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동병원이 복지부 장관님께 드리는 ‘레드 카드’[기고]

박효순 기자 2023. 8. 9. 07: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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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최용재 대한아동병원협회 부회장·의정부 튼튼어린이병원장

발생 또 발생. 사망 또 사망. 소아 환자가 병원을 찾지 못하는 뺑뺑이 사건이 잇따라 발생하고 이로 인한 사망자가 연이어 나오고 있다. 왜 그럴까? 연속해서 동일한 사례가 일어나는 이유가 뭘까?

정부 당국의 안일한 대책 찾기에서 그 이유를 찾아 볼 수 있다. 소아응급의료 체계에 대한 대책을 정부가 연이어 발표하고 있지만 책상머리 대책이기 때문으로 판단된다. 근본적 문제는 외면하고 미봉책만을 대책이라고 발표를 하고 있어 상황은 더 악화되는 것이다. 이제는 보건 당국의 대책 발표가 무섭기까지 하다.

하임리히 법칙이라는 게 있다. 대형사고가 벌어지기 전 전조 증상으로 29개의 경미한 사건들과 그래도 방치되면 300개의 사고 징후가 있다고 한다. 최근의 뺑뺑이 소아 환자 사망 사건은 29건의 경미한 사건조차 다 무시되어 향후 필연적으로 나타날 수밖에 없는 결과였다.

최용재 대한아동병원협회 부회장

뭘 더 기다려야 할까? 아이들이 표가 없어서 저러는 건가, 우리만 답답한건가 싶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아동병원의 진료현장도 아수라장이다.

입원실은 포화 상태다. 입원하려고 밤 12시 병원에 와서 돗자리 깔고 주무시는 보호자들도 있다. 소아 환자는 환자대로, 환아 보호자는 보호자대로, 의료진은 의료진대로 지칠대로 지친 한계치다.

전국 117곳의 아동병원은 고사리 손에 주사를 놓을 수 있고 약물 용량을 나이와 체중에 맞춰 수시로 점검하는 의료진이 포진하고 있다. 이런 아동병원 177곳이 사실상 오갈데 없는, 오갈데 없게 될 소아청소년 환자를 위한 전문병원인 셈이다.

보건당국이 심혈을 기울이고 있는 커다란 건물을 갖고 소아전문 응급센터로 지정 받은 곳만 소아 환자를 보고 있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전국 117곳의 아동병원이 초처수가이지만 사명감과 책임감으로 소아청소년 환자의 상당 부분을 커버하고 있다. 건강보험공단 통계에 따르면 현재 소아 환자의 24%를 아동병원이 책임지고 있다.

아기 손에 주사를 100번 찌르고 실패해도 평수 넓고 인력 많으면 전문병원인지, 환자 만족도 조사 같은 조사용지에 별 다섯 개 맞으면 전문 병원인지…. 보건당국에 묻고 싶다.

우리나라는 소아의료 보건위기라는 전쟁에 휘말려 있다. 당장 1년내 시급한 일과 3년후, 10년후 해야할 일들을 동시에 시작해야 앞으로 억울하게 사망할 아이들이 발생하지 않게 된다.

보건복지부 장관님께 당부 드린다. 소아응급의료체계에 대한 대책을 수립하기에 앞서 최소한 한달이라도 아니 1주일만이라도 소아 환자 진료 현장에서 의사가, 간호사가, 행정 직원이 돼 환자와 보호자의 심정을 이해하고 아동병원의 역할을 경험해 보기 바란다.

대책 마련을 위해 힘있는 사람들이 대도시의 큰 병원들을 방문해 진료 현장 목소리를 경청하고 의견을 수렴했다고 한다. 의사 3명밖에 없는 지방의 허름한 아동병원 원장들은 그 기사를 대할 때 어떤 느낌일까? 중환이 발생할까봐 매일 기도하는 심정으로 출근하는 아동병원 원장들의 마음은 또 어떨까? 이 현장을 짚어주고 헤아려주는데서 대책은 시작된다.

전라도, 경상도 지방의 작은 아동병원들은 작고 싶어서 작은게 아니다. 간호사도 의사도 구할 수가 없다. 대도시 인프라의 편리를 마다하고 가족과 떨어져 일하는 의사들도 있다. 이런 병원들은 누구의 관심도 끌지 못한다. 관심 받았다가 환자가 더 올 까봐 두렵기도 하다.

현장에 답이 있다. 애국심 가득한 고위관리들과 정의감 가득한 정치인들이여 현장에서 뜻을 펼쳐주기를 소망한다. 아픈건 둘째 치고 기다리다 중증으로 진행하는 소아 환자, 노심초사 순서를 기다리는 무력한 보호자, 긴 대기 끝에 갑자기 진행된 위중증 환아….

의료진은 털썩 주저 앉아 황급히 전화를 돌린다. 작은 아동병원에서는 이렇다. 잼보리 대회를 포기하고 귀국하는 외국인 스카우트 회원들의 뉴스가 나온다. 한국의 아기들은 한국에 남아야만 한다.

소아청소년과 수련 과정이 3년제로 바뀌면서 3년차와 4년차가 같이 퇴직하고 전공의 지원이 거의 없어 더 이상의 전공의 배출은 없다. 이같은 상황을 감안하면 소아 의료대란을 예방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아동병원밖에 없다.

대형병원 소아 진료에 이어 아동병원마저 무너지면 전국 환아들을 돌 볼 의료기관은 턱없이 부족하다. 아동병원이 무너지지 않도록, 소아응급의료체계가 붕괴되지 않도록 과감한 제도적 투자가 긴급하다. 제도 때문에 많은 생명을 구할 수도 있고, 생명을 잃을 수도 있는 분야가 필수의료다.

소아과는 필수의료다. 의사는 제 할일 하고 있다. 일할 수 있는 제도로 어린 생명을 구하자.

박효순 기자 anytoc@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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