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온서 전기저항 ‘0’ 인 꿈의 물질… 112년간 제조·합성 성공사례 없어[Who, What, Why]
전류흐를때 에너지 손실 없어
지금까진 극저온에서만 작동
개발땐 인류 에너지 수요 해결
AI 등 양자컴퓨터에도 대혁명
한국 연구팀 논문서 “제조” 주장 뒤
각국 검증작업… 연내 1차 결론
네이처 “재현 성과 미흡, 회의적”
중국 연구진 “일부 구현” 영상 공개
‘노벨상감인가, 아니면 한바탕 소동으로 끝날 것인가.’
깜짝 등장한 ‘상온(常溫) 초전도체(超傳導體·superconductor) LK-99’ 발명 주장 논문 한 편이 과학계와 주식가를 강타하며 엄청난 논란의 소용돌이 속으로 빠져들게 하고 있다. 무한동력만큼이나 황당할 수도 있고, 엄청날 수도 있는 사안이어서 세계 각국에서 논문과 공개 영상 검증을 벌이고 있지만, 아직 뚜렷한 진위는 가려지지 않았다. 초전도 관련 주식들이 부침을 거듭하는 가운데, 꼭 초전도체가 아니더라도 비슷한 특성을 지닌 새 물질로 확인될 경우에는 상당한 파장이 예상된다.
◇‘맞다’ vs ‘아니다’ 공방 가열 = 미국 메릴랜드대 응집물질이론센터(CMTC)는 8일 엑스(X·옛 트위터)에 “매우 애석하게도 우리는 게임은 끝났다고 생각한다. LK-99는 초전도체가 아니다. 상온 초전도체는 더더욱 아니다. 매우 저항이 높은 저급(low quality) 물질이다. 데이터가 말해준다”고 밝혔다.
CMTC는 직접 LK-99를 제조하거나 실험했다는 언급은 없이 싱가포르 난양공대(NTU), 인도 국립물리학연구소(NPL), 중국 베이징대 국제양자물질센터(ICQM) 3곳의 연구 데이터를 평가하면서 이같이 결론 내렸다. CMTC는 3곳의 보고서에서 전혀 초전도성이 확인되지 않았으며, 오히려 극도로 높은 반도체와 절연체 저항성을 보여 그 수치가 상온에서 구리보다 10억 배나 높았다고 밝혔다.
이에 앞서 LK-99 논문의 공동 저자인 김현탁 미국 윌리엄앤드메리대 연구교수는 지난 5일 국내 한 언론과의 인터뷰를 통해 “(LK-99에서) 완벽하진 않지만 틀림없이 초전도 특징을 띠는 물질이라는 것을 실험에서 확인했다”고 말했다. 그는 이유로 “전기저항이 ‘0’이라는 점, 임계온도 위에 금속처럼 옴의 법칙(전류의 세기는 전위차에 비례하고 전기저항에 반비례)을 보인다는 점, 금속에서 저항이 떨어지는 쪽으로 전류가 불연속 점프한다는 점 등 초전도체 특징들을 다수 관측했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그는 실제 상용화까지 이어지려면 대략 10여 년의 시간이 더 필요하다고 말했다.
네이처지 인터넷판은 4일(현지시간) “LK-99의 등장에 많은 연구진이 이를 재현하려 노력하고 있지만 주목할 만한 결과를 실험적, 이론적으로 보이지 못하고 있다”면서 “소셜미디어는 이 이야기로 떠들썩하지만 과학자들은 회의적”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어떤 연구도 이 물질이 초전도성을 지닌다는 직접적 증거를 제시하지 못했다”고 덧붙였다. 국내에서도 한국초전도학회가 2일 검증위원회를 구성해 “퀀텀에너지연구소에서 시편(물질 샘플)을 제공하면 상온 초전도체 검증을 위한 측정을 하겠다”고 밝혔으나, 연구소 측은 “투고한 논문이 심사 중이라 심사가 끝나는 2∼4주 후 받을 수 있다”고 답변했다.
◇“초전도체 유사 물질 가능성도 검증 대상” = 이처럼 엇갈리는 평가가 나오는 까닭은 상온 초전도체 논문의 공개 과정이 일반적인 절차에서 벗어나 있기 때문이다. 앞서 고려대와 민간 연구소 기업 퀀텀에너지연구소는 7월 22일 논문 사전공개 사이트인 아카이브(arXiv)에 ‘최초의 상온·상압 초전도체(The First Room-Temperature Ambient-Pressure Superconductor)’라는 제목의 논문 2편을 올렸다. 논문 저자는 고려대 출신의 회사 대표 이석배 박사, 김지훈 박사, 권영완 고려대 연구교수 등이다. 논문에 따르면 이들이 만들어낸 초전도 물질(LK-99)은 30도, 1기압 상태에서 전기저항이 0에 가깝고, 약하지만 자석을 밀어내는 반자성(反磁性) 현상도 띠고 있었다. 교신저자인 권 교수는 “우리가 개발한 물질은 초전도체의 특성인 전기저항이 상온에서도 0에 가깝고, 반자성 효과도 일부 보인다”며 “아카이브에 초전도 물질을 만드는 방법을 자세히 올려 검증받는 방식을 택했다”고 말했다.
마치 연금술처럼 서울 송파구 사설연구소 지하실에서 20여 년 동안 1000회가량 구리와 납을 구워내며 초전도 물질을 만들었다는 주장에 정통 과학계도 엇갈린 반응을 보이고 있다. 중국 연구팀은 고려대 연구진이 논문에 제시한 내용을 일부 재현하는 데 성공했다는 주장을 담은 실험 영상을 공개했다. 미국 로런스버클리국립연구소(LBNL)는 ‘이론적으로 가능하다’는 초기 시뮬레이션 결과를 1일 공개했다가 회의적인 입장으로 돌아섰다.
◇올해 안에 1차 결론 나올 전망 = 초전도체는 전기저항이 0이 되면서 전류가 손실 없이 흐르는 물질을 말한다. 또 외부 자기장과 반대 방향의 자기장을 형성해 반발력을 지니는 마이스너(Meisner) 효과도 보인다. 100년도 넘은 1911년 네덜란드 레이던대의 물리학자 카멜린 온네스가 수은의 전기저항을 측정하는 실험을 하다가 절대온도 4.2K(영하 268.8도)에서 전기저항이 갑자기 없어지는 현상을 발견, ‘초전도 현상’이라고 명명했다. 이 현상을 좀 더 높은 온도에서 구현하려고 여러 번의 시도가 있었지만 잘못된 데이터, 데이터 조작 등으로 인한 오류로 밝혀졌다. 상온 초전도체는 과학계에서 여러 차례 사기에 가까운 대소동을 빚었던 무한동력과 같은 꿈속의 목표이다. 초전도체는 전기저항이 0이고 자석(자기장)을 튕겨내는 특유의 성질을 갖지만 현재 영하 200도 이하의 극저온에서만 작동하기 때문에 자기부상열차, 자기공명영상(MRI) 등에 제한적으로 사용 중이다. 만약 냉각장치 없이 상온에서 초전도 현상을 일으키는 물질이 발견된다면 에너지 무손실 전력 송전이 가능해져 인류의 에너지 수요가 완전 해결되고, 발열 없는 반도체를 만들어 인공지능(AI) 등 양자 컴퓨터에도 대혁명이 일어나게 될 전망이다.
지금까지의 검토 결과 ‘100% 초전도체는 아니지만 근접한 성질을 갖는 새 물질’인 듯하다는 평가가 대세이다. 과학계와 업계에서 검증에 착수한 만큼 올해 안에 1차 결론이 나올 전망이다. 상온 초전도체의 실현은 꿈의 무한동력 같은 비현실적인 목표이지만 과연 노벨상급 대발견이 될지, 황우석 사태처럼 사기에 가까운 과대 포장이 될지는 아직 미지수로 남아 있다.
노성열 기자 nosr@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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