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혁조의 만사소통] 봉지와 에코백

관리자 2023. 8. 9. 05: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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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4년 겨울, 서울 남대문시장.

물건을 사면 남대문시장에서는 봉지에 담아준다.

'봉지'와 '에코백'.

봉지처럼, 에코백처럼 살면 어떨까? 누구를 만나든, 무엇을 보든 넉넉히 보담으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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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건 모양 관계없이 담는 ‘봉지’
칸막이 없이 한데 넣는 ‘에코백’
뭐든 포용하니 누구나 즐겨 써
지역·세대·계급간 벽 쌓은 우리
같다고 뭉치고 다르다고 등지고
두 물건서 소통과 이해 배워야

신 1.

1994년 겨울, 서울 남대문시장. 몰래 숨어서 촬영한다. 상인들의 눈을 피해서. 뭐 거창한 걸 찍는 것이 아니라 물건 파는 모습을 담는다. 대부분 촬영을 허락하지만, 몇몇 상인들은 싫어했다. 그래서 숨어서 찍었다. 혹시 들키면, 바로 줄행랑이다. 다시 가서 또 찍으면 된다. 그땐 그랬다. 방송사 입사를 위한 4차 실기 시험 중이었다. 촬영한 걸 슬라이드로 만들고, 스토리보드로 제작해 발표하는 시험이었다.

주제는 ‘봉지와 상자’. 물건을 사면 남대문시장에서는 봉지에 담아준다. 길 건너 백화점에서는 대부분의 상품을 종이 상자에 담아 판다. 봉지는 물건 모양 관계없이 다 들어간다. 상자는 그 규격에 맞는 특정한 물품만 담을 수 있다. 봉지의 넉넉함을 전통시장의 포용력과 인간미로 표현했다. 상자의 규격화를 백화점의 지나친 상업주의로 비교했다. 시장은 덤으로 막 주기도 한다. 백화점은 상자에 넣으면 끝이다. 더 줄 수가 없다. 사라져가는 전통시장에 대한 아쉬움을 담았다.

방송사에 합격했다. 들리는 소문에 의하면 1등이라나 어쨌다나.

신 2.

요즈음 에코백을 자주 들고 다닌다. 에코백이라니? 처음엔 이름이 생소했다. 관심도 없었다. 평소에 배낭만 메고 다녔다. 학교에 갈 때도, 등산을 갈 때도, 여행을 갈 때도. 거의 20년을 사용했다. 너덜너덜 색깔도 다 바랬다. 그래도 정이 붙어 배낭만 고집했다.

어느 날 가방을 선물 받았다. 그게 에코백이란다. 지퍼도 없고, 물통 주머니며 볼펜 꽂이 등 아무것도 없다. 물건을 분류할 칸막이가 하나도 없다. 달랑 손잡이만 하나 있다. 놔두자니 아까워서 한번 들고 나가봤는데 얼마나 편한지. 무엇을 넣어도 다 들어간다. 책·우산·부채·물통·도시락·지갑·선크림·노트북까지. 이크, 이러다 생활 밑천 다 탄로 날라. 어쨌든 모양도 상관없다. 네모든 세모든 둥근 거든. 다 담긴다. 또 정리할 필요도 없다. 그냥 넣으면 된다. 꺼낼 때도 열고 닫고 자시고 할 필요가 없다. 손만 넣어 쓱 꺼내면 된다. 편해도 너무 편하다. 그래서 너도나도 들고 다니나 보다.

신 3.

‘봉지’와 ‘에코백’. 참 많이 닮았다. 무엇이든 다 담을 수 있다. 모양에 관계없이, 크기도, 색깔도, 외제냐 국산이냐 생산지에도 관계없이. 열려 있다. 어떤 것도 다 포용한다. 참 넉넉하다. 그래서 많이 사용한다. 사람들의 사랑을 받는다.

생각해본다. 봉지처럼, 에코백처럼 살면 어떨까? 누구를 만나든, 무엇을 보든 넉넉히 보담으면서. 어쩌면 우린 너무 구분하는 건 아닌지. 또 분류하는 건 아닌지. 너는 시골 출신, 나는 서울. 너는 부자, 나는 가난한 사람. 너는 경영자, 나는 노동자. 너는 정치인, 나는 유권자, 너는 꼰대, 나는 신세대. 이렇게 구분하고 서로 가르는 것 같다. 그리고 비슷한 것끼리 분류하고 뭉친다. 벽을 만든다. 그래서 소통이 안되고 갈등이 생긴다. 흙수저와 금수저의 구분, 노동자와 경영자의 대결, 세대간의 갈등, 지방과 서울의 격차 등 우리가 안고 있는 많은 문제들이 ‘구분’과 ‘분류’ 때문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열어놓고 포용하면서 살면 어떨까? 우리 스스로 만든 벽을 허물면 어떨까? 그래서 소통하면서, 이해하면서 살아가면 어떨까? 소통은 열어놓는 것이고, 포용하는 것이며, 이해하는 것이다. 구분하고 분류하는 것은 소통이 아니라 불통이다. 굳이 칸막이를 만들어 우리 편 내 편 할 필요가 있을까?

30여년 전 남대문시장의 봉지가 눈에 선한 이유는 뭘까?

김혁조 강원대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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