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마에 태풍까지…“개별 지역이 스스로 복구 비용 마련하게 해줘야”
‘고향사랑기부제 재난·재해 대응에 활용할 필요성’ 공감대
(시사저널=오종탁 기자)
한 달 동안 이어진 장마가 끝난 지 얼마 되지도 않아 태풍이 닥쳐오고 있다. 지방자치단체들은 그로기 상태에 빠졌다. 그렇지 않아도 장마 피해 복구의 어려움에 더해 예상치 못한 뒤처리 비용 부담으로 이중고를 겪고 있었다. 13개 지자체를 특별재난지역으로 지정하고, 추가 지정 등 후속 조치를 고려하던 정부도 막막하긴 마찬가지다. 태풍 '카눈'이 휩쓸고 간 후 눈덩이처럼 불어날 복구비 재원을 어떻게 마련할지 우려감을 자아내고 있다.
이런 가운데 지역경제 활성화와 인구 소멸 해소 차원에서 추진되고 있는 고향사랑기부제를 재난·재해 대응에도 활용해야 한다는 제안이 제기됐다. 박덕흠 국민의힘 의원, 한병도 더불어민주당 의원과 한국지방자치학회 고향사랑기부제특별위원회는 8월8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고향사랑기부제 : 재난·재해 대응 관점에서'라는 주제로 긴급 토론회를 개최했다. 이번 토론회는 지자체가 모은 고향사랑기부제 기부금을 재난·재해 대응 재원으로 활용해야 할 필요성을 환기하고 구체적인 실현 방안을 모색하기 위해 마련됐다.
고향사랑기부제는 개개인이 자신의 주소지를 제외하고 고향이나 원하는 지방자치단체에 연간 500만원 이내에서 기부하면 세액공제와 지역 답례품 수령 등 혜택을 받는 제도다. 1월1일 시행 이후 윤석열 대통령과 문재인 전 대통령, 축구스타 손흥민, 방탄소년단(BTS) 멤버 제이홉 등 유명 인사가 잇따라 참여하고 일부 지자체의 기부금 모금액이 빠르게 증가하는 등 화제몰이 중이다.
그러나 동시에 '중앙정부 개입이 너무 과도해 지방정부가 맥을 못 춘다'는 목소리도 점점 높아가는 모습이다. 행정안전부가 기부금 모금 플랫폼 구축과 운영을 독점하는 현행 시스템으론 개별 지자체가 고향사랑기부제를 제대로 추진할 수 없다는 것이다. 같은 이유로 고향사랑기부제의 재난·재해 대응 활용도 가로막혀 있다고 박덕흠 의원은 지적했다. 박 의원은 "고향사랑기부제는 개인이 고향에 기부하고 지자체가 이를 모아 사용하는 제도로 주민 복리나 지역 공동체 활성화 지원과 같은 사업을 목적으로 하는데, 시행령상 사용 목적에 재난·재해 대응은 명시돼 있지 않다"면서 "기부금이 필요한 재난·재해 시기에 알맞게 사용되도록 변화가 필요한 시점"이라고 말했다.
2008년 고향사랑기부제의 롤모델인 고향납세제도(고향세)를 도입한 일본은 다르다. 일본 고향세는 애초에 민간이 각 지역 사업을 기획하고 활용할 수 있도록 하고, 또 이에 공감하는 사람들이 지자체든 민간 플랫폼이든 특정 창구에 구애받지 않고 기부할 수 있게 열어뒀다. 한국의 중앙정부 통합 플랫폼 같은 획일화된 시스템은 존재하지 않는다. 아울러 재난·재해 발생 시엔 각 지역마다 피해 복구와 구호 활동 등 목적으로 고향세 기부금을 모아 재원 마련에 나서 왔다. 평상시에도 재난·재해 대응 명목으로 모금해 사전 준비를 탄탄히 해놓는 시스템이 일반화돼 있다. 최근 일본 현지 설문조사에 따르면 고향세 기부자의 23.9%가 재난·재해 대응 기부를 실천했다고 답했다. 한병도 의원은 "성공적인 일본의 선례를 참고해 우리나라도 재난·재해 대응에 고향사랑기부제를 활용한다면 신속한 재원 마련으로 실질적인 피해 복구와 보상을 할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날 발표자로 나선 권선필 한국지방자치학회 고향사랑기부제특별위원회 위원장(목원대 교수)은 "그동안 중앙정부의 재난·재해 피해 지원은 시기적인 측면과 기준 등에서 많은 한계를 노출해 왔다"고 전했다. 그러면서 △국고 지원이 확정되고 교부돼야 지원금이 나오므로 필요한 시기와 시차가 발생하는 점 △법령에 정해진 기준 안에서만 지원이 이뤄지므로 범위를 벗어난 경우 지원 대상이 되지 못하는 점 △재난·재해 지역의 특수성이 충분히 반영되지 않은 지원 기준 등을 대표적인 문제점으로 들었다.
권 위원장은 "고향사랑기부제의 지정기부를 통한 재난·재해 대응 재원 마련이 돌파구가 될 수 있지만, 행안부가 마련한 통합 플랫폼 '고향사랑e음'을 통해선 재난·재해 관련 지정기부 요구를 실시간으로 수용하지 못한다. 기부자 친화적인 다양한 민간 온라인 플랫폼을 구축해야 한다"며 "지역의 고질적 문제를 해결하는 동시에 수많은 재난·재해 대응 아이디어도 연결할 수 있는 해당 전략은 윤석열 대통령의 '디지털플랫폼 정부' 계획의 대표 사례가 될 수 있다"고 말했다.
이연경 페어트래블재팬 법인장도 발표를 통해 일본 고향세의 재난·재해 대응 활용 사례를 소개하면서 "조속히 시행령에 재난·재해 긴급 대응과 방재에 고향사랑기부제 기부금을 사용할 수 있다는 항목을 추가하고, 이후 민간 플랫폼을 적극적으로 활용해 재난·재해 대응을 위한 지정 기부를 활성화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이 법인장은 "일본 고향세는 도입 초기 지지부진하다가 2013년 말 지역별로 민간 온라인 플랫폼을 구축하기 시작하면서 급속도로 활성화했다"며 "한국 고향사랑기부제 또한 지역 주도로 시행해야 하는 제도인데, 현실은 중앙정부의 과도한 통제 때문에 발이 묶였고 현장의 요구도 반영하지 못하고 있다"고 안타까워했다.
토론자로 참여한 이동환 아시아태평양재난관리한국협회 상임이사는 "괴산군, 오송읍 등 이번 장마 피해 현장에서 구호 활동을 해보니 예산(국비·지방비) 지원과 복구 활동이 적절히 이뤄지지 않아 피해 주민들이 이중고를 겪고 있었다"면서 "지자체들이 피해 복구 예산도 방재 시스템도 어느 하나 제대로 갖추지 못하게 만드는 현 제도를 개선하지 못하면 매번 답답한 상황이 반복될 수밖에 없다"고 비판했다. 이어 이 상임이사는 "재해 대응의 중심이 각 지역이 되어야만 한다"며 "고향사랑기부제를 통해 모인 재난·재해 대응 재원을 지자체나 구호단체들이 적기에 사용하게 되면 정말 스펙터클한 개선이 일어날 수 있다고 본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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