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읽기] 만 레이의 농담 같은 미술

관리자 2023. 8. 9. 05: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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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미건조한 대화가 몇분 이상, 혹은 몇시간째 지속되는 자리에 앉아 있노라면, 숨 막히듯 답답해진 분위기를 깰 방법을 자기도 모르게 궁리하게 된다.

진작에 미술을 농담으로 이해한 미술가가 있는데, 그의 이름은 만 레이(1890∼1976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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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 레이, <재판방해>, 1920-61년까지 여러 버전, 63개의 나무 옷걸이, 전체높이 74.9cm, Paris, Galerie Marion Meyer.

무미건조한 대화가 몇분 이상, 혹은 몇시간째 지속되는 자리에 앉아 있노라면, 숨 막히듯 답답해진 분위기를 깰 방법을 자기도 모르게 궁리하게 된다. 누군가 상황에 딱 맞는 재치 넘치는 농담을 던져주면 최고겠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싱거운 아저씨 개그라도 환영하고 싶어진다.

농담은 의도적으로 상대를 낮추는 일이 종종 있어서 최근에는 부적절하다고 여겨지곤 한다. 하지만 적절하기만 하다면 미술작품의 반열에 올려놓을 수도 있다. 미술작품은 미학적 가치를 논하기 이전에 일단 사람들의 관심을 끌고 주변을 환기시키려는 본성이 있다. 그런 차원에서 농담과 미술작품은 닮았다. 진작에 미술을 농담으로 이해한 미술가가 있는데, 그의 이름은 만 레이(1890∼1976년)다. 미국 태생이고, 본래 이름은 엠마뉴엘 라드니츠키(Emmanuel Radnitzky)인데 이름의 일부를 따와서 스스로를 ‘인간 광선’(Man Ray)이라고 지었다.

뉴욕에서 활동했던 시절 그는 마르셀 뒤샹과 더불어 실험적인 작품을 시도했다. 기성품을 그대로 활용하여 색다른 제목을 붙이는 것을 ‘레디메이드 오브제’라고 하는데 다리미에 못을 붙여 ‘선물’이라고 부르는 작품이 한 예다. 다리미로 옷을 다리려면 밑판이 매끄러워야 한다. 그런데 가운데에 못을 일렬로 붙여 날카롭게 천을 찢어놓는 물건으로 바꾸어놨다. 남의 옷을 갈기갈기 찢는 물건을 ‘선물’이라 부르다니!

삶의 진지함을 비웃으면서 다른 차원의 사색에 빠지게 만드는 것이 만 레이 작품의 특징이다. 그는 이렇게 말한다. “평소 나는 농담 때문에 때때로 비난받는다. 하지만 가장 성공적인 미술이란 바로 농담의 형태라고 생각한다.” 그의 동료인 뒤샹은 “만 레이 : 남성명사, 즐겁다(Joy), 놀다(Play), 즐기다(Enjoy)와 동의어”라고 그를 사전적으로 정의 내리기도 했다. 물론 만 레이의 작업이 마냥 즐겁게 놀고 즐기는 가벼운 농담의 형태만은 아니었다. 농담 속에 굵직한 가시가 숨어 있었다고 할까. 웃음을 자아내다가 뒤돌아서 생각해보면 섬뜩하기도 한, 이중적이고 역설적인 느낌이 들도록 사물을 보여주길 그는 좋아했다.

여러 옷걸이를 매단 ‘재판방해’라는 작품에는 말장난이 숨어 있다. ‘옷걸이’(Hanger)는 ‘매달다’(Hang)에서 파생된 단어인데 목을 매달아 집행하는 ‘교수형’(Hanging)을 떠오르게 할 뿐 아니라 실제로 줄에 매달린 형태로 제시되어 있다. 그리고 법적 용어인 ‘재판방해’를 제목으로 달아 옷걸이와 교수형 간의 연상 작용을 확실하게 만들었다. 아무것도 심각할 일 없는 경쾌한 조형성으로 묵직한 의미를 불러일으키는 만 레이의 미술작품, 이것이 내가 이달에 추천하는 서늘한 농담 하나다.

이주은 건국대 문화콘텐츠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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