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물의 동성애' 최초 백과사전…'생물학적 풍요'

[서울=뉴시스] 생물학적 풍요(사진=히포크라테스 제공) 2023.08.09. photo@newsis.com *재판매 및 DB 금지

[서울=뉴시스]신재우 기자 = "서양 과학은 200년 이상 동안 동물 동성애를 설명하려고 노력해왔지만, 동물 행동의 모든 측면을 번식과 연관시키려고 노력함으로써 상당한 문제에 부딪혔다." (본문 중에서)

동물의 동성애, 트랜스젠더 등 섹슈얼리티에 대해 집대성한 브루스 배게밀의 '생물학적 풍요'(히포크라테스)가 국내 출간됐다. 1356쪽의 두꺼운 책은 사진·삽화와 함께 다양한 예시가 정리돼 있다. '동물 섹슈얼리티에 대한 최초의 백과사전'으로 불린다.

1999년 출간된 후 학계는 물론 법적 판결에도 영향을 미친 책은 서양 생물학계에서 문제작으로 통한다.

캐나다의 생물학자인 배게밀은 20세기 후반까지 문서화한 450여종의 동물 동성애 사례 가운데 190여종의 포유류 및 조류 사례와 파충류, 양서류, 어류, 곤충 등의 동성애 목록을 정리했다. 이런 방대한 작업은 그 자체로 과학계에 암묵적으로 통용됐던 이데올로기를 폭로하고 이에 기반한 잘못된 해석을 조목조목 비판한다.

배게밀은 우선 동성애의 의미를 섹스에 한정하지 않고, 구애·애정·짝결합·육아를 포괄하는 넓은 의미로 확장한다. 이 활동들은 동물 세계에서 일어나는 동성애의 다양한 양태를 이해할 수 있게 해준다. 그의 해석에 따르면 동물 동성애는 의사소통, 도구 제작 및 사용, 금기, 의례 등과 관련해 살피면서 동물 고유의 문화 형성을 결코 배제해서는 안 된다. 생물학적인 차원과 문화적인 차원이 결합해 동물 섹슈얼리티는 연속적이면서 넓은 스펙트럼을 가지게 된다.

책은 그간 사회에도 다양한 영향을 미쳤다. 미국 소도미법 폐지 판결(2003)과 인도 대법원의 동성애 비범죄화 판결(2018)에서는 배게밀의 책에 있는 방대한 분석 자료가 인용됐다. 학계에서는 동성애의 수용을 주장하는 정치적 문장으로 바꾸지 않고 과학적 기록이 스스로 말하기를 택한 배게밀의 방식을 통해 이데올로기를 해체하는 과학의 힘을 실감케 했다.

"궁극적으로 생물학적 풍요로 대표되는 과학적 견해의 종합은 우리를 완전히 한 바퀴 돌려놓는다. 이러한 관점은 이분법적인 반대를 해소하고 이원론을 통합하는 동시에 다름을 소중히 여긴다. (…) 원초적이면서도 동시에 미래적인 이 세계관에서 성별은 만화경처럼 다채롭고, 성애는 다양하며, 남성과 여성의 범주는 유동적이고 변화할 수 있다. 한 마디로 우리가 사는 바로 그 세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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