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은 인생 속 편지에 대한 ‘답장’… 그래서 쓸 수밖에 없었다”

박동미 기자 2023. 8. 9. 09: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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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중단편 모음집 ‘아주 희미한 빛으로도’ 펴낸 최은영
5년간 발표됐던 작품 7편 통해
작가로 산 10년 되돌아본 기회
작품 속 인물은 나의 결핍 투영
나를 알아보려고 한 것이 소설돼
원하는 만큼 못써 늘 괴롭지만
쓸 때가 ‘더 나은 나’로 이끌어
빨리 휘발되는 사회 기억하고파
지난 7일 서울 중구 문화일보에서 만난 최은영 작가가 신간을 들고 활짝 웃고 있다. 올해로 데뷔 10년을 맞은 최 작가는 5년 만의 소설집 ‘아주 희미한 빛으로도’를 펴내며 “지난 시간을 그립고 고마운 마음으로 놓아주려 한다”고 했다. 윤성호 기자

“원하는 만큼 쓰지 못해 늘 괴로워요. 쓰는 건 어렵고 벽을 마주하는 일이라 슬프기도 해요. 그렇지만 안 쓰는 것보다 쓰는 것이 저를 더 ‘나은 상태’가 되게 해줍니다. 결국, 쓸 수밖에 없어요.”

‘쇼코의 미소’ ‘내게 무해한 사람’ 등을 통해 시대와 호흡하는 작가로 자리매김한 소설가 최은영(39)은 자신의 ‘쓰기’를 이렇게 규정했다. 나아가고 싶고, 나아갈 수밖에 없는 길. 갈망이자 동시에 다짐이다. 2020년 발표해 호평받은 첫 장편 ‘밝은 밤’으로 그 ‘길’을 더 깊고 넓게 확장한 최 작가가 오랜만에 소설집으로 돌아왔다. 2020 젊은 작가상을 받은 표제작을 비롯해 최근 5년간 발표한 중단편 7편을 모은 ‘아주 희미한 빛으로도’(문학동네)다. 지난 7일 서울 중구 문화일보에서 만난 최 작가는 “작가로서 살아온 10년, 나의 30대를 돌아보게 됐다”면서 “지난 오 년의 시간과 이별하고자 한다”며 출간 소감을 밝혔다.

‘이별’이라 했으나, 쓸쓸하진 않다. 최 작가는 ‘고마움’에 방점을 찍었다. 그는 “당시 내가 필사적으로 지키고자 했던 마음 덕에 지금을 살아갈 수 있다”고 했다. 그 ‘마음’은 “나를 소중히 여기고, 존중해주는 것”. “나의 결핍을 안고서 너무 미워하지도, 가여워하지도 않고 그저 하루하루를 사는 것. 그런 나를 계속 지켜보는 중이에요.”

‘그런 나’는 무수한 ‘나’로 변주돼 작품 속 인물이 됐다. 은행 퇴사 후 학사 편입을 해 ‘공부하는 사람’이 되고 싶었던 ‘희원’(‘아주 희미한 빛으로도’), 가정폭력에 저항하지 않는 언니에게 분노하는 ‘나’(‘답신’), 동갑내기 인턴과 함께 출근하며 친해지는 3년 차 직장인 ‘지수’(‘일 년’), 교지 편집부에서 활동하는 또래들의 유려한 글이 부러운 ‘해진’(‘몫’) 등. 이들은 무언가 조금씩 부족한데, 무엇보다 아무리 애쓰고 분투해도 부서져 버리는 ‘관계’를 경험하게 된다는 공통점이 있다. ‘희원’과 시간강사는 신뢰하는 사이가 된 듯했으나 몇 마디 말에 서로 상처를 입히고 어긋난다. ‘나’는 언니를 도와주려고 했으나, 결과적으로 영영 언니와 조카를 볼 수 없게 된다. 또 ‘지수’와 인턴은 서로 다른 처지가 원인이 돼 어느 순간 균열을 느낀다. 다양한 관계의 시작과 상실, 소멸의 순간을 섬세하게 그려 온 최 작가는 이번에도 집요하게 이를 들여다본다. 그는 “의식하고 쓴 것은 아니었다”면서 “내가 느낀 슬픔이나 외로움, 연결되지 못한다는 기분을 고민하면서 ‘나’를 알아보려 한 시도가 자연스럽게 소설이 된 것 같다”고 했다. “규정하고 분류하고 혐오하고…. 요즘 그렇게 사람을 단순화하고 있지만, 사실은 모두 특별한 자신만의 역사 안에 있다는 걸 보여주고 싶었어요. 우리는 특수한 상처와 고통으로 만들어진 내면을 갖고 있으니까요.”

최 작가는 개인의 ‘사적’ 관계에 직간접적으로 개입하는 현실의 문제, 사회 구조적 모순을 끄집어내는 데에도 주저함이 없다. 이번 소설집에서 그것은 가정폭력, 여성 혐오, 비정규직 문제 등을 아우르며, 1990년대 남자 대학생들의 여대 축제 난입 소동 등 어느새 기억 저편으로 사라진 실제 사건들까지 소환한다. 누군가는 ‘용기’라 했으나, 작가로서는 ‘끈기’에 가깝다. “제발, 잊지 않았으면 해요. 한국 사회는 너무 빨리, 많은 것들이 휘발되고 있잖아요. 이렇게라도 기억해 달라고, 쓰고 있는 거예요.”

‘아픈’ 인물들이 등장하지만, 마냥 아프지만은 않다. 서툴고 화내고 슬퍼하는 인물들은, 어느새 작가를 닮아, 작가가 언젠가 “필사적으로 지키고자 했던” 그 마음을 품고 있다. 그 덕분에 ‘관계의 부서짐’ 이후를 살아갈 수 있다. 과거의 한 시절 덕에 조금은 이해할 수 있는 오늘을 살고, 그때의 ‘나’와 세상을 용서한다.

인물들이 세상과 화해하고, 자신을 다독이는 풍경을 보고 있자면, 소설이 말하는 삶이란 과거로부터 온 편지에 ‘답 없는’ 답장을 열심히 쓰는 행위처럼 느껴지는데, 최 작가는 그것이야말로 자신이 ‘쓰는 이유’라고 했다. 최은영 ‘소설 쓰기’의 동력이자 본질이라 했다.

“삶이 우리에게 계속 편지를 보내오잖아요. 이해할 수 없는 질문을 던지며. 쓴다는 건 그 답을 찾는 과정이에요. 그러니까, 제 소설은 제 인생의 편지에 대한 ‘답신’인 셈이죠. 그런 마음이 그저 어딘가에 닿을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박동미 기자 pdm@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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