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동권 정치 설거지’ 깃발 드는 이유[포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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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여덟 고3 문학청년에게 1972년 10월 유신이 어두운 그림자로 다가왔다.
서른셋 팔팔한 젊은이에게는 1987년의 민주화가 나의 투쟁이 승리했다는 자부심을 주고 새로운 나라를 만들겠다는 희망을 줬다.
그 1972년부터 1987년까지의 내 청춘의 추억도 나쁘지 않다.
이제 민주화운동의 옛 동지는 하나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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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여덟 고3 문학청년에게 1972년 10월 유신이 어두운 그림자로 다가왔다. 서른셋 팔팔한 젊은이에게는 1987년의 민주화가 나의 투쟁이 승리했다는 자부심을 주고 새로운 나라를 만들겠다는 희망을 줬다. 그 사이 15년 동안 여러 차례 경찰서 유치장을 드나들고, 세 번 감옥을 갔다 왔다. 나의 청춘은 그렇게 흘러갔다. 문학청년은 투사가 됐다.
모든 청춘의 추억은 아름답다. 그 1972년부터 1987년까지의 내 청춘의 추억도 나쁘지 않다. 연애도 하고 결혼도 했다. 멋진 친구들과의 우정도 나눴다. 아니, 그 시절 내가 경험한 동지애(同志愛)는 아마 그 시대가 아니었으면 경험하기 힘든, 시대의 선물이었다. 하지만 언젠가부터 간혹 느낀다. 그 진한 동지애가 지금의 나를 구속한다. 옛 동지들이 모두 동의해주지 않으면, 보고 느끼는 대로 말하지 못한다. 청춘의 우정은 노년의 속박이 되고 있다.
이제 말하지 않을 수 없다. 그렇게 정의와 민주를 외친 세대가 노동개혁과 연금개혁을 가로막는 기득권 세력이 됐다. 지적(知的)으로도 게을러, 50년 전에 만들어진, 대한민국을 부정하는 세계관·역사관을 고집한다. 125년 전 독립협회와 만민공동회에서 조상들이 찾아낸 독립운동의 기본 노선, 해양 문명을 받아들이고 민주공화국을 세워 중국·러시아·일본 사이에서 독립을 지키려 한 그 길을 알려고도 하지 않는다.
그뿐인가. 인류 보편의 가치를 버리고, 반미·반일 프레임에 갇혀 북한의 신정(神政) 체제에 관대하고 인권 문제에는 무관심하다. 젊은이들에게 그게 다 박정희·전두환 탓이라고, 5·18 트라우마 탓이라고, 이해해 달라고만 한다. 민주화운동과 상관도 없는 사람을 민주화운동 역사를 대표하는 당의 대통령 후보로 내세워 다음 세대를 속이려 한 건 아닌가. 반지성의 진영 정치, 괴담이 난무하는 극단의 대결에는 책임이 없는가. 대선 결과에 승복하지 않는 이른바 ‘운동권 정치’가 내재돼 있는 건 아닌가.
우리는 민주화운동을 하면서 다원주의를 거부하는 독선과 흑백논리를 키우고 있었다. 상대를 민주공화국 내부의 경쟁 상대로 보지 않고, 친일파와 군부독재의 후예로, 타도의 대상으로만 봤던 것이다. 우리는 일종의 도덕적 우월감에 빠져 있었다. 그래서 모든 세대가, 모든 직군(職群)이 흘린 피와 땀이 모두 나라 발전의 밑거름임을 알지 못했다. 아직도 그런 태도를 고집한다면 민주공화국의 동료 시민들이 용납하겠는가.
괴롭지만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이제 민주화운동의 옛 동지는 하나가 아니다. 노론과 소론처럼 분파돼야 한다. 우리는 청년들과 친구가 되고 싶다. 그래서 우리는 소론(少論)이다. 우리는 후손들에게 부끄러운 행동을 합리화하면서 우울하게 살고 싶지 않다. 그래서 우리는 신파(新派)다. 우리는 젊은 날의 초심(初心)으로 돌아가고 싶다. 그래서 우리는 초심파다. 우리는 변절자도 아니고 전향자도 아니고, 진영에서 탈출한 것도 아니다. 우리는 단지 소수파다.
그래서 대한민국 수립 75주년인 올 광복절을 맞아 25년 뒤 100주년을 내다보면서 ‘민주화운동 동지회’를 발족하려 한다. 우리가 만든 쓰레기는 우리가 치우자. 젊은 날의 초심은 그대로이면서, 생각은 매일 바뀌는 사람은 오라. 우리 함께 후손들을 위해 설거지를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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