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단적 영향력, 지역 경제 선순환 이끈다

한겨레 2023. 8. 9. 1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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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서재교 우리사회적경제연구소장
일본 비와호 유역림에서 솎아내기한 나무로 청년이 목공예 작업을 하고 있다. 비와호 유역림에서 베어낸 목재는 목공예, 목재를 활용한 인테리어 등 지역 목재 산업에 활용된다.

일본의 고도 교토에서 차로 30여 분을 달리면 관서 지방의 젖줄로 불리는 비와호(琵琶湖)가 거대한 자태를 드러낸다. 시가(滋賀)현은 물론 오사카, 나고야 지역의 1400만명 주민의 식수를 책임질 뿐만 아니라, 80여 종에 이르는 풍부한 어족 자원을 바탕으로 어업과 관광 산업을 견인하고 있는 일본 최대 규모의 호수다. 일본에선 신이 일본 열도에 안겨 준 축복이라고 불리기도 한다.

하지만, 이런 비와호도 고질적인 과제를 안고 있다. 바로 지형 특성상 수질 관리가 매우 어렵다는 사실이다. 예컨대, 비와호로 유입되는 하천은 모두 12개에 이르지만, 유출하천은 2개에 불과하다. 여기에 최고 100m가 넘는 깊은 수심 탓에 호수의 유속은 매우 느리다. 유입하천의 오염 관리가 제대로 되지 않을 경우, ‘축복’은 커녕 오히려, 돌이키기 어려운 ‘재앙’에 직면할 수 있다는 얘기다. 실제로 1977년 비와호 9개 수역에 적조 현상이 발생했고, 주원인으로 지목된 합성세제의 사용 판매와 금지의 내용을 골자로 한 조례를 제정하고 주민운동이 시작됐지만, 예전 수질을 되찾는데만 20여 년의 시간이 걸렸다.

비와호 수질 관리를 위한 근본적인 문제 해법에 골몰하던 시가현 지방 정부와 주민들은 비와호에 인접한 약 18만 헥타르 규모의 유역림에 주목했다. 체계적인 유역림 관리는 양질의 목재 생산을 통한 산주의 소득 개선은 물론, 비와호의 수질 개선에도 효과적인 방법으로 꼽혔다. 특히, 산림 내 목재의 밀도를 낮춰 나무들의 생장을 돕는 솎아내기(간벌) 작업을 거친 산림토양에는 지렁이 등 산림의 소동물이 지나가는 미세 공간인 ‘공극’이 발달해 수질 정화에 도움이 된다. 요컨대 체계적인 유역림 관리는 양질의 목재 생산을 통한 지역 목재 산업 활성화는 물론, 우수한 산림토양 조성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끼쳐 비와호 수질 정화에 긍정적인 효과로 이어지는 출발점이 될 수 있다.

일본 비와호 유역림 관리 위해 주민 조직 키키토 설립

목재 부가가치 높여 지역 영세 산주 소득 개선해

키키토는 비와호 유역림 관리에 주목해 2012년 설립된 주민 조직이다. 임업 종사자, 건축가, 컨설턴트 등 다양한 이력의 지역주민 10여 명이 뜻을 모았다. 유역림의 체계적인 관리를 위해 키키토가 가장 먼저 시작한 일은 유역림의 체계적 관리를 위해 산주의 관심을 높이는 것이었다. 비와호 유역림은 삼분의 이가 사유림인 데다 대다수가 5헥타르 이하의 영세 산주였기 때문에 이들의 관심과 참여가 무엇보다 중요했다. 키키토는 시장 가격 대비 40% 이상 높은 가격에 이들의 목재를 구매한다. 산주에게 환원되는 소득을 늘려 이들의 관심과 참여를 높임으로써 체계적으로 관리할 수 있는 유역림 규모를 늘려 가기 위함이다. 야마구치 미야코 키키토 상무이사는 “시장에서 1제곱미터당 4500엔에 거래되는 목재를 키키토는 8000엔에 구매하고 있다”라며, “입소문이 나면서 목재 구매를 의뢰하는 산주의 자발적 문의가 눈에 띄게 늘었다”라고 귀띔한다. 지난해 키키토가 유역림 내 산주들에게 구매한 목재 규모와 매출액은 각각 300여톤, 3600여만엔(한화 약 3억3150만원)을 기록해 전년에 견줘 절반 이상 증가하는 성과를 거뒀다.

키키토는 비와호의 체계적인 유역림 관리를 위해 설립된 주민조직이다. 왼쪽부터 야마구치 상무이사, 오바야시 대표이사, 타나카 활동가

키키토는 부가가치가 상대적으로 낮은 목재칩 판매는 줄이는 대신 종이와 연필, 명함 케이스 등 주민의 삶과 밀접한 소비재 판매 비중을 확대했다. 지역 목재에 대한 소비자들의 이해가 높아지자, 지역 기업도 관심을 내비쳤다. 시가현에 본사를 둔 대형 할인마트 헤이와도는 키키토가 생산한 종이와 연필을 대량으로 구매해 지역 유소년들에게 무료로 나눠주고 있다. 산주와 주민들의 관심을 늘리기 위한 사업에 지역 기업까지 참여하면서 지역 목재 활용과 비와호 보전을 연결하는 선순환 효과가 나타나고 있다. 오바야시 게이코 키키토 대표는 “다양한 이들의 노력 덕분에 지난해 코로나 19로 어려운 와중에도 목재 구매 가격을 30% 이상 올려 산주 소득 개선에 기여할 수 있었다”라며, “지역 목재 활용이 늘면서 목공예와 목재 산업에 관심을 가진 청년들의 참여도 늘고 있다”라고 밝혔다.

지방 정부도 제도 지원으로 임업 활성화 도와

탄탄한 민관통합거버넌스로 지역경제 선순환

키키토가 산주와 주민 그리고 지역 기업의 관심과 참여를 통해 양질의 유역림 확대에 기여하고 있다면 지방 정부인 시가현은 지역 목재 확산과 산업화를 촉진하는 제도 손질에 적극적이다. 2023년 ‘시가현 지역 목재의 이용 촉진에 관한 조례’를 제정해 시가현에서 생산되는 목재의 활용도 확대에 지원을 아끼지 않고 있다. 시가현은 지역 목재로 인증된 목재를 건축 또는 인테리어에 사용할 경우 전체 금액의 50%를 보조하고 있다. 이 밖에도 지역 목재와 산림관리에 필요한 전문 인력 확보를 위해 ‘시가 모리도쿠리 아카데미’를 개설해 지원하고 있다.

비와호의 지속가능한 보전을 위한 유역림 관리는 단순히 지방 정부를 중심으로 한 홍보와 캠페인에서 탈피해 지방 정부와 지역 주민 그리고 지역 기업이 머리를 맞댄 민관 통합 거버넌스를 중심으로 조림, 생산, 가공, 판매 등 지역 목재 산업 가치사슬 전반에 긍정적인 영향을 끼쳤다는 데 의미가 있다. 공통의 목표를 가진 다양한 이해관계자가 각각의 전문 역량을 발휘해 고질적인 지역문제를 보다 창의적이고 효과적으로 해결하는 집단적 영향력(Collective Impact)과도 맞닿아 있다. 국립산림과학원 장주연 박사는 “산림의 다기능성과 상이한 지역사회의 여건을 고려했을 때 중앙 정부 중심의 획일화 된 산림정책으로는 산적한 산촌공동체 문제를 해결하는 데 한계가 있다”라며, “주민과 지방 정부 등 민관 통합 거버넌스 주도로 지역사회가 가진 다양한 자원을 활용하는 이른바, 지역 단위 산림관리체계 구축을 서둘러야 한다”라고 말했다.

​ 오쓰(일본)/글·사진 서재교 우리사회적경제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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