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원 역주행 택시' 원인은 급발진?···경찰 "모든 가능성 열고 규명"

김태원 기자 2023. 8. 9. 1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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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5일 오후 경남 창원시 마산회원구 석전동 석전사거리 인근 도로에서 택시가 시내버스, 승용차와 잇달아 충돌하는 사고가 발생했다. 연합뉴스
[서울경제]
비정상적 속도로 달려와 ‘쾅’···온라인 위주로 급발진 의심

경남 창원시 마산회원구 석전사거리에서 택시가 납득할 수 없는 속도로 역주행한 끝에 연쇄 충돌 사고를 일으켜 다양한 추측이 나오고 있다. 많은 이들이 사고 원인으로 급발진을 의심하는 가운데 경찰은 다양한 가능성을 모두 열어두고 원인을 규명한다는 방침이다.

8일 경남 마산동부경찰서는 오는 11일 국립과학수사연구원에 택시 사고기록장치(EDR)를 보내 지난 5일 사고 당시 차량의 제어 상태 등을 확인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현재 택시 내 블랙박스는 칩이 파손돼 복원을 시도 중이지만 확인까지는 다소 시간이 걸릴 것으로 예상된다.

사고 순간이 담긴 주변 폐쇄회로(CC)TV 영상을 보면 택시 기사 A씨가 몰던 택시는 당시 굉장히 빠른 속도로 석전사거리 방향으로 내달리다 맞은 편에서 우회전하려던 승용차를 친 뒤 신호대기 중이던 시내버스를 그대로 들이받았다. 택시가 반파하면서 불이 났고 버스 앞바퀴가 잠시 공중에 떴다가 내려왔을 만큼 심한 충격이 발생했다. 이 사고로 70대 택시 기사와 50대 승객이 결국 숨졌고 버스 기사 등 7명이 경상을 입었다.

택시가 내달린 차로는 반대편에서 차들이 올라가는 방향으로 당시 택시는 역주행 상태였다. 경찰은 택시가 양방향이 도로 벽으로 구분된 산복도로를 타고 내려오다 석전사거리를 앞두고 유턴이 가능한 지점에서 역주행해 사고를 낸 것으로 보고 있다.

택시가 순간 급발진하면서 앞에 신호대기 중이던 차량과의 사고를 피하고자 반대 차선으로 급히 핸들을 꺾어 역주행 사고가 났을 가능성도 염두에 두고 있다.

온라인 커뮤니티 캡처
한문철 변호사 “車제조사, 자신 있으면 페달 블랙박스 의무화를”

경찰은 급발진과 운전미숙 등 모든 가능성을 열어놓고 조사 중이다.

아직 택시 블랙박스 복원이 안 돼 택시가 어느 지점에서부터 속력을 냈는지는 확인되지 않았다.

사고 당시 택시 주변을 함께 달린 차들의 블랙박스 영상 제보도 아직 없는 상태다.

이 때문에 경찰은 EDR을 통해 당시 차량 속도와 브레이크 페달 작동 여부, 엔진 회전수 등을 토대로 사고 당시 상황을 추정해볼 수밖에 없다는 입장이다.

경찰 관계자는 "이번 사고는 보통과 다른 비정형적인 사고라 원인 규명에 좀 더 시간이 걸릴 것으로 보인다"며 "과학적인 데이터로 확인해볼 수 있는 EDR 결과가 나와봐야 어느 정도 사고 원인을 찾을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급발진 의심 사고가 연이어 발생하자 교통사고 전문 한문철 변호사는 지난 5월 자동차 제조사에 페달 블랙박스 설치 의무화를 요구한 바 있다. 그는 “자동차 출고시킬 때 자신 있으면 페달 블랙박스를 의무적으로 달라”고 촉구했다.

유튜브 채널 방송화면 캡처
국토부, EDR 저장 시간 확대·브레이크 압력 센서값 추가 등 검토

한 변호사는 지난 4월 방송에서도 급발진 의심 사고를 겪은 택시 기사의 사연을 소개하며 “급발진을 입증하기 위해서는 다른 블랙박스 영상과 시간이 정확히 맞는 페달 블랙박스의 영상이 필요하다”면서 “그 이후의 입증은 제조사의 몫이다”라는 말을 남겼다.

최근 10년간 급발진 의심 사례가 4배 이상 늘어난 가운데 주무부서인 국토교통부는 EDR의 저장 기록을 보완하는 방안을 마련 중이다.

현행 자동차관리법과 관련 법령으로 '사고기록장치 장착기준'에 의무화된 15가지 기록 항목은 자동차의 속도와 RPM(엔진회전수), 가속 페달, 브레이크 페달 작동 여부 등이다. 국토부는 여기에 '브레이크 압력 센서값'을 추가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이를 의무화하게 되면 급발진 의심 증상이 나타났을 때 브레이크가 어떻게 작동했는지와 운전자가 브레이크를 얼마나 강하게 눌렀는지 등을 지금보다 상세히 파악할 수 있다.

또 현행 규정상 EDR의 저장 시간은 최소 5초에 그치는데 상당수 급발진 의심 사고들은 ‘고속주행’이 수십 초간 이어질 때가 많아 사고 원인 규명이 사실상 어렵다.

실제로 지난해 12월 발생한 강릉 급발진 의심 사고 역시 차량이 시속 100㎞가 넘는 속도로 약 30초 동안 질주했지만 국과수가 분석할 수 있었던 건 사고 직전 마지막 5초의 EDR 데이터뿐이었다.

2016년 부산에서 트레일러 추돌로 일가족 5명 중 4명이 숨진 '급발진 의심 사고'의 해당 차량 블랙박스 영상. 2심까지 패소한 원고 측은 결국 대법원에 판단을 맡겼다. YTN 보도화면 캡처
제조사에 입증 책임 지우는 ‘급발진 방지법’ 국회서 공전···내년 자동 폐기

그러나 더 근본적인 대안이라 할 수 있는 제조물 책임법 개정 등은 국회에서 논의가 멈춰있다. 급발진 의심 사고가 났을 때 입증 책임을 제조사가 지게 하자는 내용이다. 차량의 결함과 급발진 원인에 대한 분석은 차량에 대한 수많은 정보와 고도의 전문성이 필요한데 개별 소비자가 밝혀내는 건 사실상 불가능에 가깝기 때문이다.

지난 3월 강릉 급발진 의심 사고로 숨진 도현이의 아버지는 '급발진 방지법'을 입법 청원했고 엿새 만에 5만 명이 동의했다.

급발진 방지법에는 가속제압장치(비정상적 고속주행 현상 시 강제로 속도를 낮추는 것) 등 사고 예방 장치를 의무 설치하도록 하는 것도 포함됐다.

그러나 지난 4월 이후 담당 상임위인 국회 정무위원회 제2 법안소위에 두 차례 안건으로 오르기만 했을 뿐 다른 안건에 밀려 심도 있는 논의가 이뤄지지는 못한 실정이다. 이 법안은 내년 21대 국회가 끝나면 자동 폐기된다.

김태원 기자 revival@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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