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 현수막 ‘난립’, 태풍 ‘카눈’ 온다는데…[김기자의 현장+]

김경호 2023. 8. 9. 12: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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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슬아슬하게 매달린 ‘각목’…흉물로 방치
현수막만 제거된 채 노끈·각목·철사는 그대로 ‘시민들 위협’
주민들 ‘분통’, 신고해도…“용산구청은 방관”
가로수는 물리적 충격에 깊은 상처까지
대통령실 인근, 집회·시위 때마다 동일한 현수막 ‘난립’
서울 용산구 대통령실 인근 삼각지역 사거리에 걸린 정당 현수막들. 노끈은 그대로 남아 있는 모습.
“붉고 노랗고 시선에 거슬리지. DNA가 어쩌니...정부가 어쩌니...똑같은 문구도 한 두번이어야지...보이는 곳마다 원색적인 비난 문구, 폭염만큼 짜증만 납니다. 찢긴 현수막 신고해도 구청에서는 보고 그냥 가. 신고해도 일 안 해요” (용산구 주민)

거리마다 흔히 볼 수 있는 각양각색의 정치 현수막. 가로수로 사이부터 전봇대 사이, 다리 밑부터 육교 위까지 시선이 가는 곳인 명당자리는 어김없이 정당 홍보, 뮤지컬, 콘서트 및 아파트 분양 광고 현수막이 차지해 몸살을 앓고 있다. 특히, 정치 현수막이 문제 지적이다. 지난해 말, 관련 법 개정으로 정당이 내거는 현수막은 규제 대상에서 빠지면서, 현수막 공해가 심각해지고 있다.

◆ 현수막, 노끈·각목·철사가 ‘덕지덕지’ 강풍에는 흉기

도심 곳곳에 난립한 정이 현수막이 강풍 속 흉기로 돌변할 수 있다. 특히 6호 태풍 ‘카눈’ 다가오는 만큼 각종 시설물은 관할 지자체에서 나서서 안전 관리에 신경을 써야 하지만, 용산구청은 ‘정당법’에 의해 제거 대상이 아니라고 선을 그었다.
서울 용산구 대통령실 인근 삼각지역 사거리에 걸린 정당 현수막들.
지난 8일 오후 서울 용산구 대통령실 인근 삼각지역 사거리 부근. 각종 정당 현수막 15개가 내걸렸다. 어느 쪽을 둘러봐도 현수막이 시야에 들어왔다. 가로수마다 고정된 현수막이지만, 작은 바람이 불자 떨어질 듯 펄럭이고 있었다. 일부 현수막 찢어진 채 보행자에게 피해를 줄 수 있는 아찔한 상황이 연출 되고 있었다.

이날 용산구 신용산역에서부터 남영역 사거리까지 양쪽 가로수에는 다양한 대형 현수막이 고정된 채 펄럭이고 있었다. 현수막에는 “서이초 교권 추락 ○○○ ○○○”,“유초등생에게 ○○○ ○○○○” 등의 라는 붉은색을 띤 자극적인 문구가 새겨진 채 현수막이 펄럭였다.

횡단보도 건너편도 마찬가지. 가로등에는 “○○○ 합시다! 35조 추경”, “다시 빛나는 ○○○○○” 큼직한 정치인 얼굴과 직책까지 크게 실린 채 현수막이 걸려 있었다.
대통령실 앞 인도 현수막이 위태롭게 나부끼는 모습.
대통령실 앞 인근 도로 쓰레기 수거함에는 분리되지 않은 채 현수막에 그대로 버려져 있다. 쓰레기 수거함에는 각종 집회·시위 도구가 버려져 있었다
삼각지역 인근 한 아파트에서 손자와 산책 중인 한 노부부는 “여기서 십 년 넘게 살았지만, 매일 전쟁 난 심정으로 버틴다고 했다”며 “집회 때는 현수막이 도배 된다. 또 확성기 소음에 머리가 깨질 지경이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가로등이나 가로수 높은 곳에 설치된 정치 현수막은 선전 효과를 극대화 노려 야광색 사용해 눈에 피로와 도시 미관을 해칠 뿐만 아니라 사거리 등 낮게 단 현수막은 운전자 시선 분산시킨다. 특히, 강풍이 불어 자칫 찢어진 현수막이 도로를 향해 펄럭일 경우 교통사고 위험까지 있다.
현수막만 제거된 채 묶었던 노끈은 그대로 남아 있는 모습.
이른바 명당자리의 가로수·전봇대·가로등을 자세히 살펴보았다. 하나 같이 오래된 듯한 노끈과 철사로 그래도 방치된 채 미관을 크게 해치고 있었다. 현수막만 제거된 상태에서 가로등과 전봇대는 오래된 노끈이 여려 겹으로 휘감긴 채 고스란히 남아 눈살을 더욱 찌푸리게 했다.
이날 남영역 인근 사리, 상처 난 가로수를 쉽게 찾아볼 수 있었다. 설치 과정에서 노끈이나 철사를 사용하다 보니 현수막이 제거하더라도 그 흔적은 가로수에 고스란히 남을 수밖에 없다. 일부 가로수에는 녹이 쓴 철심이 깊이 박힌 채 방치돼 있었다. 현수막에 사용된 것으로 보이는 각목은 노끈 아슬아슬하게 매달린 채 강한 바람에 날아갈 듯 흔들리고 있어 보는 사람을 불안하게 만들기도 했다. 상처 난 가로수는 보기에도 흉측할 뿐만 아니라 생육도 나빠지게 된다. 결국 고사하면서 세금을 들여 다시 심어야 하는 악순환이 반복됐다.
용산구 남영역 인근 한 가로수에는 방치된 현수막.
특히 용산구 대통령실 주변은 상황이 더욱 심각했다. 노조와 시민단체 등의 집회나 1인 시위가 잇따르면서 현수막 공해로 몸살을 앓고 있다. 주변 화단과 쓰레기 수거함에는 분리되지 않은 채 현수막에 그대로 버려져 있었다. 쓰레기 수거함에는 각종 집회·시위 도구가 버려져 있었다.
이 광경을 목격한 시민들은 곱지 않은 시선을 보냈다. 삼각지역 횡단보도 그늘막에서 신호를 기다리는 인근 주민은 “청와대에서 대통령실을 용산으로 옮겨 현수막 공해는 말도 못 한다”라며 “애들 볼까 무섭다. 어른들이 아이들은 생각도 안 하는지. 문제는 구청에서 신경을 써야 하는데, 안 한다”라며 인상을 찡그렸다.
한 가로등에 현수막만 제거된 채 묶었던 노끈은 그대로 남아 있는 모습.
한 전봇대에 현수막만 제거된 채 묶었던 노끈과 각목은 그대로 남아 있는 모습. 높은 위치에 묶여 방치된 노끈과 철사는 강풍에 자칫 보행자를 위 떨어져 사고로 이어질 수도 있다.
현수막만 제거하고 노끈과 철사는 그대로 방치하는 경우가 많다. 높은 위치에 묶여 방치된 노끈과 철사는 자칫 보행자를 위 떨어져 사고로 이어질 수도 있다.

관할 구청인 용산구청은 “대통령 집무실 앞 현수막들은 대부분 정당 현수막으로 작년 12월에 개정된 ‘정당법’에 의해 정당 현수막은 구에서 제거할 수 있는 대상이 아니다”라며 “훼손되었거나 안전 위험이 있는 경우 해당 당에 연락해서 제거 및 조치를 할 수 있게 하고 있다”고 밝혔다.

구체적으로 현수막을 제거 후 남아 있는 ‘노끈·각목’에 제거에 대해 용산구청에 재차 질의하자 공식 답변으로 일괄한다고 밝혔다.

◆ 강제 철거 나선 지자체 있지만

9일 오전 10시쯤 서울 종로구 광화문 사거리 인도에서는 형광 조끼를 착용한 서울시 공무원이 현수막 제거에 분주한 모습이었다. 유동 인구가 많은 서울 도심 거리답게 정치 현수막이 곳곳에서 깃발처럼 나붓끼고 있었다. 현수막 수는 용산구 대통령실 인근과 비슷했다.

정확한 숫자를 파악하기 힘들 정도로 입간판과 현수막과 난립해 태풍 위험에 그대로 노출돼 있었다. 가게를 홍보하는 입간판들은 대부분 철제나 플라스틱으로 만든 것. 태풍에 날리거나 찢길 경우 보행자에 치명적일 수 있다.
서울시 관계자가 9일 오전 종로구 광화문 사거리에 걸린 현수막을 철거하고 있다.
현수막 제거 이유를 묻자 “태풍 ‘카눈’의 북상으로 시민의 안전을 위해 사전에 현수막을 제거하고 있다”고 밝혔다.
헌법재판소는 지난해 선거법의 관련 조항들에 헌법불합치 결정을 내리면서 올해 7월 31일까지 법을 개정하라고 시한을 정했다. 어떤 선거든 180일 전부터 이런 행위들을 전부 금지하는 것이 정치적 표현의 자유를 과도하게 제한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여야의 시한 내 선거법 개정 합의는 무산됐다.
현수막만 제거된 채 묶었던 노끈은 그대로 남아 있는 모습.
이에 따라 선거법의 관련 조항들이 개정되기 전까지는 누구든지 아무 때나 선거 현수막을 내걸고 유인물을 뿌릴 수 있게 됐다. 여야 지도부는 뒤늦게 8월 임시국회 내에 반드시 선거법 개정안을 처리하겠다는 입장이지만, 일부 법 조항에 대한 이견 해소가 변수로 남아 있어 처리 시점이 불투명한 상황이다.

글·사진=김경호 기자 stillcut@segye.com

글·사진=김경호 기자 stillcut@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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