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송 장악 첨병’ 방통위, 제도 개혁 없인 존재이유도 없다

안영춘 2023. 8. 9. 08: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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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열 정부]허울뿐인 독립성·합의 구조 탓, 설립 목적과 정반대 역할
‘공영방송 정치적 후견주의’ 끊어낼 방통위법 개정 나서야
김효재 방송통신위원장 직무대행이 지난 6월14일 오전 방송법 시행령 개정안 등을 논의하기 위한 방통위 전체회의를 주재하기 위해 자리에 앉고 있다. 김혜윤 기자 unique@hani.co.kr

윤석열 정부가 방송통신위원회(방통위)를 앞세워 한국방송(KBS)과 문화방송(MBC) 장악을 위한 전 단계로 의심받는 초강수를 잇따라 두고 있다. 방통위는 지난달 한국방송 수신료 분리 징수 시행령을 일사천리로 통과시킨 데 이어, 이달 들어 해임 사유에 대한 조사도 제대로 이뤄지지 않은 남영진 한국방송 이사장과 권태선 방송문화진흥회(방문진) 이사장 등의 해임 절차에도 착수했다. 위법은 물론 위헌이라는 지적까지 나오는 것과 별개로, 방통위의 허울뿐인 독립성과 합의 구조를 근본적으로 손봐야 한다는 목소리 또한 어느 때보다 커지고 있다.

2008년 2월 시행된 방송통신위원회의 설치 및 운영에 관한 법률(방통위법)은 제1조(목적)에서 “(…) 방송의 자유와 공공성 및 공익성을 높이고 방송통신위원회의 독립적 운영을 보장함으로써”라며 방통위의 독립적 운영을 강조하고 있다. 제3조(위원회의 설치) 1항은 ‘대통령 소속’으로 두도록 했고, 제5조(임명 등) 2항에서는 위원 5명 가운데 위원장과 위원 1명을 대통령이 지명하도록 했다. 또, 나머지 3명은 국회 추천을 받아 대통령이 임명하는데, 이 가운데 1명은 여당 몫으로 할당하고 있다. 이어 제13조(회의) 2항은 각종 의결을 “재적위원 과반수의 찬성”으로 할 수 있도록 했다.

이들 조항은 방통위를 ‘대통령 직속의 여야 합의제 행정기구’라는 특이한 위상으로 평가하는 근거다. 얼핏 최고권력자로부터 일정한 독립성을 확보한 채 여-야 사이에 견제와 균형을 이루도록 제도화한 것처럼 비치기도 한다. 그러나 겉보기와 달리 ‘대통령 직속’만 남고, ‘여야 합의제’는 형해화된 채 다수결에 의한 ‘독임제’나 다름없게 변질할 소지가 처음부터 다분했다. 이승선 충남대 언론정보학과 교수는 “방통위 구성과 운영을 오로지 선한 의지에 맡길 수밖에 없도록 된 구조”라며 “실상은 대통령 의중대로 인적 구성과 의결을 하고 이를 토대로 공영방송을 장악할 수 있는 길을 터주고 있다”고 봤다.

실제로 방통위법 1조의 취지가 무색하게, 방통위는 출범과 동시에 정권의 공영방송 장악을 위한 ‘교두보’로 악용됐다. 2008년 2월 취임한 이명박 대통령은 방통위 초대 위원장으로 자신의 ‘정치적 멘토’이자 ‘6인회 멤버’인 최시중씨의 임명을 강행했다. 최씨는 그해 5월 국무회의에 참석해 ‘쇠고기 관련 정부의 홍보 기능 강화’ 방침을 보고하는가 하면, 김금수 한국방송 이사장을 만나 ‘이명박 정부 지지율 하락의 원인 중 하나가 조기 사퇴 요구를 거부하고 있는 정연주 한국방송 사장 때문’이라며 사퇴 압력을 넣었다. 그 뒤 한국방송 이사회 이사 임명 제청권을 ‘지렛대’ 삼아 야권 이사를 해임하고 이사회 여야 구성을 바꾼 뒤 대표이사를 갈아치우는 방법으로 정 사장을 해임했다.

공영방송을 장악하기 위한 이런 행태는 방통위 출범 이후 지난 15년 동안 줄곧 이어져 왔다는 게 언론학자와 언론단체들의 평가다.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문재인 정부도 예외는 아니었다. 이명박·박근혜 정부의 공영방송 장악 적폐를 청산하겠다면서 이전 정부와 별반 다르지 않은 절차와 방법을 따른 것이다. 조항제 부산대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과 교수는 “방통위와 이사회를 통해 공영방송의 경영진부터 임직원에게까지 ‘정치적 후견주의’가 지속해서 관철돼왔다”고 짚었다.

김효재 방송통신위원장 직무대행(가운데)이 지난달 5일 오전 정부과천청사 방송통신위원회에서 전체회의를 주재하고 있다. 이날 회의는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5월 대통령 몫으로 임명한 이상인 상임위원(왼쪽)과 더불어민주당 추천인 김현 상임위원(오른쪽) 3명만 참석한 ‘반쪽짜리’ 회의였다. 김혜윤 기자 unique@hani.co.kr

그 과정이 단순반복만은 아니었다. 윤석열 정부는 방통위에 대해 역대 정부에서 볼 수 없었던 온갖 수단을 동원하고 있다. 티브이(TV)조선 재승인 심사 과정에 관여한 혐의로 기소된 한상혁 위원장을 면직하고, 대통령 몫의 상임위원은 임명하면서도 더불어민주당이 추천한 상임위원에 대한 임명 재가마저 중단해, 여야 2대 1 구도의 반쪽짜리 위원회로 만들었다. 이어, 이명박 정부 공영방송 장악 배후로 지목되는 이동관 전 청와대 홍보수석을 방통위원장으로 지명하기에 이르렀다.

전국언론노동조합은 지난달 25일 야권 추천 방통위원 사퇴와 오는 28일 임기가 만료되는 두 방통위원의 후임 추천 절차에 대한 야당의 무기한 거부를 요구했다. 윤창현 언론노조 위원장은 “야권 추천 위원이 없는 2인 체제로는 정원 과반에 못 미치고, 여기서 이뤄지는 의결 절차는 합의제 기구의 취지와 위상을 위배하는 것이기 때문에 법적으로 무효가 될 수밖에 없다”며 “야권이 지금 사태의 심각성을 직시한다면 방통위의 폭주에 들러리를 서지 말아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방통위를 명실상부하게 독립기구화해야 공영방송 지배구조를 둘러싼 난맥상을 해소할 수 있다는 지적은 오래전부터 나왔다. 낯선 길도 아니다. 2000년 통합방송법 제정에 따라 당시 방송위원회가 확보한 위상은 방송 규제·감독기구가 독립적인 합의제 기구로 운영될 수 있는 가능성을 보여줬다는 평가를 받는다. 그러나 현재 국회에 계류 중인 방통위법 개정안들은 하나같이 땜질 수준을 넘어서지 못하고 있다. 이승선 교수는 “박근혜 정부 말에 여야가 상당한 수준의 의견 접근을 보기도 했지만, 그 뒤 흐지부지되고 말았다”며 안타까워했다. 방통위를 정상화할 수 있는 법안은 언제든 꺼낼 수 있는 서랍 속에 있는 셈이다.

안영춘 기자 jon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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