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빚 내서 집 사자” 7월 가계대출 6兆 증가…잔액 또 ‘사상 최대’
7월 증가폭 22개월 만에 최대
‘내 집 마련’에 주담대 6조원 급증
정부·한은 ‘정책 엇박자’에 부채 축소 멈춰
가계부채 관리 ‘빨간불’
지난달 가계가 은행에서 빌린 돈이 6조원 늘면서 가계대출 잔액이 사상 최대를 기록했다. 올해 들어 주택구매가 살아나면서 주택담보대출을 중심으로 가계대출이 급증했기 때문이다. 4개월 연속 증가했다.
금리 인상에도 가계대출이 좀처럼 잡히지 않으면서 한국 경제의 ‘뇌관’으로 꼽히는 가계부채가 감당하기 어려운 수준으로 불어날 것이란 경고음이 커지고 있다. 정부가 부동산 시장 연착륙을 위해 관련 규제를 완화하면서 ‘내 집 마련’ 수요를 부추기고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한국은행 금융통화위원회는 “가계부채 문제를 해결하려면 질서있는 디레버리징(deleveraging·부채 축소)이 필요하다”고 촉구했다.
한국은행이 9일 발표한 ‘2023년 7월중 금융시장 동향’에 따르면 지난달 말 은행 가계대출 잔액은 전월 대비 6조원 늘어난 1068조1000억원을 기록했다. 지난 4월부터 4개월 연속 증가해 잔액 기준으로 역대 최대치를 경신했다. 증가폭은 2021년 9월(6조4000억원) 이후 1년 10개월 만에 가장 컸다.
‘내 집 마련’ 수요에 힘입어 큰 폭 늘어난 주택담보대출(주담대)이 가계대출 증가세를 견인했다. 한국은행은 “지난달 주담대는 전세자금 수요 둔화에도 불구하고 주택구입 자금 관련 수요가 지속되면서 전월 대비 6조원 늘었다”고 설명했다. 주담대는 지난 3월부터 5개월 연속 늘었다.
윤옥자 한국은행 금융시장국 시장총괄팀 차장은 “수도권 중심의 주택 매매거래 증가로 가계 주택관련 자금 수요가 계속 이어지면서 주담대도 큰 폭의 증가세를 지속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실제 수도권 아파트 매매 거래량은 올해 2월 1만3000호, 3월 1만5000호, 4월 1만5000호, 5월 1만6000호, 6월 1만6000호 등으로 서서히 증가했다.
지난달 기타대출은 100억원 소폭 줄어드는 데 그쳤다. 한국은행은 “기타대출은 분기말 부실채권 매·상각 효과 소멸과 주식투자 관련 일부 자금수요 등의 영향으로 감소폭이 전월(-1조2000억원)보다 축소됐다”고 했다. 기타대출은 높아진 금리 수준, DSR 규제 등의 영향으로 2021년 12월부터 지난달까지 20개월 연속 감소세를 지속했다.
한국은행은 지난 6월까지 주택거래가 늘어난 점을 감안하면 가계대출이 8월까지 증가 흐름을 이어갈 가능성이 높다고 전망했다. 윤 차장은 “주택거래는 통상 2~3개월의 시차를 두고 주담대 수요로 이어진다”며 “6월까지 주택매매 거래량이 회복세를 보이고 있어 주담대에도 영향을 미칠 것으로 예상한다”고 했다.
다만 최근 대출금리가 상승하고 있다는 점은 가계대출 압력을 완화하는 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다고 부연했다. 그는 “가계대출에 영향을 주는 대출금리, 주택시장 상황, 은행의 대출태도, 계절적인 패턴 등 다른 요인이 불확실하기 때문에 3분기 가계대출 동향은 조금 더 지켜봐야 한다”고 말했다.
올 들어 7월까지 은행 가계대출은 누적 10조1000억원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올해 1분기 가계대출이 일시적으로 감소했음에도 불구하고 지난 4월부터 7월까지 가계대출이 18조3000억원 증가하면서 디레버리징 효과는 사실상 사라진 모습이다.
최근 한국은행 금통위는 정부의 부동산 시장 연착륙 정책과 한국은행의 통화정책이 엇박자를 내고 있다고 지적했다. 한국은행이 2021년 8월부터 올해 1월까지 기준금리를 연 0.5%에서 3.5%까지 3.0%포인트(p) 끌어올렸지만, 정부의 규제 완화와 금융당국의 금리 인하 압박 등이 한국은행의 금리 인상 효과를 반감시켰다는 비판이다.
한 금통위원은 “부동산 관련 규제 완화와 주택대출 금리의 하락 등으로 주택가격이 반등 조짐을 보이고, 가계부채도 다시 증가로 전환하고 있어 그간 이뤄온 정책 노력의 성과가 무산될까 우려된다”고 말했다.
다른 위원은 “그간 디레버리징이 매우 완만한 속도로 진행된 가운데 최근 가계부채가 다시 늘어나면서 금융불균형 해소가 지연될 가능성이 높아졌다”며 “금융불균형 완화를 위해서는 거시건전성정책과 통화정책 간 적절한 정책공조(policy mix)가 필요하다”고 했다.
그간 한국은행은 가계부채를 우리 경제의 장기 성장을 위협하는 구조적 리스크 요인으로 보고, 질서있는 디레버리징을 추진해야 한다고 강조해왔다. 국제금융협회(IIF)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국내총생산(GDP) 대비 가계부채 비율은 올 1분기 기준 102.2%로 34개국 중 1위를 기록했다.
이창용 한국은행은 총재도 “가계부채는 중장기적으로 상당한 위험 요인이기 때문에 완만한 부채 축소가 필요하다”고 했다. 그는 지난달 기준금리를 4연속 동결한 금통위 회의 직후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가계부채가 갑자기 늘어나게 되는 상황에 대비해 추가 금리 인상이라는 선택지를 남겨둬야 한다”면서 최종금리 수준을 연 3.75%로 제시했다.
한편 지난달 은행 기업대출은 8조7000억원 늘었다. 7월 기준으로 증가폭은 관련 통계 작성 이후 세 번째로 컸다. 7개월 연속 증가해 잔액은 1218조7000억원을 기록했다. 대기업 대출은 분기말 일시상환분 재취급, 기업 운전자금 수요 등으로 3조8000억원 증가했다. 중소기업 대출은 일부 은행의 대출 확대 노력, 기업의 부가가치세 납부관련 자금수요 등의 영향으로 4조9000억원 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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