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흉기난동부터 살인 예고 글까지…코로나19 후유증 사회"

이지현 2023. 8. 9. 1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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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종우 대한신경정신의학회 법제사회특별위원장 인터뷰
15년 전 日 아키하바라 불특정다수 테러 모방 70여건 더
불법행위 없으면 강제입원 불가…시스템 전면 개편 필요

[이데일리 이지현 기자] “미국에서 총기 난사 사건을 종종 보잖아요. 그런 일들이 우리 사회에서도 일어나기 시작했습니다.”

8일 백종우 대한신경정신의학회 법제사회특별위원장(경희대 정신의학과 교수)은 최근 일어난 신림역, 서현역, 대전 교사 피습 등과 사건에 대해 이같이 말했다.

사회적 관심↑ 모방범죄 가능성↑

7월 21일 신림역, 8월 3일 서현역 등에서 ‘묻지마 흉기 난동’ 사건이 벌어졌다. 신림역에선 4명이 서현역에선 14명이 목숨을 잃거나 다쳤다. 지난 4일에는 대전 교사 피습사건이 벌어졌다. 한 달도 안 된 사이에 19명이나 일면식도 없는 사람으로부터 공격을 당한 것이다. 주변에선 총기가 허용됐다면 우리나라에서 총기사건이 발생했을지 모른다며 공포가 확산하고 있다. 이에 정부는 치안활동을 강화하겠다고 했지만, 온라인에는 아랑곳하지 않고 ‘살인 예고’ 글이 올라오고 있다. 지난 3일부터 지난 8일 오전까지 경찰이 검거한 작성자만 67명에 이른다.

백종우 대한신경정신의학회 법제사회특별위원장(경희대 정신의학과 교수)가 최근 흉기 사건과 관련해 답변하고 있다.
백종우 위원장은 이 같은 상황을 코로나19로 인한 일종의 후유증이라고 봤다. 2020년부터 지난해까지 3년간 코로나 팬데믹(전세계 대유행)을 겪으며 코로나19로 인한 사망자 증가, 의료시스템 과부하로 인한 사망자 증가, 만성질환자의 무너진 의료접근성 등을 겪었다면, 이번엔 그동안 혼자만의 시간이 늘며 경험한 우울감, 경제적 어려움 등이 후유증으로 폭발하고 있다고 진단했다.

실제로 서현역 흉기난동 사건의 피의자 최원동은 2015년병원에서 조현성 인격 장애 진단을 받고 치료를 받았지만, 2020년부터는 스스로 치료를 중단했다. 대전의 한 고교에 침입해 교사를 흉기로 찌른 20대 남성도 2021년부터 조현병과 우울증 진단을 받았지만, 치료를 받지 않았다. 백 위원장은 “방치된 정신질환자 관련 시스템 문제가 복합적으로 구현하는 게 아닌가 싶다”며 “여기에 주변의 괌심을 끌고자 하는 이들이 모방하면서 연이어 흘러가는 것 같다”고 진단했다.

이와 비슷한 사건은 2019년에도 있었다. 22명의 사상자를 낸 진주 아파트 방화 살인사건을 저지른 안인득은 불길을 피해 빠져나오는 노인과 여성, 아이만을 집중 공격했다. 사회적 공분이 일며 정신질환자에 대한 사법입원제 논의가 급물살을 탔지만, 결국 국회 문턱을 넘지 못하고 끝나버렸다. 백 위원장은 “우리나라는 정신건강복지법 응급입원규정에 따라 자·타해위험이 큰경우 즉 사고가 발생하지 않은 상태에서는 이송이 이루어지지 못한다”며 “경찰이나 정신건강복지센터가 할 수 있는 조치는 환자를 설득하는 것밖에 없다. 환자가 문을 열어주지 않으면 국가시스템은 전혀 작동하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그는 초기 현장 대응 인력에 적절한 권한을 부여하고 최소한 전문적 정신건강평가를 의무적으로 시행하고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대면을 위해 경찰에 의한 병원이송 또는 찾아가는 평가를 제도화해야 한다고 봤다. 백 위원장은 “우린 정신건강에 대한 진찰 평가를 의무화하지 않는 게 맹점”이라며 “사법입원이 없는 일본에서도 정신입원심사회라는 게 있어서 의사가 공무원과 같이 집으로 가서 당사자를 평가하고 필요하다면 입원조치까지 할 수 있는 공무원 직위를 부여한다”고 설명했다.

청년 정신건강 지원 시스템 구축 필요

그는 폭력 난동으로 불안과 공포가 퍼지며 사회적 관심이 높아져 모방범죄가 확산할 수 있다고 우려했다. 실제로 2008년 트럭으로 행인들을 들이받은 뒤 흉기를 휘둘러 17명의 사상자를 낸 도쿄의 ‘아키하바라 살인 사건’ 이후 일본에서도 비슷한 테러사건이 70건이나 벌어졌다.

백 교수는 “적극적 사후예방을 위해서는 법정신의학과 치료감호시스템의 전면적 개선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통계연보에 따르면 교정시설 내 정신질환 수용자가 2011년 1529명에서 2020년 4978명으로 급증했다. 2020년 국립법무병원의 수용인원은 1038명인 수준에서 정신질환자가 일반시설에 수용되면서 교정시설 내 사고도 증가하고 있다.

그는 “어느 나라나 범죄와 관련된 일부 중증 정신질환은 일반적인 정신의료체계와는 별도로 치료감호법 등의 형사법 체계를 통해 사회안전 차원에서 다루고 있지만 우리나라는 검찰의 치료감호 청구가 2021년 기준으로 불과 78건 청구에 그치고 있다”며 “폭력성이 높은 일부 중증 정신질환의 경우는 보건복지부나 의료시스템이 아니라 법무부가 관장하는 법정신의학 시스템에서 적극적으로 관리할 필요성이 있다”고 강조했다.

아울러 조현병이 주로 발병하는 청소년과 청년 시기의 정신건강 관리를 위한 특별한 지원 체계를 만들어 시행하고 국내에서도 일부 시도되고 있는데 청년 정신건강 지원을 위한 체계를 신설하고 강화해야 한다고 봤다. 백 교수는 “암센터, 아토피 센터 등 주요 신체질환 센터를 거점 의료 기관에 설치하는 것처럼 조현병 조기·집중치료 센터를 설립해 운영하고 지원할 필요가 있다”며 “조현병은 골든타임을 놓치지 않고 조기에 적절하게 치료받고 재활하며 유지할 때 충분히 회복 가능한 질병이다. 이제라도 우리 사회의 중증 정신질환 체계를 손볼 수 있는 골든타임이 완전히 지나지 않도록 보다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고 말했다.

마지막으로 그는 이번 사건에 대한 분노가 환자나 가족으로 향하는 모습에 대해 우려했다. 백 위원장은 “이들에게 분노가 향하면 결국 관련 환자들이 또 숨게 악순환이 되고 말 것”이라며 “(조현병 환자들에 대한) 비난이나 편견 증가가 아니라 사회시스템을 개선하는 동기가 됐으면 싶다”고 말했다.

이지현 (ljh423@e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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