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값 주택 실현한 3D 프린팅 주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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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D 프린팅 기술을 이용한 건축은 저렴한 비용으로 짧은 기간에 공사를 마무리할 수 있다는 게 가장 큰 장점이다.
따라서 도서 벽지의 서민이나 긴급하게 거처가 필요한 사람들에게 주택이나 학교 등을 보급하는 데 적합한 건축 기술로 꼽힌다. 최근 이런 공공적 용도에 걸맞은 3D 프린팅 건축 사례가 미국에 등장했다. 산불로 집을 잃어버린 이재민들에게 저렴한 3D 프린팅 주택을 공급하는 사업이다.
2020년 9월 오레곤주 남부 로그밸리에서는 이 지역 사상 최악의 산불이 발생했다. 삽시간에 번진 산불은 하루 만에 집 2350채를 잿더미로 만들어버리는 등 모두 2860가구의 이재민을 거리로 내몰았다.
그러나 코로나 팬데믹으로 인한 사회적 격리, 봉쇄 정책이 한창이던 때여서 구호 작업이 만만치 않았다. 다행히 사회단체들이 나서서 레스토랑 등과의 네트워크를 구축하고 식품과 생필품 공급에 나서면서 이른 시일 안에 최소한의 일상 회복을 이룰 수 있었다.
하지만 생활안정의 핵심인 집을 다시 마련하는 일은 쉽지 않았다. 불이 난 지 거의 3년이 다 된 지금도 여전히 수백가구가 트레일러나 호텔 같은 임시거처에 머물고 있다.
‘내 집’ 안도감과 재정적 안정 동시에
사상 최악의 산불 피해에 이런 상황에 3D 프린팅 주택이 새로운 대안으로 떠오른 것이다.
현재 산불이 났던 장소인 오레곤주 남서부의 메드포드 타운에 짓고 있는 3D 프린팅 주택 단지 ‘뉴 스피릿 빌리지’(New Spirit Village)가 이들이 새로 입주할 곳이다. 최근 공사가 시작된 이 단지에는 방 1~3개짜리 집 87채가 들어선다.
계약금은 오레곤주의 산불기금에서 지원해줬다. 집값은 모기지 대출을 받아 내야 한다. 하지만 3D 프린팅 기술을 적용한 덕분에 집값이 저렴해졌다. 방 1개짜리 주택은 18만5천달러(2억4천만원), 방 3개짜리는 23만5천달러(3억원)다. 메드포드의 평균 집값 46만3천달러(6억원)의 절반 이내다. 오레곤주 애쉬랜드에 기반을 둔 자선단체 탤든 파운데이션이 일부 자금을 지원한다.
단지 개발자인 건축가 배리 탤든은 “3D 프린팅 주택은 산불로 모든 것을 잃은 사람들이 삶의 새로운 출발을 할 수 있도록 하고 내 집이 있다는 안도감과 함께 재정적 안정을 누릴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번 사업은 혁신적이고 독특한 시범 프로젝트”라며 “전 세계의 다른 지역에서도 따라할 수 있는 사례가 될 수 있기를 바란다”고 덧붙였다.
그는 이번 프로젝트에 앞서 3D프린팅 건축 업체 아이콘이 텍사스 오스틴에 짓고 있는 3D프린팅 주택 단지 ‘하우스 제로’를 방문해 이 기술이 얼마나 효용성이 있는지 직접 확인했다.
3D 프린팅 주택 공급이 지속가능하려면
사실 3D 프린팅이 진짜 저렴한 주택 공급 대안인지에 대해선 그동안 의견이 분분했다. 미국 캘리포니아와 버지니아, 텍사스 등에서 3D 프린팅 주택이 공급된 사례가 있지만 시장가격보다 훨씬 낮은 값에 주택을 공급한 곳은 없었다.
예컨대 캘리포니아 코렐라 밸리의 팜스프링스 근처에 짓고 있는 15가구의 3D 프린팅 주택은 평균 64만9500달러(8억2600만원)로 오히려 고소득층을 겨냥하고 있다. 아이콘이 텍사스 오스틴 인근에 짓고 있는 100가구 규모의 3D프린팅 주택 단지 ‘울프 랜치’(Wolf Ranch)의 공급가격도 47만5990달러~55만9990달러(6억~7억1천만원)로 고급주택을 지향하고 있다.
미국 뉴욕의 롱아일랜드와 버지니아주 윌리엄스버그 등에서 시가보다 훨씬 싼 3D프린팅 주택이 공급된 적은 있지만 모두 1회성에 그쳤다. 3D 프린팅 주택이 지속가능하려면 저렴하게 집을 공급하면서도 건축업체가 수익을 낼 수 있어야 한다.
3D 프린팅 주택, 연습 단계서 실전 단계로
‘뉴 스피릿 빌리지’는 이런 점에서 하나의 모델 사례가 될 수 있다. 저렴한 주택가격과 건축업체의 안정적인 수익을 동시에 충족시키는 방식을 적용한 첫 개념증명 프로젝트다.
3D 프린팅 기술 외에도 단독주택이지만 다세대주택에 버금가는 고밀도 개발, 집은 소유하되 토지는 소유하지 않는 토지 신탁 모델을 채택한 것이 두마리 토끼 잡기를 가능하게 해줬다. 이 단지의 첫 주택 7가구는 올해 말 입주를 목표로 하고 있다. 나머지 주택 80가구는 2024년에 완공될 예정이다.
아이콘도 올해 초 9만9천달러(1억2600만원) 미만으로 지을 수 있는 3D 프린팅 주택 경연대회 ‘이니셔티브 99’를 출범시켰다. 대회 참가자는 20채 이상의 주택을 수용할 수 있는 단지로 확장할 수 있도록 설계해야 하며, 기후와 지속 가능성도 고려해야 한다.
3D 프린팅 기술이 내세우는 저렴한 주택 공급 시스템은 이제 연습 단계를 지나 실전 경기의 출발점에 선 것으로 보인다.
곽노필 선임기자 nopi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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