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기정의 1937년 정밀신체검사 최초 기록 발견…연세대 동은의학박물관이 공개, 병원 방문 기념사진도 [단독]
[OSEN=홍윤표 선임기자] “승리의 감격에 취해 내가 숙사로 들어서니 내 베드는 온통 꽃으로 뒤덮여 있었다. 나를 만나는 사람들은 모두가 나에게 사인을 요구했다. 그때마다 나는 우리 한글로 ‘손기정’이라고 사인해 주었다. 다음날 나는 경기장에 참관하러 오는 히틀러와 면담의 기회를 가질 수 있었다.(…) 통역을 사이에 두고 나는 그에게 독일국민이 나에게 보내준 성원에 감사한다고 치사했다. 그러자 히틀러는 껄껄 웃으며 훌륭한 청년이라고 칭찬한 다음 자신의 사진에 사인을 해줬다(…).”(1968년 4월, 『월간중앙』 창간호. 손기정 회고 「나의 29분 19초는 14년이 걸렸다」 에서 발췌 인용)
8월 9일은 손기정(1912-2002)이 1936년 베를린올림픽 마라톤에서 2시간 29분 19초 2의 올림픽 신기록으로 월계관을 쓴 날이다. 아울러 1992년 같은 날 황영조가 바르셀로나올림픽에서 역시 마라톤 우승의 쾌거를 일군 날이기도 하다.
우승의 여운이 채 가시지 않은 베를린올림픽 1년 뒤, 세브란스병원에서 받은 손기정의 신체 정밀종합검진 기록이 실린 논문 한 편과 병원 설립자인 올리버 에비슨의 아들 등과 함께 찍은 사진이 최초로 발견됐다.
연세대 의과대학 동은의학박물관 정용서 학예실장이 밝힌 바에 따르면 이 논문은 조선의사협회가 발행한 『조선의보(朝鮮醫報)』 1937년 10월호(제7권 제3호. 국립중앙도서관 소장)에 실린 것이고, 사진은 1937년 5월 손기정이 검진받을 때 찍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손기정의 친필 서명(한자로 孫基禎)이 돼 있는 사진에는 세브란스병원 의사인 D. B. 에비슨을 비롯해 의료선교사로 내한, 세브란스 외과학교실 책임자로 26년간 일했던 알프레드 러들로, 산부인과 의사인 윤치왕, 1934년 세브란스 의전 제2대 학교장을 지낸 오긍선, 제4대 학교장 이영준 등 8명의 인물이 함께 찍혀 있다.
‘「마라손」王 孫基禎君의 身體檢査成績에 就하야’라는 제목의 논문은 최성장(崔性章), 곽인성( 郭仁星) 두 의사가 윤일선(尹日善. 세브란스의전 병리학교실 주임, 서울대 총장 역임)과 오한영(吳漢泳. 세브란스의전내과학교실 주임)의 지도로 작성했다.
모두 6쪽에 이르는 이 논문에는 손기정의 신체적인 특성이 망라돼 있다. 검사 시기와 시각, 검사방법, 검사결과(나이, 운동력, 질병 유무, 신장, 체중, 가슴 및 배 둘레, 발길이, 혈액형, 맥박, 혈압, 호흡수, 폐활량 같은 기초적인 자료부터 임상적인 소견과 흉부 렌트겐 소견, 심장 소견 등을 도표를 곁들여 상세하게 풀어 놓았다.
논문의 머리글은(이하 표기는 현재의 맞춤법으로) “제11회 올림픽에 출전, 영예의 우승을 한 마라톤왕 손기정 군의 신체에 관하여 연구할 기회를 얻게 돼 그 결과를 주제로 우리 스포츠계 발달을 위함이 초미의 급선무라고 생각, 작성하게 됐다”고 집필 동기를 밝혔다.
논문에 따르면 손기정의 신체검사는 시기와 시각, 장소를 두루 고려해 “시즌 중 직접 운동의 영향이 적은 시간을 우선 선택했다. 그에 따라 1937년 5월 상순 오후 1시에 1차 검사, 2차는 같은 해 5월 중순 오후 4시에 손기정이 6리(1리를 약 400m로 환산하면 2.4km 정도의 거리)를 뛰고 난 다음 세브란스의전(醫專) 병리학교실에서 시행했음을 알렸다.
당시 24살이었던 손기정 신체검사의 결과는 키 165cm, 몸무게 59kg, 가슴둘레 90.6, 배 둘레 70.5cm였고, 혈액형은 B형, 안정시 맥박은 63, 6리 달리기 후 맥박은 84, 올림픽 당시에는 57로 논문은 그의 맥박이 ‘희맥(稀脉)’이지만 운동선수에게서만 볼 수 있는 현상으로 진단했다.(손기정은 매일 계속해서 운동하면 맥박이 보통 40~50밖에 안 된다고 설명했다)
또 혈압은 안정 시 최대 104, 극소혈압 58, 6리 달리기 후 60(최저)~127(최고)로 나타났다. 관심이 가는 폐활량은 운동 전후에 편차가 심하지만 보통 3900cc였다. (논문은 유럽 성인 평균 3700cc, 조선인 건장 청년 남자 폐활량 평균치 3559cc로 손기정이 많은 편이고, 운동 후에도 손기정의 폐활량은 3900cc로 큰 변화가 없었다고 기술했다)
흉부 렌트겐 검사 결과 손기정의 심장은 왼쪽으로 확대돼 있고, 폐는 좌우에 ‘산재성(散在性)의 석회침착(石灰沈着)’이 있다는 소견을 내렸다. 논문에는 손기정의 다리를 촬영한 사진(이미지 참조)과 일반인과 비교한 심장 부위 사진도 곁들여 있다.
손기정의 신체검사 관련 논문은 올림픽 우승 후 그의 신체적 특성을 최초로, 그리고 정밀하게 검사하고 그 결과를 종합했다는 점에서 큰 뜻을 갖는다.
상록수의 작가 심훈은 손기정이 올림픽에서 우승한 직후 감격에 겨워 신문 호외 뒷면에 이렇게 썼다.
”오오, 나는 웨치고 싶다!/ 마이크를 쥐고 전 세계의 인류를 향해서 웨치고 싶다!/ 인제도 인제도 너희들은 우리를/약한 족속이라고 부를 터이냐!
(‘오오, 朝鮮의 男兒여! ’라는 제목을 달고 1936년 8월 10일 새벽 신문 호외 裏面에 쓴 絶筆)
일제에 짓눌려 살고 있던 조선 민족의 가슴에 희망과 용기를 심어준 손기정옹은 2002년 11월 15일 세상을 떠났다. 2001년 1월 삼성서울병원에서 입원 치료 중 발가락 절단 진단 얘기를 듣고 “아무리 아파도 세계를 제패한 다리만은 자를 수 없다”고 버텼던 그였다.
사진 및 논문자료 제공=연세대 의과대학 동은의학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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