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상선수 발생 → 5반칙 퇴장 → 자격상실패, 수원여고가 보여준 여자농구의 안타까운 현실
8일 강원도 양구군 청춘체육관 B코트에서 열린 2023 한국중고농구 주말리그 왕중왕전 여고부 A조 예선 수원여고와 선일여고의 맞대결. 1쿼터 막판 갑자기 수원여고 선수들이 고의적으로 파울을 하기 시작했다. 파울은 선일여고가 공을 잡을 때마다 계속 됐고, 순식간에 3명이 5반칙 퇴장을 당했다. 결국, 수원여고는 15-34로 자격상실패를 당했다.
경기 막판 공격권이 필요한 게 아니었기에 파울작전은 아니었다.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상황. 왜 수원여고는 1쿼터 막판 고의로 파울을 한 것일까.
이유는 엔트리가 5명에 불과했기 때문이다. 이번 대회 수원여고는 방소윤, 김하은, 오시은, 조주희, 서예진 5명으로 출전했다. 그러나 선일여고전 1쿼터 중반 조주희가 무릎 부상을 당해 쓰러졌다. 이로 인해 4대5로 경기를 치러야 됐다.
농구 종목 특성상 4대5로 싸운다면 승리 확률은 0%라고 봐도 무방하다. 게다가 1쿼터에 부상선수가 나왔기에 4쿼터까지 4대5로 뛰어 이긴다는 것은 불가능했다. 때문에 수원여고는 상대팀에 양해를 구하고 스스로 자격상실패를 선택한 것이다.
FIBA 규정상 ‘경기 중 한 팀의 선수가 경기장에 1명이 남게 되면, 그 팀은 자격 상실로 경기에 패한다’고 명시되어 있다. 수원여고는 자격상실패 조건을 충족시키기 위해 고의로 5반칙 퇴장을 선택했다. 결국, 방소윤, 김하은, 오시은이 5반칙 퇴장을 당하면서 코트에는 서예진 홀로 남았고, 경기는 그대로 종료됐다.
이어 열린 숭의여고와 분당경영고의 맞대결에서도 비슷한 상황이 나왔다. 숭의여고는 3쿼터 중반 정현이 5반칙 퇴장을 당했다. 하지만 엔트리가 5명에 불과했기에 4대5로 경기를 이어가야 했다. 숭의여고 또한 수원여고와 마찬가지로 상대팀에 양해를 구한 뒤 고의로 파울을 했고, 김수인, 안서연, 유나경이 추가로 5반칙 퇴장을 당하며 자격상실패를 기록했다.
한국 여자농구의 현실을 그대로 보여주는 안타까운 경기였다. 여자농구는 몇 년 전부터 선수수급에 문제를 겪고 있다. 출산율 저하로 10대 인구가 줄어들고, 신장이 큰 학생들은 농구보다 배구를 선호한다. 이로 인해 농구부가 없어지는 학교가 늘어나고 있고, 경기 최소 인원 5명으로 대회에 출전하는 학교도 많다. 그야말로 간신히 버티고 있는 중이다.
이날 현장에서 경기를 지켜본 프로팀 A관계자는 “이런 경기를 예전부터 꽤 많이 봤다. 농구에서 4대5로 경기하는 게 쉽지 않다. 남은 선수들은 최선을 다하고, 기량을 뽐내고 싶을 텐데 본인의 의지와 상관없이 그러지 못하게 되니 안타깝다. 선수가 너무 없는 게 크다. 씁쓸한 현실인 것 같다”고 말했다.
이어 “요즘 초등학교 전교생이 30명대에 불과하다. 이중 농구를 하고 싶어 하는 인원이 얼마나 되겠나. 또한 농구보다 배구를 선호하는 추세다. 지원도 잘해주고, 김연경과 몇몇 선수들 덕분에 인기가 올라갔다. 사실 농구는 길거리에서도 할 수 있을 만큼 접하기 쉬운 스포츠인데 배구를 더 많이 선택한다는 게 안타깝다. 현재 선수수급이 가장 큰 문제다. 프로팀에서 학생들을 위한 지원 프로그램을 활성화시켜서 동기부여를 해줬으면 한다”는 바람을 덧붙였다.
최근 한국 여자농구는 국제대회 성적도 매우 부진하다. 성인 대표팀은 2023 FIBA 여자 아시아컵에서 5위에 그치며 2024 파리 올림픽 출전이 무산됐다. U18, U16 대표팀 또한 2022년과 올해 열렸던 FIBA 여자아시아선수권대회에서 5위에 머무르며 U19, U17 여자 월드컵 출전 티켓 획득에 실패했다. 성인 대표팀과 연령별 대표팀 모두 세계대회 출전에 실패한 것이다.
이미 선수수급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상황에서 국제대회 성적까지 부진하기에 관심도는 당연히 떨어질 수밖에 없다. 그럼 문제는 더욱 심각해질 것이다. 선수가 계속 줄어든다면 앞으로 중고대회에서 고의로 자격상실패를 선택하는 경기가 더 많이 늘어날 여지가 충분하다.
많은 농구인들을 비롯해 대한민국농구협회, WKBL, 한국중고농구연맹 관계자들이 심각하게 고민해볼 문제다. 한국 여자농구는 지금이 위기다. 누군가 발 벗고 나서지 않는다면 돌이킬 수 없을지도 모른다.
# 사진_점프볼 DB(박상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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