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가 작곡하고 시나리오 쓰는 시대… 과학·예술 융합이 우리 미래”[현안 인터뷰]

노성열 기자 2023. 8. 9. 09: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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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현안 인터뷰 - 이태식 과학기술단체총연합회장
과학자이자 배우·합창 단원 등
다양한 활동 ‘광폭 행보’ 실천
처음 열린 한인과학기술인대회
YGF·YPF 출신이 리더돼 참석
20년전 뿌린 씨앗 열매 맺은것
역삼공원 일대 지상·지하 개발
쉼터·교육 ‘과학기술전당’으로
이태식 한국과학기술단체총연합회 회장이 지난 7월 28일 서울 역삼동 과학기술회관 집무실에서 한 손에 로봇 모형을 들고 과학의 생활화를 강조하고 있다. 곽성호 기자

이태식 한국과학기술단체총연합회(과총) 신임 회장은 ‘로맨틱 사이언티스트’로 불린다. 토목공학과 건설경영학을 전공한 공학도이지만 연극, 합창 등 예술 분야까지 폭넓은 행보를 보이며 ‘광폭(廣幅) 과학’을 실천해왔기 때문이다.

이 회장은 지난 3월 3일 과총 제21대 회장으로 3년의 임기를 시작했다. 취임사와 기자간담회에서부터 강남 테크노밸리와 사이언스플라자 같은 내부공간 개조, 글로벌 한인과학자 네트워크 등 외부시스템 구축까지 톡톡 튀는 아이디어들이 제시됐다. 2014년 건설기술연구원장 때 달 월면토를 활용한 3D 프린터 우주기지를 제안하며 ‘우주 건설’이란 참신한 개념을 들고 나왔던 것과 마찬가지다. 당시 “집이나 열심히 짓지”라며 곱지 않은 시선을 받은 적도 있으나 현재 나사(미 항공우주국)가 한국의 우주건설 실력을 알아줄 만큼 시대를 앞선 선견지명이었음이 확인됐다. 7월에는 전 세계 한국 출신의 과학자들을 한자리에 모은 제1회 세계한인과학기술인대회를 무사히 치러내 자신의 공약을 실천했다. 취임 6개월을 한 달 앞두고 서울 역삼동 과학기술회관에서 이 회장을 만나 그간의 소회와 최근 과학기술계 현안에 대해 짧지만 밀도 있는 대화를 나눴다. 다음 일정을 위해 인터뷰 시간을 독촉할 만큼 여전히 그는 많은 행사를 정력적으로 소화하고 있었다.

―서울에서 개최한 ‘제1회 세계한인과학기술인대회’가 성황리에 끝났다. 이번 행사를 사실상 부활시킨 주역으로 소감은?

“내가 여기서 두 가지를 처음 공개한다. 첫째, 한국을 찾은 재외 과학기술인들이 현지의 기둥으로 단단하게 자리를 잡고 있었다. 미국 물리학회와 통계학회 회장을 한국계 미국 교포가 맡고 있다. 더구나 20년 전에 뿌린 씨앗이 열매를 맺어 돌아오는 수확의 감동도 있었다. 2000년대 초 과총에서 YGF(Young Generation Forum, 한민족청년과학도포럼), YPF(Young Professional Forum, 차세대과학기술리더포럼)를 창설했다. 이번에 보니 러시아 과총 회장이 YGF 1기 출신, 차기 재미 과기협 회장도 1기 출신이었다. 아르테미스 우주인으로 뽑혔던 하버드의대 출신의 조니 킴이라는 인재도 왔다. 이민 1세대의 자녀인 1.5세대들이 이미 지구촌 곳곳에서 과학기술계 리더가 됐더라. 둘째, 과총의 국제협력 방식을 한 건 한 건씩 프로젝트별로 하지 않고 큰 틀의 프로그램별로 교류의 외연(外延)을 넓힌 게 효과를 내고 있다. 지금까지 학술대회는 주로 자기 논문만 갖고 이야기했다. 그러나 이번 대회는 ‘우주와 미래기술 2030’이란 대주제를 걸고 공통적인 해법을 모색하며 발표와 토론을 했다. 그랬더니 예상 밖의 성과가 났다. 예를 들겠다. 프랑스의 생태학자 레지스 주비니 K-가든 협회 회장이 한·프 수교 140주년인 2026년에 파리 뤽상부르 공원에서 6개월간 열릴 K-가든 전시회를 메타버스 방식으로 운영하자고 제안해왔다. K-드라마 사극을 많이 봤다며 고조선 시대부터 한국 정원의 르네상스를 보여주기 위해 지금은 없는 신기술 DR(Dreaming Reality)을 공동 개발하자는 것이다. 그가 또 일본어로 된 한국 원예작물의 이름을 한국말로 바꾸자고 해 한국원예학회를 연결해줬다. 이런 식으로 앞으로 의료, 토목건축 분야의 일본식 용어도 한국어로 바꿀 계획이다.”

―평소 과학과 예술의 교류를 강조하는데, 이들은 서로 어떻게 통하는가.

“과학기술뿐 아니라 게임, 엔터테인먼트 같은 문화예술 지식재산 분야도 과총의 핵심사업 중 하나가 돼야 한다. 우리의 미래다. 최근 예술 분야에 인공지능(AI) 기술을 접목한 콘텐츠가 큰 반향을 일으키고 있다. AI 기술을 활용해 원하는 가수의 목소리로 음악을 작곡하고, AI가 쓴 연극이 무대에 오른다. 과학은 실생활의 모든 분야와 밀접한 연관이 있는데, 과학과 예술은 특히 밀접하다고 할 수 있다. 나 자신이 좋은 예가 될 것 같다. 나는 과학자이지만, 연극과 뮤지컬 무대에 서는 배우이자 제작자이며, 합창 단원으로도 활동 중이다. 흔히들 과학과 예술에 간극이 있다고 생각하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다. 1970년대 백남준의 비디오 아트에서 그랬듯, 우리가 흔히 사용하는 음악 인식 앱과 현재의 AI 예술까지 과학과 예술은 깊이 결합해 왔다. 올 초 취임식에서 밝혔던 것처럼, AI가 뛰어다니는 과총을 만들기 위해 앞으로도 과학과 예술의 융합을 적극 지원할 생각이다. 지난 6월 대구에서 열린 제4회 세계문화산업포럼에 참석해 최재천 이화여대 석좌교수와 함께 기조연설을 했다. 침팬지 연구로 유명한 제인 구달 박사와 이수만 SM 설립자도 만났다. 세계문화산업포럼 의장을 맡고 있는 이장우 경북대 교수를 과총 부회장으로 모셔온 것도 같은 맥락이다.”

세계문화산업포럼은 문화산업과 첨단기술에 연관된 프로듀서, 전문가, 기업인들이 모여 문화 발전과 세계 번영을 논의하고자 2019년 출범한 조직이다. 이 회장이 보기에 과학과 예술은 사실상 하나다. 영어 아트(art)는 기예(技藝)란 뜻과 함께 연구, 공부, 학문의 의미도 지닌다. 서구 대학에서 인문학과를 리버럴 아트(liberal arts)로 표현하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고대 그리스에서 자유인의 교양으로 분류한 7개 학문에는 음악, 수사학(修辭學)과 함께 기하학, 천문학도 있었다.

―강남 테크노밸리와 강남 사이언스플라자(과학기술전당) 출범 구상에 대해 설명해달라.

“테헤란로는 1990년대에 정보통신기술(ICT) 산업 발전과 함께 스타트업, 벤처캐피털 등이 자리를 잡으며 창업의 요충지로 거듭났다. 이곳에서 한글과컴퓨터, 네이버, 다음, 안철수연구소, 넥슨 등이 탄생했다. 하지만 치솟는 임대료와 판교테크노밸리 입주로 기업이 떠나면서 공실이 늘었고 위기를 겪었다. 강남역부터 삼성역까지 4.1㎞ 거리가 테헤란밸리의 대동맥이다. 이 지역의 골목만 141개에 달하고 산업통상자원부 등이 지원하는 벤처기업도 4000여 개가 있다. 벤처캐피털 100곳 중 60여 곳이 몰려 있고 과총과 발명진흥회, 공학한림원, 코엑스까지 과학기술단체도 모두 모여 있다. 공유오피스 등도 자리를 잡아 작은 스타트업이 저렴하게 공간을 임대할 수 있게 됐다. 과총이 적극적으로 나서 우리나라 벤처 클러스터의 원조인 테헤란밸리의 정체성을 되찾고, 이들을 융합해 얼라이언스(연합)를 만들려고 한다. 특히 판교밸리와 홍은밸리, 넓게는 대전과학특구단지와도 연결이 가능할 것으로 생각한다. 현재 한국과학기술회관에 70여 개 학회, 60여 개 공공단체, 기업 30여 개 등 과학기술 기관과 서울경제진흥원 산하의 스케일업 센터가 입주해 작은 클러스터 역할을 하고 있다. 테헤란밸리란 대한민국 대표 과학기술 브랜드의 이름 아래 과학기술 혁신 클러스터인 과학기술전당을 조성하고자 한다. 과학기술전당은 과학기술회관 및 역삼공원 일대의 지상·지하를 개발하는 프로젝트로서, 연 면적 약 10만㎡ 공간에 산·학·연·정 기관을 입주시키고 쉼터·복지마트 등 과학기술인 복지시스템, 신기술 교육훈련, 비대면 온라인 업무시설 등을 구축해 과학기술인들이 찾아오는 장으로 만드는 방향으로 구상하고 있다.”

―한인과학기술인대회 공동선언문에서 여성의 참여를 강조한 성 평등 조항이 인상적이었다. 구체적으로 향후 어떤 로드맵이 있는가.

“현대사회에서 감수성, 소통, 공감능력을 강점으로 가지고 있는 여성 과학기술인은 국가 경쟁력 강화의 주역이다. 하지만 여전히 여성 과학기술인들은 일·가정의 양립과 경력 단절 등으로 인해 많은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이러한 현실을 반영하듯 여학생의 이공계 진학 비율은 아직 21%에 머무르고 있다. 10년 전과 별 차이가 없다. 이를 위해서는 과학기술 공동체뿐만 아니라 사회 전반에 걸친 인식 전환, 합의, 배려, 제도적 장치 등이 마련돼야 할 것이다. 과총도 그의 일환으로 세계한인과학기술인대회에서 ‘세계여성과학기술인 포럼’을 개최하고, 여러 의견을 청취했다. 특별히 김승호 인사혁신처장이 해당 포럼을 방문해 국내외 여성 과학기술인을 격려하고 여성 과학기술인의 권익 신장과 공평한 기회를 위해 노력해야 한다는 데 인식을 같이했다. 일시적인 이벤트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앞으로 과총도 지속적으로 관심을 갖고 여성의 참여 확대를 위해 노력할 것이다.”

“학술대회·학술지 지원금 76억 삭감?… R&D 예산 되레 더 늘려야”

■ 李회장이 꼬집은 예산 문제

“민간지원금 줄이면서 불똥 튀어
국제 민간 기술교류도 확대해야”

최근 정부가 국가 연구·개발(R&D) 예산을 삭감하겠다고 나서 과학기술인들이 반발하고 있다. 특히 정치권 일각에서는 예산 나눠 먹기·돌려쓰기라며 이를 ‘연구비 카르텔’이라고 맹비난해 국민에게 불신을 심었다. 이에 대해 이태식 한국과학기술단체총연합회(과총) 회장은 단호하게 “잘못된 프레임”이라고 말했다.

이 회장은 “역대 대통령 가운데 국가 R&D 예산은 줄여본 전례가 없다. 오히려 10% 증액을 요구한다”고 강조하며 “예산을 적재적소에 쓰고 세계 수준의 국제 공동연구에 확대 배정하는 것은 기술패권 시대의 대한민국으로서 당연한 일이다. 하지만 ‘카르텔’이란 용어는 잘못된 프레임 설정”이라고 말했다. 그는 “예를 들어 국내 양자 과학자가 모두 몇 명이나 되겠나. 소수의 전문가끼리 협력할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이 회장은 “이번에 국고보조금 지원을 이유로 과총의 지원금 76억 원을 삭감했다. 398개 과학기술 학회에서 발행하던 107종의 SCI 학술지 예산이다. 74만 과총 회원의 큰 반발이 우려된다”며 “과총은 시민단체나 이익단체가 아니다. 과학기술 진흥과 학술 활동을 지원할 목적으로 설립된 비영리법인이자 공익법인”이라고 역설했다. 그는 탈원전 운동 등 전 정권의 이념편향 시민단체에 가던 민간보조사업비를 줄이는 과정에서 엉뚱하게 과총의 과학 예산으로 불똥이 튄 것이라며 서둘러 바로 잡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과총 지원금 중 학술활동 지원사업 예산은 과학기술 학술단체가 발행하는 학술지와 학술대회를 지원하는 예산으로, 1972년부터 정부를 대신해 수행하는 위탁사업이라는 설명이다.

그는 돈 쓰는 방법을 달리하면 오히려 예산을 아낄 수 있다고 제안했다. 이 회장은 “국가 R&D 예산에 과학기술 분야의 국제협력 예산도 꼭 필요하다”며 “하지만 그 방식을 기술 이전에서 기술 교류로 바꾸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과학기술 국제협력을 정부 간에만 하는 건 아니다. 학회를 통한 민간 기술 교류가 같이 가야 한다”며 “학회 안에는 산·학·연이 다 있다. 저쪽 산·학·연과 우리 산·학·연이 교류하면 자연스레 기술 이전이 된다. 윈-윈의 부가가치가 생긴다”고 말했다. 예를 들어, 우리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 모델을 베트남에 심어 V-KIST를 세워줬던 것처럼 원하는 수요에 공급을 맞춰주는 공적개발원조(ODA) 방식으로 바꾸어야 한다는 것이다. 베트남은 농수산 국가인데 우리는 하이테크인 바이오 이전을 생각하면 서로 박자가 안 맞는다는 이야기다.

△1953년 출생 △서울대 토목공학과 졸업 △미국 위스콘신매디슨대 건설경영학 석·박사 △대한토목학회장 △한국철도학회장 △한국건설기술연구원 원장 △극단 실극 대표 △한양대 명예교수 △한국과학기술단체총연합회 회장

노성열 기자 nosr@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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