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병대 확 띄게…” 사단장 지시에 ‘안전’ 없었다
군인권센터, 사고 경위 재구성…“수사 과정에 강한 의구심”
수색 방식 바둑판식으로 바꾸는 등 대외적 이미지에만 집중
경북 예천군 수해 현장에서 실종자를 찾다 목숨을 잃은 채수근 상병의 순직이 해병대 지휘부의 무리한 수중수색 지시 때문이었음을 보여주는 소속 중대원들의 증언과 중대 카카오톡 단체방 대화 내용 등이 8일 공개됐다.
군인권센터는 이날 서울 마포구 사무실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채 상병이 속했던 중대의 카카오톡 대화방 내용, 동료 병사들의 제보 등을 토대로 사고 경위를 재구성해 발표했다. 채 상병은 지난달 19일 경북 예천군 보문교 인근에서 집중호우로 실종된 이들을 찾다 물살에 휩쓸려 순직했다.
센터는 해병대 지휘부가 장병 안전, 작전 수행보다 외부 평가와 군 대외적 이미지를 고려한 지시를 내렸다고 했다. 중대 카카오톡 단체방에 공유된 사단장 지시사항 내용을 보면 사고 발생 이틀 전인 지난달 17일 “복장 통일 철저, 상의 적색 해병대 체육복 착용, 사단장 현장 지도 시 복장 점검 예정”이 공지됐고, 하루 전인 지난달 18일 “얼룩무늬 스카프 착용, 웃는 얼굴 표정 안 나오게 할 것” “스카프 없는 인원 웃지 말고 작업할 것” 등의 지시가 하달됐다.
같은 날 오후 4시22분에는 “슈트 안에도 빨간색 추리닝 입고 해병대가 눈에 확 띌 수 있도록 가급적 적색티 입고 작업” “사단장님 오면서 경례 미흡” 등 작전 효율이나 병사 안전과는 무관한 의전, 군 이미지와 관련한 내용이 하달됐다.
안전상 이유로 진행하던 일렬 수색 작업을 비효율적이라며 바둑판식 수색 정찰로 바꾼 것도 지휘부의 지시에 따른 것으로 파악됐다. 센터 측은 “현장 상황과 괴리됐을 뿐 아니라 장병 안전에 관심 없고 외부에 비치는 모습에만 집중하고 있다”고 했다.
안전에 유의해야 한다는 현장 간부들의 보고는 묵살됐다. 중대 카카오톡 대화방에서 한 간부는 “안전 재난수칙에 장화를 신고 물에 들어가는 것을 금지하고 있다. 물이 장화에 들어가면 보행할 수 없다”고 건의했다. 이에 대해 중대장도 “건의하겠다” “물가에 가게 될 경우 전투화로 변경 요청한 상황”이라고 회신했다. 그러나 다음날 최종적으로 전파된 복장 명령은 ‘장화, 우의, 공격 배낭, 정찰모, 갈퀴’였고 구명조끼는 포함되지 않았다.
채 상병 사건을 수사한 해병대 수사단은 사단장·여단장 등에 과실치사 혐의를 적용한 수사 기록을 경북경찰청에 넘기겠다고 이종섭 국방부 장관에게 보고한 뒤 지난 2일 사건을 경찰로 이첩했다. 그러자 국방부는 수사단장을 집단항명 수괴 혐의로 입건하고 보직해임하며 수사 기록을 회수했다. 지난달 31일 이첩을 보류하라고 지시했는데도 따르지 않았다는 게 이유였다.
센터는 “이번 사고는 임성근 사단장 이하 해당 1사단 지휘부가 대민 지원 과정에서 ‘해병대가 성과를 올리고 있다’는 이미지를 도출하기 위해 안전을 무시하고 무리한 지시를 남발하다 발생한 것”이라며 “국방부 장관이 결재까지 한 해병대 수사단 수사 결과 발표를 앞두고 갑자기 폐기·번복돼 경찰에 넘겨진 수사기록이 회수되고, 정당한 수사를 진행한 수사단장 등이 항명죄로 입건돼 수사를 받는 처지에 이르는 등 이해할 수 없는 일이 연속적으로 발생하는 것에 강한 의구심을 표한다”고 밝혔다.
김송이 기자 songyi@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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