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켓인]미국도 스몰딜만 하는데…국내는 조단위 매물 줄줄이 대기
美 연기금 사모 수익률 마이너스 기록
PEF 규모·리스크 줄인 '스몰딜' 집중
국내는 역대급 조단위 매물 등판 대기
"시장 상황 감안하면 녹록지 않을 것"
[이데일리 김성훈 기자] 글로벌 펀딩 시장 분위기가 심상치 않게 돌아가고 있다. 글로벌 연기금들이 몰라보게 출자 규모를 줄이면서다. 연기금 돈을 받아 재투자해야 하는 글로벌 경영참여형 사모펀드(PEF) 운용사들도 대책 마련에 나섰다. 투자 규모와 리스크를 함께 줄이는 이른바 ‘스몰딜’ 투자로 방향을 설정한 모습이다.
이런 시장 분위기와 달리 국내에서는 수조원에 달하는 매물이 매각 작업에 나서는 등 사뭇 다른 흐름을 보이고 있다. 덩치 큰 매물에 대한 리스크 우려가 고조되는 상황에서 원하는 가격에 매각에 성공할 수 있을지 관심이 쏠린다.
글로벌 사모투자 분석업체 프레킨에 따르면 올해 2분기 글로벌 PEF 운용사의 펀딩 규모는 1067억달러(140조3851억원)로 전년 동기 대비 35% 감소했다. 같은 기간 PEF 운용사들이 모금을 마무리한 펀드도 166개로 53%나 급감했다.
PEF 운용사들이 자금을 모집하는 데 있어 가장 믿을 구석은 연기금을 필두로 한 기관투자가다. 이들이 사모 투자에 어느 정도 비율을 할애하느냐에 따라 전체 펀딩 규모도 절대적인 영향을 미친다. 그런데 올해는 기관투자가들의 출자가 눈에 띄게 줄었다는 게 시장 분석이다.
실제로 미국 연기금들은 2008~2009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처음으로 손실을 기록했다. 지난달 25일(현지시각) 버기스(Burgiss) 그룹 지수를 인용한 월스트리트저널(WSJ) 보도에 따르면 지난 3월까지 12개월간 연기금들의 사모펀드 투자(벤처자금 제외) 수익률은 -0.96%를 기록했다. 2009년 3월(-30.45%) 이후 처음 마이너스로 내려온 셈이다.
코로나19 펜데믹으로 사모투자 전성시대가 열렸던 2021년 1분기 52.33%, 지난해 1분기 24.97% 수익률을 기록했던 것과 비교하면 어마어마한 감소 폭이다.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의 기준금리 인상에다 연이어 터진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 우려, 실리콘밸리은행(SVB)을 필두로 한 금융권 연쇄 파산이 영향을 미쳤다는 분석이다.
더 큰 문제는 미 연기금들이 출자 규모를 늘릴 계획이 사실상 크지 않다는 점이다. 미국 최대 연기금인 캘리포니아주 공무원연금(CalPERS·캘퍼스)은 사모투자 손실 공개와 함께 “다음 분기도 장담할 수 없다”는 입장을 밝혔다. 사모투자 손실이 가시화한 상황에서 공격적인 출자를 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이미 캘퍼스는 1분기 미국 금융권 연쇄 파산 여파로 40억 달러의 손실을 보기도 했다.
상황이 이렇자 미국 자본시장 안팎에서는 과도한 인수금융을 끼지 않고 투자할 수 있는 이른바 ‘스몰딜’이 대세로 떠오르고 있다.
과거에는 각 운용사가 인수나 투자를 원하는 매물인지 따진 뒤 자금 마련 가능성을 타진했다면, 최근에는 운용사별 자금 가용 규모를 들여다보고 소화 가능한 투자처를 찾는 쪽으로 분위기가 바뀌었다는 설명이다. 월스트리트저널은 이러한 현상을 두고 ‘한입 크기 거래’(Bite-Size Deals)가 정착하고 있다는 정의를 내리기도 했다.
인수금융 없는 거래에 집중하는 미국 자본시장과 달리 국내는 조 단위 매물이 시장에 줄줄이 대기 중이다. 몸값만 최소 5조원에서 최대 9조원에 육박하는 국내 최대 해운사 HMM(011200)이 매각 작업에 나선 가운데 한온시스템(018880), 롯데카드, 맘스터치, 버거킹, 모던하우스 등의 조 단위 잠재 매물이 등판을 기다리고 있다.
HMM의 경우 매각 규모가 워낙 크다 보니 PEF 운용사 등 재무적투자자(FI)들이 인수전에 등판할 것이라는 이야기가 지배적이다. 뒤이어 나올 조 단위 매물들도 상황이 크게 다르지 않다. 온전히 인수가를 소화할 수 없을 경우에는 FI를 구하거나 비싼 이자가 수반되는 인수금융 확보에 나서야 한다.
스몰딜에 집중하는 미국과 반대로 가는 상황에서 초대형 매물이 새 주인을 찾는 과정은 생각보다 쉽지 않을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오를 대로 오른 대출 금리에다 인수 이후 치러야 할 추가 투자 비용 등을 감안하면 녹록지 않은 베팅이 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어김없이 따라 붙는 ‘승자의 저주’ 프레임도 이겨내야 하는 과제도 추가로 남는다.
한 자본시장 관계자는 “최근 시장 상황을 감안하면 매각 규모가 큰 매물은 확실한 사유나 의지가 있어야만 인수 추진이 그나마 가능하다”며 “앞으로 나올 실적 추이 등 재무 상황 등이 종합적으로 고려해야겠지만, 활황기도 아닌 시점에서 조 단위 매물 인수를 추진하는 것이 쉽지 않은 결정인 것만은 부정할 수 없다”고 말했다.
김성훈 (sk4he@e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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