맷돌 돌수록 쌓이는 추억… 가족과 만드는 두부, 맛도 재미도 최고 [농촌愛올래]
(9) 강원 ‘쉼투고강릉’ 코스
연곡면의 소금강마을에코센터
콩 갈아 두부 만드는 체험 인기
직접 복숭아 따고 카약도 타는
복사꽃마을 프로그램도 진행
치유의 숲 걷고, 솔향차 음미
왕산한옥마을선 ‘힐링타임’ 도
“두부를 만들기 위해 맷돌을 돌릴 때는 ‘콩반물반’을 꼭 기억하세요.”
강원 강릉시에는 관동팔경 중 하나인 경포대를 비롯해 경포호, 오죽헌, 정동진 등 수려한 자연경관을 자랑하는 관광명소가 많다. 최근 들어서는 캠핑족 인구가 급격히 늘면서 인천에서 평창군과 오대산 자락을 지나 강릉을 잇는 6번 국도의 장천마을 등 소금강 일원이 강원의 ‘핫플레이스’로 급부상하고 있다. 6번 국도를 타고 드라이브하면 해발 900m에 달하는 오대산국립공원 일대를 지나는데 굽이굽이 고개를 넘어가다 보면 구름 위를 지나는 기분이 든다. 진고개를 빠져나와 마주하는 장천마을에서는 소금강 자락과 계곡에서 물놀이를 즐기며 불볕더위와 고단한 일상에서 벗어나 자연의 정취를 만끽할 수 있다.
전국 대부분 지방에 폭염 경보가 내려진 지난 6일 오후 강릉시 연곡면의 소금강마을에코센터에서는 서울·충북 등 전국 각지에서 온 가족 단위 관광객 22명이 마을 관계자들의 안내에 따라 강릉의 명물인 두부를 만드느라 정신이 없었다. 이날 관광객들은 물에 12시간가량 불린 대두 300g을 국자로 뜬 다음, 대야 위에 고정한 맷돌 구멍에 넣으면서 손잡이인 ‘맷손’을 잡고 돌리며 대두를 곱게 갈았다. 맷손을 시계 반대방향으로 돌릴 때마다 맷돌 틈새로 콩물이 새 나오면서 대야에 가득 담겼다. 이 콩물을 면포에 담아 쭉 짜면 콩물과 콩 찌꺼기(비지)가 분리된다. 한층 더 고와진 콩물을 솥에 넣고 간수를 부어가며 수십 분간 주걱으로 서서히 젓다 보면 어느새 몽글몽글한 두부가 탄생하게 된다. 이 두부를 퍼진 상태로 두면 ‘순두부’가 되고, 사각형 모양의 두부 틀에 담아 덮개로 꾹 누르면 ‘모두부’가 만들어진다.
강릉의 명물인 두부는 조선 중기 여류시인인 허난설헌과 ‘홍길동전’을 집필한 허균의 부친인 허엽이 삼척 부사를 지낼 때 강릉 앞바다의 바닷물을 간수로 처음 만들었다고 전해진다. 허엽의 호인 ‘초당’을 따서 강릉 두부에는 ‘초당 두부’라는 이름이 붙었다. 소금강마을에코센터에서는 지하 300m에서 끌어올린 바닷물을 두부 간수로 쓰는 덕분에 이곳에서 만드는 두부는 시중에 판매되는 두부보다 소금 농도가 옅고 식감이 부드럽다.
두부 체험은 어린아이가 있는 가족 단위 관광객들에게 주목을 받고 있다. 콩을 싫어하는 아이들이 두부를 만들고 직접 먹으면서 편식을 교정하는 등 올바른 식사문화를 경험할 수 있기 때문이다. 충북 청주시 서원구의 창신초 5학년 조연흠(12) 군은 “가만히 앉아서 맷돌을 돌리기만 하면 지루할 줄 알았는데 콩이 갈릴 때마다 맷돌을 돌리는 재미가 있고, 무엇보다 두부가 정말 맛있다”고 말했다. 아버지 조재현(45) 씨와 어머니 이현경(40) 씨는 “인스타그램을 통해 우연히 알고 강릉여행을 오게 됐다”면서 “저렴한 가격으로 어린 시절 돌려봤던 맷돌을 아들도 직접 돌려보는 색다른 경험할 수 있어 뿌듯하다”고 입을 모았다. 경기 위례신도시에서 온 김가혜(11)·은설(9) 자매도 난생처음 돌려보는 맷돌을 무척 신기해했다. 자매의 어머니 박세종(41) 씨는 “아이들이 TV나 책에서 봤던 맷돌을 실제로 보고 직접 돌려볼 수 있어 유익했다”고 말했다.
연흠 군과 가혜·은설 자매 일가족을 포함한 관광객들이 이날 즐겼던 두부 체험은 ‘강릉, 계곡 맛보기-물놀이하고 두부 만들고 복숭아 따기’로 1박 2일간 진행된 ‘쉼투고강릉’의 여행 코스였다. 쉼투고강릉은 복사꽃마을 등이 속한 강릉시농어촌체험휴양마을협의회에서 농촌관광 활성화를 위해 론칭한 여행사로, ‘강릉에 가면 몸과 마음의 쉼을 얻는다’는 콘셉트로 농촌관광 및 여행 상품을 기획 및 개발하고 있다. 쉼투고강릉을 통하면 관광객들은 저렴한 가격으로 강릉의 ‘A to Z’를 누릴 수 있다. 농림축산식품부가 한국농어촌공사 농어촌자원개발원과 함께 농촌 지역 경제에 활력을 불어넣기 위해 매년 추진하는 ‘2023년 농촌애(愛)올래-지역단위 농촌관광 사업’(농촌애올래)에 따라 지원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2017년 시작한 농촌애올래 사업은 올해도 11개 지방자치단체를 선정했다. 올해 처음 뽑힌 강릉시는 관광객들이 마음 편히 쉴 수 있는 여행프로그램을 속속 내놓고 있다.
이날 두부 체험을 마친 관광객들은 ‘베이스캠프’인 장천마을로 이동해 짐을 풀었다. 장천마을에는 10∼13평 남짓한 독채 펜션이 마련돼 있어 가족 관광객들의 만족도가 매우 높다. 이후 관광객들은 계곡에서 물놀이를 즐기거나 일대 맛집을 찾아 저녁 식사를 하고 휴식을 취하며 첫날 여정을 마무리했다. 다음 날 관광객들은 복사꽃마을로 발걸음을 옮겨 제철 과일인 복숭아를 직접 따며 강릉의 매력에 흠뻑 빠졌다.
오는 20∼21일 복사꽃마을에서는 복숭아를 직접 따면서 복숭아 전병을 만들고 카약을 타는 1박 2일간의 프로그램이 진행된다. 이달 말 예정된 ‘숨쉬러 숲으로 왕산한옥마을’과 ‘숨쉬러 즐기러 6번 국도에서 만나요’ 프로그램도 관광객들을 기다리고 있다. 왕산한옥마을에서는 치유의 숲을 걷고 솔향차를 마시는 등의 체험이 준비돼 있다. 이금옥 강릉시농어촌체험휴양마을협의회 사무국장은 “바쁜 일상에 지친 분들이 봄·여름·가을·겨울 4계절 내내 다채로운 매력이 가득한 강릉에서 푹 쉬셨으면 한다”고 밝혔다.
“트레킹 · 요가 · 플로깅 접목… 농촌으로서의 강릉 매력 알리고파”
■ 강다경 ‘쉼투고강릉’ 매니저
“경포대와 송정해변 등 동해안의 관광명소 외에도 농촌 지역으로서 강릉의 매력을 널리 알리고 싶습니다.”
강다경(40·사진) 쉼투고강릉 매니저는 강릉시농어촌체험휴양마을협의회에서 농촌관광 활성화를 위해 영입한 인재다. 강 매니저는 지난 5월 부임해 ‘2023년 농촌애(愛)올래-지역단위 농촌관광 사업’에 올해 처음 선정된 강원 강릉시의 관광콘텐츠를 발굴 및 기획하고 관광객을 모집하는 등 쉼투고강릉의 실무를 혼자서 도맡아 하고 있다. 강 매니저는 지난 6일 쉼투고강릉을 통해 두부 체험에 나섰던 관광객들을 장천마을 숙소로 안내한 뒤 강릉의 매력을 설명했다. 강 매니저는 “강릉에서는 대관령으로부터 바다 사이로 뻗어 나가는 구름이 거대하게 펼쳐지곤 하는데 7번 국도나 남대천에서 자주 거대한 구름을 볼 수 있다”며 “지대가 높은 대관령의 영향으로 강릉 인구는 시내인 중부에 밀집돼 있고, 경포대를 비롯해 선교장·오죽헌·허균허난설헌생가터 등 관명들도 모두 경포호를 중심으로 발달했다”고 강조했다.
강 매니저는 강릉 중심부에 쏠린 관심을 농촌 지역으로 돌리고 있다. 수려하고 빼어난 자연경관이 마치 금강산의 일부를 옮겨 놓은 듯하다는 ‘소금강’뿐 아니라 오대산 자락을 따라 마련된 강천마을, 주문진읍에 있는 소돌어촌체험마을에서 즐기는 카약 등 강릉의 동서남북을 전부 누릴 수 있는 여행관광프로그램을 마련하는 데 주력하고 있다. 강 매니저는 “최근에서야 KTX와 영동·양양고속도로 등으로 강릉까지의 교통이 원활해졌지만, 그전까지는 교통이 불편해 농촌 지역은 상대적으로 덜 알려졌었다”면서 “농촌이라는 지역적 특성과 함께 트레킹·요가·플로깅 등을 배합해 소외된 농촌 지역에 활기를 불어넣고 싶다”고 밝혔다.
글쓰기와 여행이 좋아 강릉에 정착한 강 매니저는 인스타그램 등 각종 SNS를 통해 쉼투고강릉이 야심 차게 준비한 관광상품을 홍보하고 있다. 아울러 관광객들의 편의를 높이기 위해 네이버 스마트스토어 등을 통해 예약을 받는 등 여러 온라인 플랫폼을 적재적소에 활용하고 있다. 덕분에 쉼투고강릉을 통해 강릉의 매력을 맛본 관광객들의 찬사가 온라인 여행커뮤니티 등에서 쏟아지고 있다. 관광객들의 호응에 힘입어 다양한 프로그램들을 상시적으로 운영하며 더 많은 관광객을 끌어모으겠다는 계획이다.
강릉 = 전세원 기자 jsw@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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