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여줄게, 완전히 달라진 나"…식민지가 '광물 부국' 됐다 [김리안의 에네르기파WAR]
20세기 지배했던 글로벌 권력·부 '재분배'
※[김리안의 에네르기파WAR]는 에너지 분야 소식을 국가안보적 측면과 기후위기 관점에서 다룹니다.
올해 4월 중국 광산기업 CMOC가 콩고민주공화국(DR콩고) 정부에 8억달러(약 1조500억원)를 지불하기로 했다. CMOC가 투자했던 텡케-펑구루메 광산을 두고 DR콩고 정부와 벌인 로열티 및 세금 분쟁에서 도출한 타협안이었다. 당시 텡케 광산에서 채굴된 수십만톤의 코발트, 구리가 DR콩고 정부의 수출 금지 조치로 인해 발이 묶인지 10여개월이 지나고 있을 때다. CMOC로선 대안이 없는 상황이었다.
이후 DR콩고 정부는 아예 전방위적인 칼을 빼들었다. 외국인 투자자가 합작투자한 자국 내 모든 광산에 대한 재조사를 선언했다. DR콩고 정부측 관계자는 "기존 계약들 중에 DR콩고에 고부가가치를 창출하는 계약은 한 개도 없다는 사실을 발견했다"며 "우리나라가 더 많은 일자리와 수익을 가져올 수 있게끔 수출 쿼터(제한) 조치 등을 활용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보여줄게 완전히 달라진 나"…신흥 광물 부국들의 반란?
과거 서구 열강의 식민지 착취의 피해국이었던 나라들이 '원자재 강국'으로 거듭나고 있다. 광업과 관련된 제반 규칙을 다시 정비하는 등 서방 국가들을 쥐락펴락하는 통제권까지 쥐게 된 모양새다. 서방 주요국들이 전기자동차 배터리 광물 등 핵심 원자재의 공급망을 안정적으로 구축하기 위해 이들 국가에 손을 벌리면서다. 파이낸셜타임스(FT)는 8일(현지시간) "특히 희토류, 갈륨 등의 생산·수출을 통제하려는 중국에 맞서기 위한 서방의 수요가 이들 국가의 입지를 더욱 끌어올리고 있다"고 전했다.
전기차 확대 등 전 세계의 '친환경 전환' 흐름에는 구리를 비롯해 코발트, 니켈, 리튬과 같은 원자재가 필수적이다. 이 원자재들은 특정 국가 혹은 지역에 집중적으로 매장돼 있다. 코발트의 경우 DR콩고가 전 세계 채굴량의 70%를 차지한다. 인도네시아는 1위 니켈 생산국이다. 매년 전 세계 니켈 생산량의 절반 가량이 인도네시아에서 나온다. 칠레, 호주, 아르헨티나는 리튬 매장량 기준 상위 3개 국가다.
이들 자원 부국은 ▲수출 통제 ▲자원 국유화 ▲카르텔 형성 등에 나서고 있다. 지난 1년 동안 짐바브웨와 나미비아는 리튬 원석 수출을 금지했고, 칠레는 리튬 광산 국영화를 선언했다. 가브리엘 보리치 칠레 대통령은 당시 "리튬 개발은 보다 공정한 방식으로 부를 분배할 수 있는 최고의 기회"라며 "더 이상 '소수만을 위한 채굴'은 안 된다"고 말했다.
그중 인도네시아 정부가 가장 적극적이다. 2019년 시작했던 니켈 원광석 수출 금지 조치에 더 최근 알루미늄의 원광인 보크사이트 수출 규제를 추가했다. 올해부터 구리 원광 등의 수출을 금지하려던 계획은 내년 5월까지 수출을 허용하는 대신 최고 10%의 수출 관세를 부과하는 조치로 변경했다. 인도네시아 정부는 석유수출국기구(OPEC)의 선례를 따라 '배터리 원자재 카르텔'을 만들자는 구상을 처음 내놓기도 했다.
"단순 채굴만으론 안돼" 고부가가치 생태계까지 요구
이와 관련 바릴 라하달리아 인도네시아 투자부 장관은 "과거 서구 열강이 했던 조치들을 벤치마킹한 것뿐"이라고 말했다. 16세기 영국은 자국 섬유 산업을 활성화하기 위해 생모 수출을 금지했었다. 미국이 지금의 위상을 누리게 된 것도 19~20세기에 걸쳐 높은 수입세를 부과해 자국 내 제조업 육성을 장려했던 덕분이란 게 그의 설명이다.
인도네시아, 칠레, DR콩고 등의 원자재 활용법은 한 단계 진화한 양상을 보이고 있다. 풍부한 자원 매장량을 기반으로 '자국 내 우선 가공' 등의 조건을 내걸어 가치 사슬을 끌어올리는 데 중점을 두기 시작했다는 분석이다. 인도네시아는 니켈 원광 수출 통제 이후 자국 내 제련 산업과 배터리 및 전기차 산업의 파이를 키운 대표적인 국가다.
인도네시아의 원광 가공 산업에만 150억달러에 달하는 중국 자본이 투자됐다. 올해 들어선 미국 자동차 제조사 포드도 인도네시아에 수십억 달러 규모의 니켈 가공 시설 투자를 발표했다. DR콩고에서도 카모아-카쿨라 구리 광산 근처에 제련소가 들어설 예정이다.
칠레는 자국 내에서 고부가가치 리튬 프로젝트를 추진하는 해외 기업들에 한정해 탄산리튬을 할인된 가격에 제공하는 정책을 도입했다. 이 조치를 통해 중국 전기차 제조사 비야디(BYD)가 첫 번째 수혜 기업이 됐다. 내달 아르헨티나에서는 중남미 국가 가운데 최초로 소규모 리튬 이온 배터리 공장이 가동을 시작한다. 미국 광산기업 리벤트가 아르헨티나 국영기업 와이텍(Y-TEC)과 함께 투자한 공장이다. 아르헨티나에서 채굴한 리튬을 사용해 연간 400개 가량의 배터리를 생산할 예정이다.
"산광국(産鑛國)은 산유국과 다르다"...대체가능한 광물
하지만 이 같은 '신흥 산광국(産鑛國)'들이 과거 산유국들이 이뤘던 것만큼 확실한 자원 통제권을 확보하는 게 힘들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국제재생에너지기구(Irena)는 최근 보고서를 통해 "단기적인 수급 불균형 기간에는 이들 국가나 국영기업이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지만 석유, 가스 생산국처럼 지속적으로 지정학적인 힘을 갖지는 못할 것"이라고 분석했다.
리튬 등의 광물은 석유 및 가스에 비해 훨씬 더 고르게 분포돼 있다는 점에서다. 이는 광물 보유국들 간에 담합을 어렵게 만드는 요인이 될 수 있다. 어느 한 국가라도 해외 기업의 투자 유치를 위해 유화책을 펼치게 되면 다른 국가가 아무리 광산 국유화 등 엄격한 통제정책을 내놓아도 그 효과가 반감될 수 있다는 의미다. 실제 칠레 정부의 국영화 발표 이후 '해외 기업에 친화적인' 아르헨티나로 발길을 돌리는 외국인 투자자가 급증했고, 아르헨티나의 리튬 생산량은 향후 5년 동안 6배 가량 늘어날 전망이다.
배터리 제조 기술이 나날이 발전하면서 핵심 성분이 변화하고 있는 점도 담합을 어렵게 만든다. 석유는 확고한 대체불가능성을 가진 자원이지만, 배터리 원재료는 비교적 쉽게 대체되고 있다는 분석이다. 코발트가 들어가지 않은 배터리 제조 기술이 처음 등장한 뒤로 중국 내 무(無)코발트 배터리 사용 비율은 2020년 전체 전기차 시장의 18%에서 올해 60%로 급증한 것으로 조사됐다.
김리안 기자 knra@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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