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할 수 없는 이민시대, 통합과 포용부터 [박세환의 빡센경제]

2023. 8. 9. 11: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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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 연간 출생아 수는 2012년 48만5000명에서 지난해 24만9000명으로 반토막 났다. 같은 기간 혼인 건수도 32만7000건에서 19만2000건으로 줄어 비슷한 추세를 보인다. 결혼을 안 하고 애도 낳지 않는 시대로 접어든 것이다.

인구 고령화도 심각한 수준이다. 우리나라는 2년 뒤인 2025년에 초고령사회(65세 이상 고령인구가 총인구에서 차지하는 비율이 20% 이상인 사회)에 진입한다. 2070년 총인구수는 3800만명 수준으로 감소하고, 노인 비중은 46.4%까지 늘어 전체 인구의 절반가량을 차지할 것으로 전망됐다. 2030년 생산인구는 2020년 대비 7%가 감소할 것으로 예측됐다. 노인인구가 1%포인트 늘어나면 연평균 경제성장률은 0.8%포인트 줄어든다고 한다.

이 같은 인구 구조의 급격한 변화는 사회 구조 근간부터 충격을 주고 있다. 영국 인구학자 폴 월리스는 고령사회의 충격을 지진(earthquake)에 빗대어 ‘인구지진(Age-quake)’이라고 했다. ‘인구지진’은 고령인구 증가에 따른 생산인구 감소로 사회 근간이 뿌리째 흔들리는 현상을 리히터 규모 9.0의 대지진에 비유한 용어다. 베이비붐 세대가 은퇴하기 시작한 2020년부터는 세계 경제가 인구지진으로 큰 충격을 받고 있다. 우리나라도 피해를 크게 입는 국가 중의 하나다.

우리나라 출산율이 재앙적 수준으로 떨어지면서 최근 이민에 대한 논의가 활발해지고 있다. 여기에 부족한 생산 인력 확보를 국내에서만 해결할 수 없는 산업계의 구조적 문제점도 한계에 도달하며 이민정책은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시대적 선택이 되고 있다.

지구촌은 지금 ‘대이민 시대’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선진국에서는 ‘반이민 포퓰리즘’이 기승을 부렸다. 외국인이 내국인의 일자리를 빼앗고 이민자가 내국인이 낸 세금으로 선진 복지 체계의 혜택을 누린다는 정치 구호가 먹혀들었다.

하지만 저출산·고령화에 따른 노동력 부족과 첨단산업 인재 쟁탈전, 포스트 코로나라는 3박자를 타고 지구촌에 ‘대이민 시대’의 바람이 불고 있다.

영국 시사 주간지 이코노미스트지는 최근 이 같은 전 세계적인 ‘대이민 시대’를 집중 조명했다. 지난해 영국으로 이민을 간 사람의 수가 약 120만명으로 사상 최대를 기록했고, 스페인으로의 이민자도 사상 최대였다. 캐나다와 호주로의 순 이민자 수도 코로나19 팬데믹(감염병의 세계적 대유행) 이전의 2배에 달했다. 올해 미국으로의 이민자는 140만명으로, 코로나19 이전보다 3분의 1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독일은 난민 홍역을 치렀던 2015년보다도 순 이주 비율이 훨씬 더 높아졌다. 선진국 내 외국 출생자 인구 증가율(전년 대비)은 지난해 약 4%로 사상 최고치를 기록했다.

이민자가 늘어나는 것은 저출산·고령화로 노동력 부족을 우려하는 선진국이 적극적인 이민 친화 정책을 펴고 있기 때문이다. 전 세계 출산율은 2000년 여성 1인당 2.7명으로 인구가 안정적으로 유지되는 출산율인 2.1명을 여유 있게 웃돌았지만 최근에는 2.3명으로 떨어졌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의 2021년 출산율은 1.6명에 불과하다. 이런 가운데 선진국 노동시장이 활황을 보이며 구인난이 발생, 각국 정부는 이민자에게 팔을 벌리며 노동력을 빨아들이고 있다. 비교적 폐쇄적인 시스템을 견지해온 일본도 수년 전부터 적극적인 이민 포용 정책으로 전환하고 있다. 더 이상 자국민만으로 경제를 이끌어갈 수 없다는 냉엄한 현실 인식의 결과다.

외국인에게 ‘선택받는’ 일본

우리나라는 여전히 외국인을 ‘데려올’ 고민만 하고 있을 때 일본은 외국인에게 ‘선택받을’ 수 있도록 법과 제도를 고치고 있다. 이민에 소극적이던 일본이 급격하게 변화한 데는 역시 자국의 심각한 고령화로 인력 부족이 한계치에 달했다는 사실이 밑바탕에 깔려 있다.

일본은 1995년 고령사회(총인구 중 65세 이상 비율이 7% 이상)에 진입했고, 2006년에는 65세 이상 인구가 20.2%를 넘어서며 초고령사회가 됐다. 1995년 8700만명으로 정점이었던 일본의 생산가능인구(15세 이상 64세 이하 인구)는 현재 7420만명(2022년 기준)으로 쪼그라들었다. 우리나라 경기도 인구(1360만명)에 달하는 인력이 증발한 셈이다. 일본 경제의 ‘잃어버린 30년’도 이와 무관치 않았다.

일본은 특히 ‘외국인을 들여오는 문’ 자체를 바꿀 정도로 이민에 대해 적극적이다. 1993년부터 30년간 운용해온 ‘기능실습제’ 폐지가 대표적이다. 개발도상국의 외국인이 일본에서 일정 수준 기술을 연수하면 취업할 수 있도록 했다. 더 이상 ‘실습생’에 국한하지 않겠다는 것이다.

지난해 기준 일본의 외국인 수는 307만5213명으로, 사상 처음 300만명을 넘었다.

일본은 또 2019년 4월 법무성(한국 법무부에 해당) 아래 이민청 격인 ‘출입국재류관리청’을 신설했다. 출입국재류관리청은 ▷외국인 체류 기간 갱신 ▷영주 심사 ▷밀입국자 및 불법체류자 단속 등 일본 내 이민자 관련 전반적인 관리를 맡는다. 일본 정부는 당시 국(局)이었던 기관을 청(廳) 단위 기구로 격상하면서 인력도 10% 이상(4870→5432명) 늘렸다.

지난해 우리나라 체류 외국인 212만3000명 가운데 영주 비자 보유자는 17만6000여명으로, 8.3%에 불과했다. 반면 ‘이민 쇄국’이란 평을 들었던 일본의 경우, 영주권자 비율이 우리나라보다 오히려 3배나 높은 28%에 달했다. 인구 위기를 겪는 일본에서도 이민 정책의 변화가 불고 있다.

일본은 이 같은 노력으로 ‘선택받는’ 나라로 바뀌고 있다. 유엔(UN) 국제이주기구(IOM)가 올해 1분기 베트남인(17~40세, 5800명 대상)이 선호하는 이주 희망국가 10개국을 조사한 결과, 한국은 10위권에도 들지 못했다. 1위는 일본이었고, 미국, 대만, 독일, 프랑스 등이 뒤를 이었다.

불과 6개월 전 조사에서는 한국이 1위였다.

지난해 우리나라 체류 외국인은 212만3000명에 이른다. 사진은 지난해 열린 외국인유학생채용박람회에서 외국인이 채용공고를 확인하는 모습 [연합]

손쉬운 대안으로서의 이민정책은 금물

그렇다고 이민을 저출산과 노동력 부족 해결의 손쉬운 대안으로 생각하다가는 자칫 큰 사회갈등·문제를 불러올 수 있다. 성인이 된 이민자가 문화적 배경을 바꾸고, 새로운 역량을 즉시 갖추기 어려워 쉽게 사회적 약자로 전락할 수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이민이 활발한 미국과 프랑스, 독일과 같은 나라에서 이민에 의한 사회적 불균형과 갈등으로 몸살을 앓기도 했다. 미국은 100년이 넘는 시간을 거치면서 대표적인 이민국가로 정착했지만 여전히 이민자에 대한 배타적인 문화가 남아 있다. 유럽은 2000년대부터 이민자가 몰리면서 ‘제노포비아(외국인 혐오)’로 사회갈등을 겪고 있다.

‘관용의 나라(톨레랑스·tol rance)’ 프랑스는 이민자를 적극 받아들여, 현재 전체 인구의 10%가 넘는다. 이를 통해 프랑스는 사회·경제적 활력을 유지하고 있으며, 통합정책의 결과 전 세계에서 온 작가, 과학자, 예술가, 운동선수 등이 다양하게 활약하고 있다.

그러나 최근 프랑스 이민자 시위로 큰 혼란을 겪었다. 6월 교통 검문을 피하려던 알제리계 이민자 청년이 경찰의 총에 맞아 숨진 사건이 그동안 쌓여있던 분노를 표출하는 계기가 돼 대규모 폭력시위로 이어졌다. 프랑스는 2차대전 이후 노동력 부족 문제가 불거지자 모로코와 튀니지, 알제리 등 이민자를 대거 수용했다. 이런 이민정책은 인구 증가에 기여했지만, 여전히 많은 이민자 2세가 주류사회에 섞이지 못하면서 갈등이 커졌다. 이번 이민자 시위는 프랑스가 이민자에 대한 차별과 불만을 어떻게 풀어갈 것인지에 대한 성찰의 시간이 될 것이다.

부처별로 따로 노는 한국의 이민정책

외국인과 이민자를 당면한 인구절벽의 난제를 해결하기 위한 노동력으로만 인식하는 것이 아니라 같이 살아가는 국민으로서, 한동네 사는 이웃으로, 우리 사회의 구성원으로 받아들일 준비가 돼 있는지 꼼꼼히 따져봐야 할 것이다.

인구 감소의 문제를 외국인과 이민자 유입에만 집중해 접근하는 것은 근본적인 대책이 될 수 없다. 외국인 유입 증가로 인해 생산 인구는 일시적으로 충원될 수 있지만 내국인과 마찬가지로 결혼하고 출산하기 힘든 여건이 해결되지 않으면 외국인 역시 출산하지 않을 것이며 고령화는 가속화할 것이다. 또 농어촌 일자리 부족을 메우고 있는 외국인이 도시에서 살기를 원하거나, 열악한 근로환경에 처해있는 외국인이 더 나은 일터를 원해 이직하는 경우 여전히 농어촌, 열악한 일자리는 일손이 부족할 뿐이다. 따라서 누구를, 얼마만큼 받아들일지의 문제에 천착하기보다는 계속 거주할 수 있는 정주 여건을 조성하고, 지역의 구성원으로 통합하기 위한 전략을 동시에 마련해야 한다.

현재 외국인 정책은 법무부·고용노동부·교육부·여성가족부 등 부처별로 따로 놀고 있다. 산업별 필요 외국인의 수요 파악조차 제대로 하기 어려우니 외국 인력 공급의 유연성과 적시성이 떨어진다는 지적이 나온다. 부처 간 관리 영역이 겹치거나 공백이 생기는 일도 빈번하다.

외국인 정책의 통합 관리 체계를 구축할 필요가 있다. 다만 이민자 유입을 막기만 하는 철학을 그대로 가져간 채 법무부 출입국·외국인정책본부가 이름만 바꾸는 식으로 이민청을 설립하면 실패의 가능성이 크다. 지금은 법무부가 주도하고 있지만, 궁극적으론 전 부처를 아우르는 역량을 가진 독립적인 기구가 돼야 한다.

향후 5년 이내에 우리나라는 원하든 원하지 않든 영국, 프랑스 등과 같은 이민 국가로 진입하게 된다. 이민 문제는 개별 현상에 대해 부처별로 대응해서는 안 되며, 인구·사회·교육·문화·경제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한 전략을 세워야 한다.

이민정책, 이해·존중·포용에 기반돼야

무엇보다도 이민 확대가 초래할 수 있는 사회적 갈등을 어떻게 최소화할 것인지에 관한 준비가 필요하다.

많은 국민이 생각하는 ‘다문화’라는 개념과 정서는 ‘공존과 통합’이라기보다는 우리 문화와 구분되는 ‘경계 짓는 수준’에 머물러 있다. 다시 말해 ‘다문화’의 개념이 우리나라에서는 ‘다문화 가족’ 등으로 특정한 집단을 지칭하는 용어로 주로 사용하고 있다는 말이다. 특히 다문화 가족에 대한 법적 개념은 결혼이민자와 국적법에 따른 출생인지 귀화를 통해 대한민국 국적을 취득한 자로 한정 짓고 있다. 그로 인해 이주노동자, 유학생, 난민, 동포, 새터민 등이 배제된 것이 현실이다. 결국 통합적 의미의 다문화 사회를 지향하는 개념에 있어서는 아직 한계가 있다.

다양한 문화가 함께 공존한다는 것이 현실적으로 그리 쉬운 일은 아니다. 다양한 문화가 함께할 경우 문화 간의 차이에 대한 이해와 존중, 포용이 있어야 서로 어우러져 새로운 문화로 발전해 갈 수 있지만 현실적으로 그렇게 쉬운 일이 아니다. 각자의 문화 정체성과 생활양식, 그리고 가치관과 태도 등으로 인해 문화적 갈등이나 충돌도 일어나게 된다. 왜냐하면 주류집단과 비주류집단의 문화가 각각 존재하기 마련이기 때문에 서로 다른 문화에 대한 편견과 차별로 인해 문제가 발생하게 되는 것이다.

통상적으로 이주민이 국가 전체 인구의 5%에 달하면 다문화 사회로 진입했다고 본다. 우리나라의 경우 최근 5년간 체류외국인 비율은 코로나19의 영향으로 2019년 4.9%에서 2020년 3.9%, 2021년 3.8%로 다소 감소했다가 다시 2022년 4.1%로 증가했다. 이에 따라 우리나라는 현재 국내 거주 이주민의 양적 측면에서는 ‘다문화 사회로의 진입’을 눈앞에 두고 있다. 하지만 다문화 사회라는 것은 일정 규모뿐만 아니라 다양한 민족과 인종이 함께 거주, 각자의 보편적 권리를 향유하며 특수한 삶의 방식을 존중받고 공존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사회·문화·법·제도에 걸친 전반적인 기반이 갖춰질 때 비로소 이민의 초석인 다문화 사회로 나아갈 수 있을 것이다.

greg@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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