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철희 국립외교원장 “韓·日, 과거사는 과거사대로 풀고 미래 위한 협력은 열어놔야” [세계초대석]
개혁 목표, 외교원 본래 모습 찾는 것
신임 외교관에 우주 등 새 영역 교육
韓·日 관계 양자적으로 보는 시각 탈피
대등한 협력자로서 전략적 선택 필요
정부 제3자 변제 해법은 정치적 결단
韓·美·日 정상회의 의미 ‘관계 레벨업’
입장 비슷한 나라끼리 ‘소자주의’ 부상
2023년 韓·中·日 정상회의 개최 가능성
“비정상의 정상화였다.”
―취임 후 구체적으로 어떤 개혁을 했나.
“(외교부) 본부와 소통과 협업을 늘리고, 국정과제와 연관되는 중요 연구는 공동 연구를 지향했다. 외부 전문가 얘기는 비공개로 들어 최대한 많이 수렴하고, 정책 설명은 공개적으로 하라고 했다. 조직도 개편했다. 아시아태평양연구부를 ‘인도태평양연구부’로, 경제통상개발연구부를 ‘국제통상경제안보연구센터’로, 안보통일연구부를 ‘국제안보통일연구부’로, 아프리카중동연구부를 ‘전략지역연구부’로 각각 바꿨다. ‘글로벌거버넌스센터’도 신설했다. 한국 외교는 4강이나 한반도 문제에 치우쳐 있다. 글로벌 중추국가가 되려면 연구도 글로벌하게 바뀌어야 한다.”
―경제안보 등 신외교 이슈들이 부상하는데 외교원은 잘 대비하고 있나.
“글로벌 중추국가가 되겠다고 하면서 국책 연구기관은 아직도 예전 관성으로 돌아가고 있는 것이 많았다. 여전히 지정학, 4강 외교, 한반도 중심이다. 그나마 하는 경제 분야 연구도 다자통상 중심이다. 시선을 넓혀야 한다. 변화한 현실에 맞춰 ‘경제기술안보연구센터’를 신설하려 한다. 신임 외교관 교육 과정에도 경제안보, 우주, 사이버, 과학기술 등 신외교 영역을 많이 포함시켰다. 아프리카, 중동, 중앙아시아, 중남미처럼 과거 관심을 덜 받았지만 중요성이 증가하는 지역들 역시 ‘전략지역’이라는 이름으로 더 연구해야 한다. 요즘 부산엑스포 유치 활동을 하면서 우리가 여러 지역을 골고루 신경쓰고 있는데, 향후 우리 외교에 큰 도움이 될 것으로 본다.”
“한국의 외교안보 사안이 굉장히 논쟁적이고, 보수·진보가 갈려 있다. 숨겨 놓고 이야기할 게 아니라 과학적 논리, 경험적 증거를 제시하며 공개적으로 얘기해야 한다. 또 과학의 문제이기도 하지만 국제정치적 맥락, 의미도 짚어야 한다. 그런 측면에서 외교원이 할 수 있는 역할이 있다고 생각했다.”
박 원장이 부임 후 가장 강조하는 것이 바로 ‘개방성’이다. 원장실만 해도 집무실과 손님을 맞는 접견 공간 사이에 가벽이 있었는데 그가 철거하도록 했다. 박 원장은 “처음에 와서 보니 조직이 너무 타성에 젖어 있었다”며 “내부 긴장감, 대외 경쟁력을 높여 개혁 역량을 강화시키는 것이 과제였다”고 말했다.
―한·일관계 전문가로 인수위에서 활동했다. 정부의 제3자 변제 해법을 어떻게 평가하나.
“1965년 한·일 기본조약 정신을 존중하지 않으면 한·일관계는 밑바닥이 흔들린다. 문재인정부에서는 그걸 완벽하게 흔들지도 못하면서 어떻게든 바꿔 보려고 주춧돌을 건드렸다. (제3자 변제 해법은) 이 기본정신을 존중하면서 2018년 대법원 판결의 틀에서 벗어나지 않기 위한, 고뇌에 찬 정치적 결단이었다. 무엇보다 대통령의 정치적 결단이 컸다. 우리가 선제적으로 결단했기 때문에 일본도 부담을 느끼고 서서히 호응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한·일관계가 달라져야 하나.
“그렇다. 새로운 한·일관계는 기본적으로 축이 달라져야 한다. 과거사를 버리라는 것이 아니고, 과거사는 과거사대로 해결하되 현재 가능한 협력, 미래를 열어갈 수 있는 협력은 열어놓아야 한다.”
―현재의 한·일관계에서 그게 가능한가.
“발상의 전환이 필요하다. 늘 일본은 강자고, 한국은 약자라는 생각에서 벗어나야 한다. 그런 시대는 지났다. 한국과 일본은 대등한 협력자다. 이미 우리 국력과 국제사회에서의 비중이 그렇다. 또 한·일관계를 양자적으로만 보는 시각에서 벗어나야 한다. 문재인정부는 한·일관계를 방치했다. 북핵 위협은 증가하고, 중국은 점점 공세적이고, 러시아는 우크라이나를 침공하고, 경제안보 이슈는 강화하는 현실에서 우리가 일본과 손을 잡는 것과 방치하는 것 중 무엇이 더 전략적인가.”
정권에 따라 외교관들이 근무하고 싶어하는 나라도 바뀐다. 한·일관계가 경색되면서 한때 일본에 가려는 외교관이 없어 애를 먹었다는 얘기가 들린다. 현 정부 들어선 미·중 경쟁 심화와 그에 따른 한·중관계 악화로 중국의 선호도가 낮아졌다는 후문이다. 마침 외교원은 새내기 외교관을 양성하는 교육기관이기도 하다. 박 원장은 “한국이 이사를 갈 수도 없고 죽으나 사나 옆에 있는 나라와 같이 가야 한다”며 “중·일은 기피 대상이 되어선 안 된다”고 강조했다.
“기본적으로 한·일은 적극적이다. 중국으로 봐서는 한·미·일 협력 강화가 반갑지는 않겠지만 한·중·일 협력을 완전히 밀쳐내는 것보다는 갖고 있는 것이 중국에게도 유리하다. 최근에 중국도 좀 유연해졌으니 실무자급, 고위급, 외교장관급, 정상급으로 연결시켜야 한다. 예상할 수 없는 돌발 이슈만 생기지 않으면 가능하다고 본다.”
―캠프데이비드 한·미·일 정상회의 개최는 어떻게 보나. 중국을 견제하는 의미가 있을까.
“가장 큰 의미는 한·미·일 관계의 ‘레벨업’(수준 향상)이다. 동아시아에서 가장 강력한 동맹이 한·미, 미·일 동맹이다. 그런데 삼각형의 한 쪽(한·일관계)은 점선이었다. 그걸 실선으로 바꾸는 것이다. 현재 다자주의가 거의 무너지는 시점이다. 심지어 유엔도 중·러가 안전보장이사회에서 거부권을 행사하고 있어 기능부전 상태다. 결국 입장이 비슷한 나라들끼리의 ‘소자(少者)주의’가 우선이 될 수밖에 없다. 그런 상황에서 우리도 여러 협력을 많이 하는 것이 좋다. 중국도 북한, 러시아와 소자주의를 하고 있지 않나. 물론 3자 협력의 기본축은 북한 핵·미사일에 대한 대응이다.”
―전임 원장들의 경우 잦은 대외 발언으로 물의를 빚기도 했다.
“제가 개별 현안에 대해 손 들고 얘기하는 것보다 정부가 구상하는 여러 외교안보 과제에 대해 설명하는 책임을 다하려고 한다.”
―한국 외교가 풀어야 할 시급한 과제가 있다면.
“초당적 협력이 거의 없다. 정파적 이익에 따라 대립하는데 결국 대가는 국민이 치른다. 또 가짜뉴스, 허위 주장에 대해 팩트체크를 할 수 있는 범부처 컨트롤타워가 마련돼야 한다. 우리 내부에서 정치적 목적을 위해 생산되는 것도 있지만 러시아의 미국 선거 개입에서 보듯 외부에서 일부러 조작해 퍼뜨리는 가짜뉴스도 있다. 휘둘리지 말아야 한다.”
대담=김태훈 외교안보부장, 정리=홍주형 기자 jhh@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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