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자가 만든 인플레? 기업이윤 주도 ‘탐욕 인플레’!

이강국 2023. 8. 9. 07: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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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수 경제학자와 중앙은행들은 인플레이션이 노동자들 탓이라며, 경기침체와 실업률 상승으로 이어지는 긴축정책을 강행해왔다. 정말 노동자들 때문에 물가가 급등한 걸까?

2021년 말 영국 〈가디언〉에 인플레이션에 관한 이단적 주장이 실렸다. 미국 매사추세츠 주립대학 이사벨라 웨버 교수의 칼럼이었다. 그는 팬데믹 이후 인플레이션 급등에 대응하려면, 미국이 2차 대전 당시 실시했던 것과 같은 ‘전략적 가격통제’가 필요하다고 썼다. 아니면, 기업들이 가격인상으로 이윤 급등을 계속 누리도록 놔두든지.

미국 매사추세츠 주립대학 이사벨라 웨버 교수. ⓒWikipedia

이 글이 발표된 후 많은 경제학자들이 역사가 보여주듯 가격통제는 효과가 없을 것이라고 웨버 교수를 비판했다. 진보적 거시경제학자 크루그먼까지 “나는 자유시장 광신자는 아니지만, 그건 매우 멍청한 아이디어”라는 트윗을 날렸다.

그러나 1년 반 만에 세상이 크게 바뀌었다. 인플레이션의 책임을 기업의 가격인상과 이윤 증가에 돌리는 목소리가 점점 커지고 있다. 특히 금리인상으로 총수요를 억제하는 전통적 정책에 대한 비판과 우려가 높아지면서 ‘직접적 정부 개입’ 같은 대안 정책 요구가 나오고 있다. 유럽 국가들은 에너지 가격 급등에 대해 기업에 횡재세를 물리고 가격상한제를 실시했다. 식료품에 대해서도 가격통제를 도입하고 있다. 과연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것일까.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경제회복과 함께 미국을 필두로 전 세계에서 물가상승률이 크게 높아졌다. 미국의 ‘지난해 같은 달 대비’ 소비자물가상승률은 2021년 3월 2.6%에서 계속 높아져 2022년 6월 9.1%로 천장을 친 뒤 올해 1월 6.4%, 6월엔 3%까지 내려왔다. 대다수 경제학자들과 중앙은행들은 정부의 과도한 재정확장을 배경으로 한 거시경제의 총수요 확대를 그 원인으로 생각한다. 하버드대학의 래리 서머스 교수 등은 트럼프-바이든 정부의 팬데믹에 대응한 재정지출 규모가 너무 커서 경기과열과 인플레이션을 자극할 것이라고 예상한 바 있다. 그러나 팬데믹 이전 추세와 비교할 때 총수요 증가가 그리 과도하지는 않았다. 총수요 증가만으로 인플레이션의 급등을 설명하기는 어렵다는 이야기다.

역시 중요한 것은 팬데믹과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인한 공급망 마비와 충격이었다. 반도체나 천연가스, 곡물 등의 공급이 억제된 상황에서 (정부의 소득 지원으로 인한) 총수요가 확대되면서 물가를 크게 자극했다. 마침 퇴직자 증가로 노동 공급 역시 억제되고 있었는데, 기업들은 이직을 우려하여 노동자를 확보해놓으려 했다. 이로 인해 노동시장에선 구인율이 높고 실업률이 낮은 ‘뜨거운 상태’가 지속되었다.

팬데믹 이후 인플레이션에 관해 여러 연구들이 나왔다. 전 연준 의장 벤 버냉키와 저명한 거시경제학자 올리비에 블랑샤르가 지난 5월 브루킹스 연구소에서 발표한 논문이 주목할 만하다. 그들은 인플레이션의 원인이 노동시장 과열과 임금상승이 아니라 주로 상품가격에 대한 충격이었다고 보고했다. 그들에 따르면 2021년 인플레이션의 대부분은 공급 측 제약으로 인한 에너지·식료품 가격상승, 수요구조 변화, 부문 간 소비 불균형 등에 기인했다. 물론 이들은 과도한 총수요를 자극했던 재정확장도 인플레이션의 중요한 배경이었으며, 앞으로도 여전히 뜨거운 노동시장이 임금상승을 자극할 수도 있다고 우려한다.

미국 워싱턴 DC의 한 코스트코 매장에서 소비자들이 상품을 고르고 있다.ⓒEPA

사실 인플레이션과 관련하여 중앙은행들이 크게 우려했던 바는 물가상승이 임금상승을 촉발하고 다시 물가상승으로 이어지는 임금-물가 악순환의 가능성이었다. 그러나 이미 국제통화기금이나 국제결제은행 등의 여러 연구들은 최근 인플레이션에서 임금-물가 악순환이 나타나지 않았다고 보고한다.

실제로 미국 등 여러 선진국에서 명목임금이 높아진 것은 사실이지만 물가상승률이 더 높아서 실질임금은 2021년 이후 오히려 하락했다. 1980년대 이후 노동조합 조직률이 하락하면서 노동자들의 임금 협상력이 약화되었다는 것도 중요한 사실이다. 미국에서 1970년대 후반에는 물가 등 생활비 상승을 자동적으로 임금협상에 반영하는 비중이 약 60%에 달했다. 이 수치는 급속히 떨어져 1990년대에는 20%로 내려왔다. 이미 여러 연구들은 실업률이 하락해도 물가가 오르지 않는 ‘필립스 곡선의 죽음’을 노동자들의 힘이 약화된 현실에서 찾는다(편집자 주: 필립스 곡선에 따르면, 실업률 하락으로 임금이 오르면 수요 증가로 인해 물가가 상승해야 한다). 임금-물가 악순환이 사라진 것도 마찬가지 현상이다.

2021년 이후 실질임금은 오히려 하락

이런 상황들을 감안하면, 금리를 올리고 노동시장을 식혀서 인플레를 억제하겠다는 중앙은행들의 긴축적 통화정책엔 한계가 많았다. 일부 경제학자들은 인플레이션의 주된 원인이 공급 측 문제였기 때문에 금리인상으로 수요를 억제하는 정책은 효과적이지 않을 것이라고 비판해왔다. 또한 긴축적 통화정책은 경기침체와 실업률 상승으로 이어져 노동자들의 삶에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 인플레이션은 노동자들의 책임이 아닌데 긴축정책으로 인한 부담은 노동자가 짊어지는 꼴이다. 물론 이는 보수파와 자본의 입장에서는 환영할 만한 일이다. 한국에서는 경제부총리가 나서서 ‘인플레를 자극하지 않기 위해 노동자들이 임금인상을 자제해야 한다’고 말하지 않았던가.

이제 인플레이션의 책임이 기업 측에 있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지난해 4월 미국의 진보 성향 경제연구소인 EPI(Economic Policy Institute)는 2020년 2분기에서 2021년 4분기까지 물가상승 요인을 분해하는 보고서를 냈다. 이에 따르면, 해당 기간 물가상승의 54%는 기업의 이윤 증가로 설명된다. 단위노동비용 증가로 설명 가능한 물가상승 요인은 겨우 8%였다. 지난 40년 동안 평균치는 기업이윤 11%, 노동비용 62%. 2021년 말까지 인플레이션 급등은 기업이윤의 증가와 관련성이 컸다고 할 수 있다.

이후 여러 언론은 팬데믹 직후 기업들의 이윤이 급증했다는 보도를 쏟아냈다. 〈가디언〉에 따르면, 지난해 초 미국 100대 기업의 분기 이윤은 2년 전과 비교할 때 중위값 기준으로 49% 증가했다. 건설장비를 생산하는 캐터필라는 958%, 슈퍼마켓 체인 앨버트슨 671%, 아마존 333%, 셰브론 144% 등이다. 물가인상과 실질임금 하락으로 시민들의 생활은 힘들어졌는데 기업이윤은 엄청나게 늘었다.

앞서 언급한 칼럼의 주인공 웨버 교수는 올해 초 ‘판매자 인플레이션’에 관한 논문을 발표했다. 그는 이 논문에서 팬데믹 이후의 인플레이션은 ‘거시경제와 총수요’가 아니라 ‘기업의 가격 설정’과 관련된 미시적 문제라고 주장한다. 그에 따르면, 팬데믹 이후 공급망 충격을 배경으로 먼저 에너지와 화학 등 '업스트림' 산업(원자재나 중간재 생산)에서 가격 급등으로 이 부문 기업들의 이윤이 크게 증가했다. 이후 '다운스트림' 산업(최종 소비재 생산)의 기업들이 이윤마진(이윤/매출액)을 지키거나 높이기 위해 상품가격을 인상했다. 교과서와 달리 현실에서 상품의 가격은 주로 시장을 과점으로 지배하는 기업들에 의해 설정된다. 기업들은 암묵적으로 함께 상품의 가격을 올리면서 인플레이션을 지속적으로 확산하고 증폭시켰다. 특히 팬데믹 이후 공급망이 마비된 혼란스러운 상황에서는 새로운 기업이 시장에 진입하기가 어려워 기존 기업의 시장지배력이 일시적으로 강화되었다. 이는 가격을 인상할 수 있는 좋은 조건이다. 웨버 교수 논문의 부제는 ‘왜 대기업은 비상 시기에 가격을 인상할 수 있는가’였다.

이는 인플레이션과 함께 기업의 이윤 마진 혹은 ‘마크업’(가격/한계비용)이 크게 높아졌고 국민소득에서 기업의 이윤이 차지하는 몫도 커졌음을 의미한다. 실제로 여러 연구자들은 1990년대 이후 미국에서 여러 산업의 집중과 독점이 심화되어 기업의 마크업이 높아졌다고 보고한 바 있다. 루스벨트 연구소의 실증연구에 따르면, 2021년 미국 기업들의 마크업이 치솟았는데, 이는 당시 인플레이션 급등의 중요한 배경으로 보인다(편집자 주: 기업은 상품 원가를 의미하는 한계비용에 마진을 붙여 가격을 결정한다. 원가가 100원인데 마진이 10원이라면 가격은 110원이다. 마크업은 ‘가격/한계비용’이므로 1.1이다. 마진이 20원이면 가격은 120원, 마크업은 1.2가 된다. 마크업은 기업 측이 원가 대비 얼마나 많은 수익을 취하는가를 가리키는 개념이다).

일부 금융기관과 국제기구 그리고 중앙은행가들도 인플레이션에 대해 기업의 책임을 이야기하고 있다. 언론은 ‘탐욕 인플레이션(greedflation)’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투자은행 UBS의 수석 이코노미스트 폴 도노번은 기업들이 외부 충격을 핑계로 소비자들을 기만하면서 비용 상승보다 더 높게 가격을 올려 ‘이윤 주도 인플레이션’을 발생시켰다고 강조한다. 또한 소시에테제네랄의 글로벌 전략가 앨버트 에드워즈는 ‘역사적으로 기업의 생산비용이 상승하면 이윤마진이 하락했지만 팬데믹 이후에는 둘 모두가 상승하여 과거와 크게 다르다’고 지적했다. 그는 탐욕 인플레이션을 제어하지 못하면 ‘자본주의가 끝장날지도 모른다’고까지 이야기한다.

미국 연방준비제도의 이코노미스트 앤드루 글로버는 기업의 마크업 상승이 2021년 미국의 인플레이션을 약 60% 설명한다고 보고했다. 연준 부의장이었던 레이얼 브레이너드는 지난 1월 연설에서 여러 부문의 이윤마진 상승을 지적하며 상품가격 상승이 인플레를 자극하는 물가-물가 악순환을 우려했다. 유럽중앙은행 총재 크리스틴 라가르드는 지난 6월 연설에서 최근 인플레이션에서는 원료비용 상승을 가격인상에 전가한 기업의 책임이 크다고 역설했다. 최근 국제통화기금의 연구는 2022년 1분기에서 2023년 1분기까지 유럽의 인플레이션에서 기업이윤 증가가 약 45%, 수입비용 증가가 약 40%를 차지한다고 보고하여 ‘이윤 주도 인플레이션’ 논의에 힘을 실었다. 팬데믹 이후의 인플레이션에서 우려해야 할 것은 임금-물가 악순환이 아니라 오히려 이윤-물가 악순환이었던 것이다.

이러한 논의들이 보여주는 바는 결국 인플레이션의 책임이 노동자가 아니라 기업에 있었다는 것이다. 특히 시장을 독과점으로 지배하며 가격을 좌지우지하는 기업들이 비판의 대상이다. 그렇다면 이들 기업에 대한 직접적 압박과 가격통제 등 정부 개입이 정당화될 수도 있다. 크루그먼 교수는 웨버 교수 관련 트윗에 관해 사과한 바 있는데, 최근엔 ‘가격통제를 상상해볼 수 있다’는 내용의 글을 썼다.

한국에서 실제로 그런 일이 일어났다. 3개 기업이 시장을 지배하는 한국의 라면 회사들은 지난해 국제 곡물 가격 상승을 배경으로 일제히 라면 가격을 인상했다. 그러나 얼마 전 ‘곡물 가격이 하락했으니 라면 회사들이 가격을 내렸으면 좋겠다’는 정부의 말 한마디에 라면 값을 내렸다. 한국에서 기업의 이윤 상승이 인플레이션에 얼마나 큰 책임이 있는지 따져보아야 하겠지만, 서구의 진보파들은 부러워할 사건이다.

국제 곡물 가격 상승을 이유로 일제히 라면 가격을 올렸던 회사들이 정부의 말 한마디에 값을 내렸다.ⓒ연합뉴스

“왜 기업이윤에 대해 비판하지 못하나?”

물론 여전히 대부분의 경제학자들은 이윤 주도 인플레이션이나 가격통제 주장을 지지하지 않는다. 보통 경제회복기에는 일시적으로 이윤이 상대적으로 높아지는 경향이 있어서 팬데믹 이후의 변화가 정말 특수한 것인지에 관한 분석이 발전되어야 한다.

영국 〈이코노미스트〉는 최근 기사에서 가격통제를 여전히 ‘바보 같은 아이디어’라고 지적한다. 기업들은 언제나 탐욕스러웠지, 최근 인플레이션 상황에서만 그러했던 것은 아니었다는 얘기다. 또한 기업의 이윤 증가는 원인이 아니라 결과이며, 인플레를 촉발한 것은 재정확장을 배경으로 한 과도한 총수요라고 주장했다. 하지만 블랑샤르 교수는 최근 트윗에서 ‘판매자 인플레이션론이 현실을 과도하게 해석했다고 생각하지만 웨버 교수의 연구는 중요한 논점을 제시했다’고 썼다.

프랑스 경제학자 올리비에 블랑샤르. ⓒXinhua

웨버는 석유와 화학, 유통 등 몇몇 부문 기업들의 가격상승이 경제 전체의 인플레이션에 큰 영향을 미친다며 이런 부문들에 대한 가격을 통제할 필요가 있다고 역설한다. 폴 도노번은 기업의 불공정하고 과도한 가격인상에 대해 소비자의 저항과 정치적 행동 또는 정부의 규제가 대안이 될 수 있다고 지적한다. 물론 이는 현재의 자본주의 시장경제에서 받아들이기 쉽지 않은 주장이다. 그러나 필수적 상품의 경우, 시민들의 정치적 반발이 정부로 하여금 시장에서 기업의 자유를 제한하도록 만들 수 있다. 유럽에서는 에너지와 식료품의 가격통제가 현실이 되었다.

이러한 가격통제는 물론 여러 부작용을 가져올 수 있다. 하지만 금리를 높여 경기침체를 조장하는 전통적 정책에도 부작용이 있기는 마찬가지다. 결국 인플레 억제를 위해 어떤 정책을 펼지 결정하려면 인플레의 책임에 관해 질문해야 한다. 지금까지는 정부와 노동자에게만 그 책임을 추궁했다. 기업에 인플레이션 책임을 묻는 완전히 다른 질문을 통해 우리는 새로운 정책에 대한 상상력을 촉구할 수 있다. 실제로 유명 코미디언 존 스튜어트는 최근 서머스와의 대담에서 큰 소리로 이렇게 물었다. “최근 인플레이션의 30~40% 책임이 기업에 있다는데 우리는 왜 기업이윤에 대해서는 비판하지 못합니까?”

이강국 (리쓰메이칸 대학 경제학부 교수)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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