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전 9시30분에 경찰 이첩, 중단 지시는 10시51분"… 항명 맞나?
변호인 "해병대사령관이 우물쭈물"… 군검찰 수사서 진위 가릴 듯
(서울=뉴스1) 박응진 기자 = 해병대 수사단이 작성한 고(故) 채수근 해병대 상병 순직 사고 조사기록의 '민간 경찰 이첩을 보류하라'는 지시가 실제론 경찰 이첩 절차가 진행된 이후에야 하달됐다는 주장이 제기돼 그 진위 여부에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이 같은 주장이 사실로 확인될 경우 박정훈 전 해병대 수사단장(대령)에 대한 군검찰의 '집단항명 수괴' 혐의 등 수사 또한 영향을 받을 가능성이 커 보인다.
9일 국방부와 박 대령 변호인 등에 따르면 박 대령은 지난달 30일 오전엔 김계환 해병대사령관과 이종호 해군참모총장, 그리고 같은 날 오후엔 이종섭 국방부 장관에게 각각 채 상병 사고 경위 등에 대한 해병대 수사단의 조사 결과를 대면 보고했다.
해병대 제1사단 소속이던 채 상병(당시 일병)은 지난달 19일 오전 9시쯤 경북 예천 내성천에서 구명조끼 착용 없이 실종자 수색을 하던 중 급류에 휩쓸려 숨졌다.
이와 관련 해병대 수사단이 작성한 채 상병 사고 경위 등에 대한 조사 보고서엔 '임성근 해병대 제1사단장 등 군 관계자 8명을 업무상 과실치사 혐의로 경찰에 이첩할 예정'이란 내용이 포함돼 있었다.
이 장관은 박 대령의 보고 당시 해당 보고서 내용과 관련해 몇 가지 질문을 한 뒤 곧바로 결재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해병대 측은 이튿날인 지난달 31일 오후 해당 보고서 내용을 언론과 국회에도 알릴 계획이었으나, 31일 당일이 되자 돌연 취소하고 말았다.
이에 대해 국방부는 '해병대 수사단의 이첩 자료에 혐의가 적시되면 향후 경찰 수사에 영향을 미칠 수 있으니 사실관계만 넣는 게 타당하다'는 법무관리관실의 검토 의견에 따라 이 장관이 '채 상병 사고 조사결과 공개와 경찰 이첩을 미루고 대기하라'고 해병대 측에 지시했기 때문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국방부는 이 장관의 이 같은 지시 사항이 정종범 해병대 부사령관을 통해 김계환 해병대사령관과 박 대령에게까지 전달된 것으로 보고 있다.
그러나 박 대령은 이날 배포한 입장문에서 "이 장관 보고 이후 경찰에 (채 상병 관련) 사건을 이첩할 때까지 그 누구로부터도 장관의 '이첩 대기' 명령을 직·간접적으로 들은 사실이 없다"고 밝혔다.
박 대령은 이달 2일 채 상병 사고 관련 조사기록을 관할 경찰인 경북경찰청에 이첩했다가 '항명'을 이유로 보직해임돼 현재 국방부 검찰단의 수사를 받고 있는 상황. 이에 대해 박 대령 변호인은 김 사령관이 이 장관으로부터 '이첩 보류' 지시를 받았다는 지난달 31일엔 박 대령에게 '이렇게 하면 어떨까, 저렇게 하면 어떨까'는 등의 의견만 구했을 뿐 지시 사항을 명확히 전달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변호인에 따르면 당시 박 대령은 김 사령관의 물음에 "해병대 전체의 명예를 생각해야 한다. 임 사단장의 (채 상병 사고 관련) 책임에 대해선 명시적·객관적 증거가 다수 존재하고 유족에게도 다 설명했다"며 "(그 책임을 묻지 않을 경우) 나중에 해병대 전체가 부도덕하다고 욕을 먹을 수 있다"고 답했다고 한다.
해병대 수사단에선 이후 이달 2일 오전 9시30분 채 상병 사고 관련 기록을 경찰에 이첩하기로 하고, 그에 맞춰 수사단 관계자를 경북경찰청으로 보냈다고 한다. 현행 '군사법원법'은 군인 사망 사건과 성범죄, 입대 전 범죄에 대한 수사·재판을 군이 아닌 민간 사법기관이 담당토록 하고 있다.
그러나 김 사령관은 2일 오전 10시 박 대령을 호출했을 때도 채 상병 사고 기록의 이첩 보류를 얘기하지 않다가 오전 10시51분쯤에서야 박 대령에게 전화를 걸어 '모든 걸 중단시키라'고 지시했다는 게 박 대령 측 설명이다.
이런 가운데 군 당국은 '박 대령이 이 장관과 김 사령관의 정당한 지시를 따르지 않았다'며 그에게 수사단장 직무정지 및 보직해임 등 조치를 취했고, 현재 박 대령은 국방부 검찰단으로부터 '집단항명 수괴' 등 혐의로 수사를 받고 있다.
그러나 박 대령 변호인은 "(경찰 이첩 전에) 김 사령관이 '국방부 장관의 명령'이라면서 명시적으로 지시한 게 없었다"며 결국 김 사령관이 '우물쭈물'하면서 현 상황에 이르게 된 것으로 본다고 밝혔다.
반면 국방부는 "김 사령관의 정상적 지시가 있었고 (박 대령이) 그 지시 내용을 들은 정황 등이 있다면 그것도 명령에 해당하는 것으로 인식할 수 있다"고 박 대령 측 주장을 반박했다.
pej86@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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