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발베니·글렌피딕, 또 오른다” 2년 연속 깜깜이 인상… 美·英·中보다 비싼 세계 최고가

유진우 기자 2023. 8. 9. 10: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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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베니와 글렌피딕 등 유명 위스키값이 다음 달부터 또 오른다.

우리나라에 발베니와 글렌피딕을 수입·공급하는 윌리엄그랜트앤선즈코리아는 발베니와 글렌피딕 가격을 최대 7% 넘게 인상한다고 밝혔다. 지난해 3월 최대 9%를 올린 후 1년 반 만에 가격을 올리는 셈이다.

9일 주류업계에 따르면 윌리엄그랜트앤선즈코리아는 지난 7일 거래처에 공문을 보내 다음 달 1일 자로 발베니 12년 더블우드·발베니 14년 캐리비언캐스크·발베니 스토리 12년 아메리칸오크·발베니 14년 위크오브피트·글렌피딕 12년·15년·18년의 출고가를 일제히 올린다고 통보했다.

이들 제품은 모두 윌리엄그랜트앤선즈코리아 주력 제품이다. 특히 발베니 12년 더블우드는 지난해와 올해 위스키 ‘오픈런’을 이끈 주역이다. 이번 인상으로 발베니 12년 더블우드 출고가는 9만2400원에서 9만6580원으로 4.5% 뛴다. 출고가 10만원을 눈앞에 뒀다.

여기에 도매상과 소매상 마진을 더하면 소비자가 시중에서 살 수 있는 가격은 최소 15만원 안팎까지 오를 전망이다.

세계 주류 거래 시장에서 가장 보편적으로 쓰이는 실시간 가격 비교 플랫폼 와인서처에 따르면 이날 기준 국내 발베니 12년 더블우드 평균 판매가는 약 13만7000원에 달한다. 미국과 일본, 영국 같은 주요 주류 소비국보다 최대 2배 가까이 높다.

싱가포르, 중국처럼 외산(外産) 주류에 관대하지 않아 관련 세금을 세게 부과하는 국가보다도 20%까지 비싸다. 베트남같이 위스키 소비 저변이 크지 않고, 소득 수준이 낮은 국가도 우리나라보다 가격이 저렴하다. 이번 인상으로 다음 달부터 다른 국가와 가격 차이는 더 벌어질 예정이다.

그래픽=손민균

전 세계 싱글몰트 판매량 1위 브랜드 글렌피딕은 가격 인상률이 더 가파르다. 글렌피딕 18년은 이번에 출고가 기준 7.2%가 올라 19만6900원을 기록했다.

윌리엄그랜트앤선즈코리아는 “지속적인 원가 상승과 물류비 같은 단가 상승 요인이 발생해 불가피하게 가격을 올렸다”고 밝혔다. 이 회사는 지난해 위스키값을 인상할 때도 같은 사유를 들었다.

그러나 윌리엄그랜트앤선즈코리아 감사보고서를 보면 매출원가율에 큰 변화는 없었다. 매출원가는 물류비와 환율상승분을 포함한다. 팬데믹 이후 수입 관련 비용이 늘어난 기업들은 대부분 매출원가율이 같이 따라 올랐다.

반면 윌리엄그랜트앤선즈코리아는 2018년 이후 최근 5년 동안 손실을 봤던 2019년을 제외한 나머지 4개년 매출원가율이 17~19%로 거의 비슷했다. 가격을 올린 지난해 매출원가율은 2021년보다 오히려 1%포인트(P) 줄었다.

같은 기간 윌리엄그랜트앤선즈코리아의 영업이익은 67배나 치솟았다. 2018년 2억7000만원이던 영업이익은 지난해 183억원으로 급증했다. 직전 해와 비교해도 95%가 뛰었다. 지난해 매출상승분 95억원 가운데 89억원이 고스란히 영업이익으로 쌓였다.

윌리엄그랜트앤선즈코리아뿐 아니라 다른 주요 위스키 수입사 역시 최근 주거니 받거니 식으로 가격을 올렸다. 세계 최대 주류기업 디아지오의 국내 법인 디아지오코리아는 지난해 조니워커 전 제품군을 포함한 주력 제품 공급가를 두 번이나, 최대 20%까지 올렸다.

디아지오와 쌍벽을 이루는 페르노리카코리아 역시 지난해 두 차례 가격 인상을 했다. 페르노리카를 대표하는 발렌타인 17년 공급가는 작년 한해 11만5000원에서 13만1000원으로 13.9% 뛰었다.

디앤피스피리츠가 공급하는 하이랜드파크 21년 가격도 33만원에서 올해 49만5000원으로 50% 급등했다. 루이비통을 보유한 LVMH 계열 엠에이치샴페인앤즈앤드와인코리아는 글렌모렌지 18년 가격을 10% 넘게 올렸다.

이들 기업은 모두 지난해 우리나라 시장에서 역대급 이익을 기록했다. 페르노리카코리아 영업이익은 최근 회계연도(2021년 7월~2022년 6월) 기준 전년 대비 47% 늘어 395억원으로 불었다.

그래픽=손민균

정부는 올해 서민 물가를 잡는다는 명목으로 소주·맥주 제조사에 가격을 동결하라고 압박했다. 하지만 위스키 수입사에는 이렇다 할 가격 관련 건의조차 하지 못했다. 그 사이 위스키 물가는 급상승하며 인플레이션 주범으로 올라섰다.

이제 위스키에 열광했던 소비자마저 ‘가격이 너무 비싸다’는 부정적인 의견을 내놓는 추세다.

통계청 국가통계포털(KOSIS) 소비자 물가지수에 따르면 지난달 기준 양주 소비자물가 지수는 110.88을 기록하며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5.2% 올랐다. 2020년 1월 이후 최고치다.

이 지수는 2020년 소비자 물가를 100으로 잡고, 현시점에서 소비자가 체감하는 물가가 얼마나 오르내렸는지 나타낸다. 팬데믹 이후 국내 소비자가 가장 뚜렷하게 ‘위스키값이 비싸다’고 체감한다는 의미다.

가격에 민감한 소비자들은 해외 직접구매(직구) 사이트를 찾아 떠났다. 현재 비타트라나 몰테일 같은 직접구매 쇼핑몰에서 발베니 12년 더블우드는 13만원대 초반에 팔린다. 관·부가세와 주세, 교육세에 국내 택배비까지 포함한 값이다. 해외 소매점 마진에 물류를 포함한 제반 비용을 모두 합쳐도 수입사가 정식으로 들여와 파는 술보다 저렴하다.

일부 주류업계 전문가들은 경기가 움츠러드는 시기에 위스키 가격까지 연거푸 오르면 2010년대 같은 위스키 침체기가 다시 올 수도 있다고 경고했다. 위스키 업계는 팬데믹 직전까지 주 52시간 근무제와 청탁금지법 시행 등으로 전반적인 사회 분위기가 음주를 지양하는 방향으로 바뀌면서 극심한 보릿고개를 겪었다.

한국베버리지마스터협회 관계자는 “소비자들이 팬데믹 기간 수입 맥주에서 와인을 거쳐 위스키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한 것처럼 언제든지 소비자들의 관심은 전통주나 브랜디처럼 위스키가 아닌 다른 술로 옮겨갈 수 있다”며 “‘물 들어올 때 노 젓자’식 한탕주의로는 우리나라에 위스키 문화를 제대로 펼치기 어렵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해외보다 국내 시장에서 비싼 값에 팔리는 ‘김치 프리미엄’을 당연하게 여기고, 인기 제품에 재고를 끼워 파는 식으로 매출만 불려서 저변이 넓어지겠느냐“며 “수제 맥주 업계가 수십 년 동안 정부와 상대해 세금을 종량세로 바꾸고, 와인 업계는 대량 구매 같은 방식으로 와인 값을 해외 수준까지 낮추는 동안 위스키 업계는 무엇을 했는지 돌아봐야 한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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