 필리핀의 최서단을 지키고 있있는 폐군함 시에라 마드레 함/필리핀 해군

그런데 필리핀 선박이 물자를 공급하려고 하는, 세컨드 토머스 숄에 위치한 필리핀 수비대가 위치한 곳은 사실 미국이 1944년 2차 대전 때 전차상륙함(LST)으로 건조한, 지금은 선체가 완전히 녹슬어 구멍이 숭숭 뚫린 폐(廢)군함이다. 이 폐군함이 어떻게 필리핀 연안에서 105 해리(nautical mileㆍ195㎞) 떨어진 이곳에서 필리핀 서해 바다를 지키게 된 것일까.

◇‘유령선’ 몰골이지만, 필리핀 해군의 실전 배치함

스프래틀리 군도의 모래톱(shoal)에 놓인 이 폐군함은 자체 동력으로는 이동이 불가능한 ‘유령선’ 몰골이지만, ‘시에라 마드레’라는 이름을 지닌 필리핀 해군의 정식 취역함이다. 시에라 마드레는 필리핀 북부 루손 섬의 위치한, 오지 마을들을 품은 산맥이다. 필리핀 정부는 최서단(最西端) 수역을 지킨다는 의지를 담아, 길이 100m의 이 군함에 이 산맥 이름을 붙였다.

중국이 군사시설로 바꾼 미스치프 리프(붉은색 원)와, 이에 맞서 필리핀 최서단 수비대가 위치한 세컨드 토머스 숄.

중국은 100개의 섬과 암초로 구성된 스프래틀리 군도(중국명 난사ㆍ南沙 군도)에 위치한 암초인 미스치프 리프(Mischief Reef)에 1995년부터 일방적으로 군사시설을 지었다. 그러자 필리핀 정부는 미스치프 리프에서 40㎞도 안 떨어진 곳에 위치한 모래톱인 세컨드 토마스 숄에 1997년 시에라 마드레 함을 일부러 좌초시켰다. 이후 시멘트와 철강, 케이블 등을 이용해, 모래톱에 시에라 마드레를 고착시켰다.

◇중국에선 1100㎞나 떨어진 모래톱

현재 소규모의 필리핀 해병대 병력이 지키는 세컨드 토머스 숄(shoalㆍ모래톱)은 필리핀 서쪽에서는 약 195㎞(105 해리), 중국의 가장 가까운 하이난 섬으로부터는 1100㎞나 떨어져 있다.

필리핀은 이 모래톱을 포함해 스프래틀리 군도 자체가 자국 연안으로부터 200해리 내에 위치한 ‘배타적 경제 수역’이라고 주장한다. 스프래틀리 군도에 대해선 이밖에 베트남ㆍ말레이시아ㆍ타이완ㆍ브루나이 등이 영유권을 다툰다.

100개의 섬과 암초로 구성된 스프래틀리 군도의 위치

그러나 중국은 스프래틀리 군도뿐 아니라, 전체 336만7000㎢에 달하는 남중국해의 거의 대부분에 대해 자국이 일방적으로 설정한 해상경계선(구단선ㆍ九段線)을 들어 “명백한 주권”을 주장한다. 그리고 이곳의 수많은 섬과 암초를 군사 기지화했다. 2016년 해양법에 관한 유엔협약(UNCLOS)에 따른 국제중재재판소는 중국의 이러한 주장이 “역사적 근거가 없다”고 판결했지만, 중국은 무시한다.

따라서 필리핀 정부는 녹슬어 구멍이 숭숭 뚫린 시에라 마드레 함을 결코 포기할 수 없다. 필리핀 해군이 철수하면, 중국이 이 폐군함을 파괴하고 이 모래톱도 장악해 자국 군사시설을 지을 것이기 때문이다.

◇미 전차상륙함 퇴역 후, 베트남ㆍ필리핀 해군함으로 거듭 변신

시에라 마드레 함은 애초 1944년 2차 대전 중에서 전차상륙함(LST)-821로 건조됐다. 미 해군은 당시 이런 LST를 1000여 척 건조했다. 이후 1946년 미국에서 퇴역한 LST-821은 ‘하닛 카운티’라는 새 이름을 받고 예비함으로 대기하다가, 1966년 베트남 전쟁 때 베트콩의 메콩강 삼각주 접근을 막기 위한 작전 ‘게임 워든(Game Warden)’에 다시 동원됐다.

1970년 베트남 해군에 이양돼 미토(美湫ㆍMy Tho)로 개명됐다가, 1975년 베트남이 패망하면서 3000명의 난민을 태우고 필리핀 수빅 만으로 마지막 항해를 했다. 그리고 필리핀 해군에 이양돼 ‘BRP 시에라 마드레’로 명명됐다. BRP는 ‘필리핀공화국 함(艦)’이라는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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