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네병원 줄폐업" 우려하더니···의사단체 "병상수급 통제 적극 환영"

안경진 기자 2023. 8. 9. 13: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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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협 9일 '제3기 병상수급 기본시책' 관련 입장문 배포
[서울경제]
지난달 28일 오후 서울 용산구 대한의사협회 회관에서 열린 '적정 병상수급 시책 마련 촉구 기자회견'에서 우봉식 의료정책연구원장이 발표하고 있다. 연합뉴스

정부가 대형 병원들의 무분별한 몸집 불리기를 막기 위한 '사전 승인제' 등을 추진하자 의사단체가 환영의 뜻을 밝혔다. 국내 병상이 수도권 지역에 집중되어 있는 만큼, 지역 의료체계 붕괴를 막기 위한 대책 마련도 시급하다는 방침이다.

대한의사협회는 9일 입장문을 통해 "제3기 병상수급 기본시책에 적정 수준의 병상 유지를 위한 국가 병상관리체계 마련과 의료기관 신규 개설 절차 강화 등이 주요 추진 과제로 포함된 데 대해 적극 환영한다"고 밝혔다.

보건복지부는 지난 8일 신규 병상 개설 조건을 강화하는 내용의 '3기 병상수급 기본시책'을 발표했다. 올해 정기국회 회기 안에 종합병원 개설을 ‘신고제’에서 ‘사전 승인제’로 바꾸도록 의료법을 개정하고, 오는 2027년까지 정책 실행에 나선다는 방침이다. 정부가 병상 상황을 파악해 제한·조정 지역이라고 평가되면 추가로 병상을 늘리지 못한다. 박민수 복지부 2차관은 “2027년 국내 병상이 10만5000개 과잉 공급될 것으로 예측되는 만큼, 국가 차원의 관리가 필요하다"며 " 의료법이 개정돼 병원 개설이 사전신고제로 바뀌면 100병상 넘는 종합병원을 세울 때 시·도 의료기관개설위원회 승인을 받아야 하고, 300병상 넘는 종합병원을 열거나 수도권 대형 대학병원이 분원을 지을 땐 보건복지부 장관 승인을 추가로 받도록 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최근 발표된 OECD 보건통계 2023 자료에 따르면, 2021년 기준 한국의 병상 수는 인구 1000명당 12.8개로 OECD 가입 국가 중 가장 많았다. OECD의 인구대비 평균 병상 수는 한국의 3분의 1 수준인 4.3배에 그쳤다. 급성기 치료 병상 수만 따져도 한국은 인구 1000명당 7.3개로 OECD 평균(3.5개)의 약 2.1배에 달했다. 또한 입원 환자 1인당 평균 재원일 수는 18.5일로 OECD 평균(8.1일)보다 10일 넘게 길었다.

의협은 수도권 대학병원의 분원 설립에 따른 지역 의료체계 붕괴를 우려하는 목소리도 나왔다.

의협은 "수요에 비해 병상이 과잉 공급되고 있는 상황에서도 현재 수도권에서만 9개 대학병원이 11개의 분원 설립을 추진하면서 2028년이 되면 수도권에 6600병상 이상이 증가할 것으로 예상된다"며 "지역 간 병상 수급 및 의료체계 불균형은 더욱 심화될 것으로 보인다"고 우려했다. 이러한 병상의 과잉 공급은 의료 이용의 과잉을 부추길 뿐 아니라, 의료자원의 낭비와 국민 의료비 증가 등의 문제가 발생할 우려가 매우 크다는 게 의협의 지적이다.

현재 경기 남부 지역에는 분당서울대병원을 필두로 분당차병원·아주대병원·가톨릭대 성빈센트병원·한림대성심병원·원광대산본병원·중앙대광명병원 등 대학병원 분원이 10곳 가까이 운영되고 있다. 여기에 9개 대학병원이 수도권에 총 11곳의 분원 건립 계획을 밝힌 상태다. 서울대병원은 경기 시흥에 800병상 규모의 분원을 건립한다고 예고했고, 서울아산병원은 인천 청라, 연세의료원은 인천 송도에 분원을 만들 예정이다. 그 밖에도 가천대 길병원과 인하대병원·경희의료원·아주대의료원·고려대의료원·한양대의료원 등이 각각 500~1000병상 규모의 분원 설립을 추진하고 있다.

의협은 병의원을 개설해 운영하는 개원의 중심 단체다. 1차 의료기관인 동네의원 비중이 앞도적으로 높다. 이들은 대형 병원들이 몸집을 무분별하게 몸집을 부풀릴 경우, 동네의원과 중소병원들이 줄폐업할 것이라고 우려한다.

의협은 "특히 수도권 대학병원의 경쟁적 분원 설립은 지역 내 환자는 물론 의료인력까지 무분별하게 흡수해 지역 주민의 일차적 의료를 담당하고 있는 의원급 의료기관 및 중소병원 운영에 막대한 피해를 끼쳐 폐업률을 높이는 등 지역의료체계 및 의료전달체계를 순식간에 무너뜨릴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어 "수도권 대형병원 쏠림 현상과 열악한 지역의료 인프라로 지역 간 의료 격차가 심화되고, 지역필수의료가 붕괴 위기에 처해 국민들의 우려가 높은 상황에서 병상, 의료인력, 환자 등을 포함한 여러 의료 인프라의 수도권 집중을 유발하는 수도권 대학병원 분원 설립은 지역의료 붕괴를 더욱 가속화시킬 것이 자명하다"고 덧붙였다.

의협의 요구사항은 수도권 대학병원의 경쟁적인 분원 설립을 방지하고 적정한 병상 수급 시스템을 구축하기 위해 중앙정부가 직접 병상수급을 적절히 통제할 수 있는 제도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의협은 "이번 기본시책에 종합병원(300병상 이상) 및 수도권 대학병원 분원 등의 의료기관 개설 시 보건복지부 장관 승인을 의무화하는 방안과 종합병원(100병상 이상) 병상 신증설 시 시·도의료기관개설위원회의 사전 심의 의무화 방안이 포함된 만큼 이를 위한 법·제도 정비가 신속히 이뤄지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이어 "이번 병상수급 기본시책을 바탕으로 시·도에서도 의료자원이나 지역별 특성 등 여러 상황을 고려한 병상수급 및 관리 계획을 신속히 수립해 무분별한 수도권 대학병원 분원 설립을 차단하고, 효율적이고 합리적인 병상 대책을 통해 붕괴 위기에 처한 지역의료를 살릴 수 있는 계기가 마련되기를 기대한다"고 덧붙였다.

또 "향후에도 국회, 정부와 지속적인 소통과 협력을 이어가겠다"며 "바람직한 병상수급 대책 마련에 필요한 의견을 적극적으로 개진해 심각한 위기에 처해있는 지역의료의 불균형을 해소하고, 올바른 의료전달체계 확립으로 국민들에게 최선의 의료서비스가 제공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할 것"이라고 말했다.

안경진 기자 realglasses@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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