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벌써 7명째’, 중대재해 최다 기업 대표는 1년 넘게 ‘수사중’
고용노동부가 법 시행 후 중대재해가 가장 많이 발생한 DL이앤씨 대표이사를 중대재해처벌법 위반 혐의로 입건한 것으로 KBS 취재 결과 확인됐습니다. 또 작년 7월 이미 해당 대표이사를 소환조사 한 것으로 파악됐습니다.
그러나 관련 수사는 1년이 지난 지금도 진행 중입니다. 검찰에 사건을 송치하지 못 하고 있는 겁니다. DL이앤씨 공사 현장에서는 작년 3월 첫 사망 사고를 시작으로, 지금까지 6건의 중대재해가 발생했고 노동자 7명이 숨졌습니다.
수사가 지연되는 건 DL이앤씨뿐이 아닙니다. 10대 건설사에서 발생한 중대재해 사건 중 고용부가 검찰에 송치한 사건은 아직 한 건도 없습니다. 그 사이 중소 건설사 사업주만 중대재해처벌법으로 기소되거나 처벌 받았습니다.
■ 책임자는 누구? 해 넘기도록 결론 못 냈다
작년 4월 6일 오전 5시 50분쯤 경기도 과천시 지식산업센터 건설 현장에서 하청업체 소속 노동자 1명이 굴착기와 철골 기둥 사이에 끼여 숨지는 사고가 났습니다. 시공사는 DL이앤씨였습니다.
KBS 취재를 종합하면, 당시 수사를 벌인 관할 노동지청은 사업장 내 안전·보건 조치에 미흡한 점이 있다고 봤습니다. 또 원청인 DL이앤씨 대표이사를 중대재해처벌법 위반 혐의로 입건하고, 소환 조사도 했습니다.
중대재해처벌법은 경영 책임자가 안전·보건 조치 의무를 다 하지 않아 인명 피해가 난 경우 해당 경영 책임자를 처벌하는 규정을 두고 있습니다. 여기서 경영 책임자는 " 사업을 대표하고 총괄하는 권한과 책임이 있는 사람 또는 이에 준하여 안전보건에 관한 업무를 담당하는 사람"이라고 명시돼 있습니다. 수사팀은 DL이앤씨 대표이사를 경영 책임자로 본 겁니다.
그러나 대표이사 측은 조사에서 자신은 권한이 없다는 취지로 진술한 것으로 전해졌습니다.
DL이앤씨는 작년 1월 토목과 주택, 플랜트 등 3개 본부장을 최고안전책임자(CSO)로 선임하는 조직 개편을 했습니다. 더불어 안전·보건 예산과 인력 운용 방침도 각 본부별로 정하도록 했습니다. 본부장에게 권한을 넘겼으니 대표이사는 중대재해법상 경영 책임자가 아니라는 취지의 주장으로 분석됩니다.
그러나 당시 본부장들은 DL이앤씨에서 비등기 임원이었습니다. '사업을 대표하고 총괄하는 자'로 볼 수 있을지 의문이 제기되는 대목입니다.
검찰은 이후 여러 차례 보강 수사를 요구했습니다. 아직 사건을 송치할 만큼 범죄가 소명되지 않았다는 겁니다. DL이앤씨에서 벌어진 다른 중대재해 사건을 수사하는 다른 노동지청도 사정이 비슷한 것으로 전해집니다.
■ CSO 선임 전략 먹혔나? 10대 건설사 송치 0건
중대재해법 시행 직전 CSO를 선임한 건 DL이앤씨뿐이 아닙니다. 10대 건설사 대부분이 최고안전책임자(CSO)를 새로 선임했습니다.
당시 대표이사나 경영권을 행사하는 대주주를 보호하기 위해 CSO를 방패막이로 쓰는 것이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 바 있습니다. 실제 이들 건설사에서 벌어진 중대재해는 아직 한 건도 검찰에 사건이 송치되지 않았습니다.
근로감독관들은 CSO를 내세운 대기업 수사에 어려움을 호소합니다. 중대재해 사건 수사를 담당하는 한 근로감독관은 대표이사가 인력과 예산에 대해 결제하거나 보고 받은 내역이 있는지 확인하는 과정이 필요하지만, 압수수색 영장이 나오지 않아 증거 확보가 어렵다고 말합니다. DL이앤씨 본사의 경우도 압수수색 영장이 발부된 적이 없습니다.
대기업들은 수사 초기 수십 상자 분량의 자료를 수사팀에 스스로 제출하는 것으로 전해집니다. 자료를 성실히 제출함으로써 압수수색 등 강제 수사의 명분을 사전에 차단하는 전략입니다.
근로감독관들은 이런 자료를 실체적 진실로 그대로 받아들이기는 어렵다고 보지만, 강제 수사 없이 증거 확보가 어려운 것도 현실입니다.
중대재해처벌법 시행 이후 대기업들은 권한을 CSO 등에게 분산시키는 것으로 대응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하면 중대재해가 발생해도 책임 소재가 어디 있는지 판단하기 더 어려워지기 때문입니다. 여력이 없는 중소 건설사들이 이미 재판에서 중대재해처벌법 위반 혐의로 유죄가 선고되고 있는 것과는 대조적입니다.
경영 책임자 처벌 규정을 통해 기업 내 최고 의사결정권자가 안전·보건에 신경 쓰도록 하자는 취지에서 만들어진 중대재해처벌법이 실제 현장에서는 취지대로 운영되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윱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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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성희 기자 (bombom@kbs.co.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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