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백교 교주의 잘린 머리와 2190년 전 사람뼈 [본헌터⑭]
인골을 영접하는 길목에서 백백교 교주와 카데바를 만나다
*편집자 주: ‘본헌터’는 70여년 전 국가와 개인 사이에 벌어진 집단살해사건의 수수께끼를 풀어가는 이야기다. 아무데나 버려져 묻힌 이들과, 이들의 행방을 추적하며 사라진 기억을 찾아나선 이들이 주인공이다. 매주 2회, 월요일과 수요일 인터넷 한겨레에 올린다. 극단 신세계가 글을 읽어준다.
백백교 교주의 얼굴은 창백했다.
1895년생 용해는 해괴한 사이비종교 범죄행각으로 일제 강점기에 이름을 널리 알렸던 인물이다. 성인 남성은 “백백백의의의적적적감응감감응하시옵숭성”이라는 주문을 외우면 무병장수한다고 했다. 예쁜 딸을 가진 부모들을 골라서 입교시킨 뒤 딸을 바치게 하여 성폭행하기도 했다. 백백교의 비밀장소에서는 주검이 300여구 넘게 발굴됐다. 용해는 1937년 일본 경찰에 쫓기다 바위틈에 떨어져 죽었다.
용해의 얼굴은 포르말린으로 가득찬 유리관 속에 있었다. 오른쪽 뺨은 들쥐에게 갉아먹힌 듯 훼손된 상태였다. 나머지 피부는 깨끗했다. 치아 상태도 좋았다. 일본 경찰은 범죄형 두상에 관해 연구한다며 용해의 머리를 잘라내어 보관했다. 선주는 일제 경찰이 남겨놓고 간 그 백백교 교주의 머리를 보고 있었다.
1973년이었다. 서울 종로구 청운동에 있는 국립과학수사연구소 부검실의 풍경은 뭔가 엽기적이었다. 사형 집행한 북한 간첩들의 입안에서 빼낸 금니들, 쇼크사한 서울 요릿집 명월관 기생의 신체 일부도 보았다. 혀면 혀, 심장이면 심장, 부위별로 슬라이드에 담아 현미경으로 들여다볼 수 있었다.
선주는 사람 털의 단면을 미세하게 잘라 분석하는 기계에 관심이 갔다. 이른바 마이크로 톰(micro tom)이었다. 성별, 인종별로 체모의 형태가 달랐다. 머리털, 겨드랑이털, 음모, 다리털도 단면을 잘라놓고 현미경으로 보면 제각기 달랐다. 선주는 샘플링을 해 지구상의 털들이 각기 어떻게 다른지 연구하겠다며 털을 모으기도 했다. 의무장교인 친구에게 부탁해 군부대 안에서 털을 모으다가 정보참모에게 발각돼 곤란한 일을 겪기도 했다. 연세대 치대 교수 종열을 만난 뒤부터 과욕을 부리다 생긴 에피소드였다. 종열은 법치의학 전문가로서 국립과학수사연구소 일을 병행하고 있었다.
사학과 대학원생의 이상한 수업 여행이었다. 치아형태학을 배우겠다고 연세대 치대를, 사람 뼈를 알고 싶다고 같은 대학 의대의 문을 두드렸으니 말이다. 전례가 없는 일이었다. 전후 사정을 설명하고 공부를 해보고 싶다고 했다. 교수들은 뜻밖에도 수락을 해주었다. 청강의 형태였지만, 실제 수업에 참여하듯 했다. 교수에게 일대일 가르침을 받기도 했다. 의대 해부학 교실에서는 엄격하기로 소문난 수현에게 해부학 실습수업을 들었다. 의대 신입생들과 함께였다.
4인 1조로 카데바(해부용 시신)가 주어졌다. 겨울에 팔을 안으로 웅크리고 얼어 죽은 주검이었다. 경직된 팔을 펴지 못해 애를 먹었다. 머리 가죽을 벗기고 살을 베는 등 각 부위에 칼을 댈 때는 징그러워서 눈을 두기 쉽지 않았다. 하나하나 장기를 들어내고 탈육을 할 때부터 선주의 눈이 반짝거렸다. 신경이나 내장은 관심 밖이었다. 선주의 관심은 뼈였다. 마지막에는 시신을 삶았다. 뼈만 온전히 드러나는 순간이 왔다.
백백교 교주에서 털 수집과 카데바까지, 이 모든 것은 아치섬 인골 때문이었다. 1973년의 어느날 인골이 선주를 찾아왔기 때문이다.
인골이 제발로 찾아왔을 리는 없다. 선주는 마치 인골의 방문을 받은 듯한 느낌에 사로잡혔다. 그해 대학원 석사과정에 입학했던 선주는 경산 가인면에서 발굴된 인골을 빌리러 몇 달 전 영남대 박물관에 찾아갔었다. 가인 인골을 분석해 논문을 쓰려고 했기 때문이다. 발굴 책임자라는 교수는 고심 끝에 거절 의사를 밝혔다. 금세 이렇게 새로운 인골과 인연을 맺을 줄은 몰랐다. 부산 영도구 동삼동 하리에 위치한 조도, 즉 아치섬에서 발굴된 인골이었다. 아치섬은 1970년 한국해양대학교의 신축 이전이 결정되면서 주민들을 이주시키고 1973년부터 패총이라 불리는 조개더미 유적을 발굴 조사했다. 각종 토기 및 철기와 함께 발견된 인골은 머리뼈, 갈비뼈, 엉덩이뼈, 팔다리뼈 등이 꽤 완전하게 보존된 상태였다.
발굴에 참여한 국립중앙박물관의 고고연구관이 플라스틱 통에 인골을 가져왔다. 국립중앙박물관에는 뼈를 취급할 사람이 없었다. 인골은 창고에서 썩을 수도 있었다. 연세대 박물관장인 손 선생이 제천 점말동굴을 조사하며 동물뼈를 발굴해 처리했다는 소식을 듣고 찾아온 것이다. 손 선생은 사람 뼈에 관심이 많은 선주에게 아치섬 인골을 맡겼다. 선주로서는 감사할 뿐이었다.
선주는 제천 점말동굴의 동물뼈에게 했던 것처럼, 아치섬 인골을 받자마자 경화처리부터 했다. 손 선생이 오스트레일리아에 다녀올 때 가져온 <오스트레일리안 고고학>이라는 책을 참고서로 삼아 처리방법을 습득했다. 물 100cc에 폴리바이닐아세테이트(PVA) 용액을 몇cc 녹여야 농도가 적정한지 손으로 저으면서 감각을 익히고 실험했다. 일주일 내내 작업을 이어갔다. 이른바 ‘소프트 본’이라고 부르는 뼈의 양쪽 끝 말랑말랑한 부분을 단단하게 만드는 게 중요했다. 그러나 여기까지였다. 이제 이 뼈들을 어떤 방법론으로 파헤칠지 막막하기만 했다. 인골로 논문을 쓴 전례가 없었다. 그래서 과감하게 찾은 곳이 치대와 의대였다.
의대 해부학 실습실에서는 206개의 뼈가 어떻게 구성되고 조직돼 있는지를 배웠다. 머리의 구조, 머리뼈의 개수부터 시작해 각 부분의 뼈들을 꼼꼼하게 살필 기회였다. 치대에서는 치과에서 환자 치료를 할 때 쓰는 석션 실습도 해봤지만 주 관심사는 치아의 형태였다. 앞니, 옆니, 송곳니, 작은 어금니, 큰 어금니, 사랑니의 신경구멍, 즉 치관(치아머리)은 나이에 따라 점점 좁아 든다고 했다. 치관 계산에 따라 나이가 나왔다.
이때 함께 공부한 책이 1928년 독일에서 출간된 루돌프 마틴(Rudolf Martin)의 <인류학 교과서>였다. 해부학 실습실에 비치된 책이었으나, 인체를 계측하는 방법에 대한 내용이라 그런지 의대생들은 관심이 없었다. 체질인류학 분야에서는 숭배를 받는 책이었다. 나치 정권은 이 책을 우생학의 근거로 활용해 사람을 죽였다고도 할 수 있었다.
선주는 치대와 의대에서 배운 뼈대 지식을 바탕으로 아치섬 인골을 연구해 1975년 논문을 완성했다. 인골의 각 부위를 계측해 성별과 나이를 판별하고 키를 쟀다. 치아의 엑스레이 사진을 찍었다. 연대를 구하기 위해 인골의 파편을 원자력연구소 방사선연대측정실에 맡겼다. 최초로 오래된 사람 뼈에 시도한 방사선 연대측정 방법이었다. 그 결과 2190년 전의 사람으로 밝혀졌다. 철기 삼한 시대였다. 남성, 나이는 20대 말 또는 30대 초, 키는 163~171cm, 머리 부피는 1,517cc, 머리 최대길이는 183.8mm….
거슬러 올라가면 1973년 아치섬은 1962년 충북 제천시 청풍면 황석리 고인돌, 1969년 경산 자인면에 이어 선사·고대시대를 통털어 세 번째 인골이 나온 곳이었다. 그 인골을 갖고 체질인류학적 특징을 다룬 논문을 국내 처음으로 낸 사람이 선주로 기록될 참이었다.
선주는 늘 생각했다. ‘나는 아치섬 인골 때문에 여기까지 온 거다. 아치섬 인골이 없었다면….’ 그때 사람 뼈에 욕심을 갖고 경계를 넘어선, 어쩌면 무리한 호기심의 광폭 질주가 선주의 오늘을 만들었다. 선주는 가끔 아치섬 인골 논문에 박힌 명백한 오류를 되새기기도 했다. 어금니에 홈처럼 난 선을 잘못 해석한 것이다. 논문을 쓸 땐 모래로 양치질을 했다고 생각했다. 버클리에서 박사과정을 이수하면서 그게 아니라는 걸 깨달았다. 아치섬 인골은 6살 전에 고열을 앓았던 거다. 영양 상태가 안 좋아 남은 흔적이었다.
고대 아치섬 인골은 고작 2190년 전이었다. 3백만년이 넘은 화석 인류가 선주를 기다리고 있었다.
<다음 회에 계속>
글쓴이 소개
사회부 기자.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를 맡고 있다. <유혹하는 에디터>, <굿바이 편집장>, <대한국민 현대사>라는 책을 썼다. 2000년 베트남전 시기 한국군의 민간인 학살에 관한 미군 비밀문서를 최초 보도했고 <베트남전쟁 1968년 2월12일> 한국어판과 일본어판, 베트남어판을 냈다. 베트남전에 이어 이번엔 한국전쟁이다.
고경태 기자 k21@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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