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무고한 희생자가 빼앗긴 인권
내가 혹은 가족이, 지인이 만일 그 시간 그 장소에 있었다면…
일면식도 없는 조현성 인격장애(분열성 성격장애) 환자인 최원종으로부터 공격을 받아 다쳤거나 사망했을 수도 있다. 상상하는 것 조차 끔찍한 일이다. 희생 당한 이들과 가족의 억울함과 슬픔을 헤아릴 길이 없다. 길을 가다 낯선이에게 피습을 당할 확률은 매우 낮다. 수백만분의 1 정도 될 듯하다. 하지만 정작 당사자에겐 100%의 확률이 돼 버렸다.
끔찍한 범죄를 저지른 최원종은 2015년부터 5년간 치료를 받은 정신질환자다. 두 개 병원에서 진단을 받고 약을 처방받아 복용했지만 최근 3년간 정신질환 치료를 받은 기록이 없었다. '만약에'란 말은 아무런 의미가 없지만 그가 정상적인 치료를 받았다면 어쩌면 이번 비극이 발생하지 않았을 수도 있었을 것이다.
물론 조현병 환자가 모두 폭력적 성향을 나타내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중증의 경우 환자 자신이나 타인의 안전을 해하는 수준의 폭력적 성향이 나타날 수 있단 게 의료계의 입장이다.
이번 사건을 계기로 의료계에선 2017년 5월 개정된 '정신건강 증진 및 정신질환자 복지 서비스 지원에 관한 법률'(이하, 정신건강복지법)을 손봐야 한다는 주장도 제기된다. 정신건강복지법은 정신질환자의 강제입원 요건을 기존보다 강화한 것이다.
강제입원은 환자의 거부를 전제로 할 수밖에 없다. 또 강제로 치료를 진행해야 하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환자의 '인권' 문제가 거론되는 이유이기도 하다. 실제 작년엔 국가인권위원회가 당사자(정신질환자)의 동의 없이 보호자가 정신질환자를 입원시키고 입원 기간을 늘린 것에 대해 '인권 침해'라며 병원에 시정을 권고하기도 했다.
결과는 어땠을까. 정부 통계에 따르면 정신건강복지법이 환자의 인권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개정된 이후 조현병 입원 환자는 20%가 넘게 줄었다. 반면 같은 기간 정신질환자의 범죄 건수는 27%가 증가했다. 특히 상해·폭행 등 폭력 범죄는 같은 기간 30% 이상 늘었다. 상관관계가 없다고 평가하기 어려운 수준이다.
생각해야할 지점은 영화 '마이너리티 리포트'처럼 잠재적 범죄자를 가려내자는 얘기가 아니다. 환자들을 적절하게 치료하고 관리하자는 것이다. 이를 두고 조현병 환자에 대한 낙인을 강화하는 것이란 반론도 있다. 범죄 사건과 정신질환을 연관지어 강조한다면 정신질환에 대한 부정적 낙인을 강화시킨다는 논리다. 하지만 묻지마 범죄자를 정상적인 사고를 가졌다고만 볼순 없다. 인권침해에 대한 막연한 우려보다는 멀쩡한 사람이 죽어나가는 현실도 심각하게 고려해야 한다.
무고한 희생자의 인권은 어떻게 보장해야 한단 것인가. 어쩌면 인권이란 이름으로 증증환자가 치료의 기회를 놓치고 있는 것일수도 있다. 하지만 인권만 강조하다가 멀쩡한 사람이 죽어나가는 상황을 더이상 방치할 순 없다. 조화롭게 갈 수 있는 방법을 찾아 줘야 한다. 다음 희생자가 당신이 될 수도 있으니까.
해외 주요 국가에서 시행하고 있는 '사법입원제' 도입도 심각하게 검토해봐야 한다. 이 제도는 남을 해칠 가능성이 있는 중증 정신질환자를 법원이 판단하고, 필요하다고 느낄 경우 강제 입원시켜 사회에서 격리하는 제도다. 정신질환 관련 흉악범죄가 생기면 도입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지만, 우리는 아직 이를 도입하지 않았다.
사법입원제는 의료진과 가족이 강제입원을 결정하는 부담을 덜어줘 환자의 회복에도 도움이 되는 제도로도 평가된다. 사회구성원을 보호하고 환자의 인권을 보호할 수 있는 대안으로도 꼽힌다. 환자의 치료와 공공의 안전을 보호하는 제도에 대한 정부의 적극적인 모색이 필요하다. 지금 이 비극이 잊혀지고 제도 도입이 흐지부지된다면 미래에 또 다른 칼부림 사건이 발생할 것이다. "그때 도입했더라면"이란 후회는 아무 의미가 없다. 지금 움직일 때다.
김명룡 바이오부장 dragong@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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