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정수반은 전능하지 않다[오승훈의 시론]

2023. 8. 9. 11: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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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승훈 논설위원
세계 잼버리, 국가행정력 노출
지시로 작동하는 시스템은 문제
관료사회도 권력화, 보신주의
대통령은 현안의 ‘최고 종결자’
현장 실권 줘야 책임·자율 발휘
위임·분산의 통치력 검토할 때

새만금 세계 잼버리에 대한 우려가 쏟아졌던 지난 4일, 김현숙 여성가족부 장관은 얼음물 공급 등 대책을 발표한 뒤 기자가 “물 같은 건 사전에 충분히 제공할 수 있었는데”라고 묻자 “대통령님 지시도 있고 해서 며칠 전부터 준비를 해서”라고 답했다. 기자가 다시 “대통령의 지시가 있어야 한다는 것인데”라고 하자 “그건 아니다”라면서도 “대통령님의 추가 지시가 있었다”고 했다. ‘대통령님 지시’가 국가 행정 시스템을 부팅하는 스위치였다는 말이다.

일부 장관들이 윤석열 대통령에게서 공개적인 질책을 받은 일이야 통치권자의 내각 통제로 이해될 수 있다. 하지만 김 장관에게서 읽히는 ‘용산 스트레스’가 내각의 수동적 풍조를 낳고 있다면, 현 정부 들어서도 1년 넘게 해당 부처들과 지자체가 안일하게 대응한 게 대통령의 지시 부재 탓이라면, 애초 행정 시스템이 잘못 설계돼 있거나 작동 매뉴얼에 결함이 있음을 의미한다. 과연 대통령이 냉동탑차, 얼음물 소요까지 파악해서 지시하고, 총리가 잼버리장 화장실 청소를 거들어야 행정이 돌아가는 걸까. 그게 대통령과 총리의 본래 역할일까.

대통령은 나라를 대표하는 국가 원수이자, 행정부의 수반이다. 그 헌법상 지위에 따라 행정부에 명령을 내릴 권한을 갖는다. 그것만으로 국가 행정 시스템이 원활하게 작동하진 않는다. 행정부 수반으로서의 리더십에 달려 있다. 관료사회는 변했다. 경제 성장과 사회 고도화에 따라 복잡성이 커지면서 수요가 팽창한 행정국가(administrative state)로의 변화 추세에서 한국도 예외일 수 없다. 그 속에서 관료사회는 전문성과 규제·감독권을 기반으로 공생의 생태계를 만들어 스스로 권력화했다. 게다가 우리의 경우 민주화 이후 정치권력의 교체가 거듭되면서 관료사회에도 정파성을 따지는 세태가 생긴 지 오래다. 권력 줄서기가 신분 보장과 보상의 최우선 요건이 됐다. 국민을 위해 국가 행정에 복무한다는 중립적 직업윤리로서의 ‘공직자 영혼’은 설 자리가 없다. ‘5년만 버티면’이라는 새로운 복지부동이 만연해 있다.

사회 부문이 의도한 대로 작동하지 않으면 행정부 수반은 권력기관을 동원한다. 역대 정부의 ‘사정(司正) 관성’이 그러했다. 감사원, 검찰, 국세청, 국가정보원 등이 중앙 무대에 등장한다. 가장 손쉬운 문제 해결 방식이다. 윤 대통령도 노동·교육·공공부문 등에서 근본적 행정 쇄신을 위한 프로세스보다, ‘이권 카르텔’이라고 명명한 비리 척결에 방점을 찍었다. 국가 행정의 문제점을 명쾌하게 짚었으나 부작용이 점증한다. 정작 연금을 포함한 4대 개혁은 추진동력을 잃었다. 측근을 중심으로 내각을 운용하려는 권력 집중화도 나타났다. 대통령실 비서관들의 차관 차출은 여소야대 탓도 있으나 그 측면도 강하다. 그럴수록 내각은 더 경직되고 보신주의가 역력해진다.

행정부 수반은 국가 현안의 ‘최고위 종결자’다. 그런 인식으로 강한 리더십을 추구하는데, 역설적이게도 국가 행정의 효율성은 탈(脫)집중화할 때 높아진다. 행정부 수반은 모든 문제를 다룰 수 있는 슈퍼맨이 아니다. 수사를 해봤다고 전문가가 되는 것도 아니다. 복잡성을 띤 구조적 문제나 다양한 이익집단 간 갈등에서 해결 단계마다 종결자가 개입하면 혼선이 가중된다. 현장에 실권을 줘야 행정이 돌아간다. 권한을 받으면 책임도 져야 하는 까닭이다. 재난 대응의 경우 더욱 중요하다. 핼러윈 참사나 오송 지하차도 참사에서 피해를 키운 제1 원인은 정확한 상황 판단, 초동 조치 등 현장 통제력의 문제였지 않은가. 현장의 대응 역량과 속도를 높이려면 컨트롤 타워의 작동이 긴요한데, 이는 일선의 책임의식과 자율성이 뒷받침돼야 한다. 그래야 이권 개입의 여지가 줄고, 직업윤리도 근육을 키운다.

헌법은 대통령이 국정을 독점할 수도, 총리와 분담할 수도 있게 해놓았다. 제왕적 대통령을 견제하려 넣은 내각제적 요소이지만, 이제는 폭증하는 행정 수요와 갈등 관리 측면에서 검토할 때다. 윤 대통령의 대선 공약이다. 박근혜 정부 때 부활한 경제부총리(기획재정부 장관)-사회부총리(교육부 장관)도 권한 위임 체계다. 책임총리가 행정을 통할하려면 ‘대통령의 명’을 받아야 한다. 행정부 수반의 의지에 달려 있다.

오승훈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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