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실 제출 뒤…장관 결재한 ‘순직 해병 보고서’ 돌연 보류
[해병 순직 수사 논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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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 예천에서 호우 실종자를 찾다 순직한 고 채아무개 상병(이하 채 상병) 사건의 ‘책임 축소’ 논란이 이는 가운데, 국방부가 해병대 수사단장 ㄱ대령에게 경찰 이첩을 보류하고 이첩자료에 혐의사실을 특정하지 말라고 지시한 것이 관련 자료를 대통령실에 제출한 직후인 것으로 8일 알려졌다. 이종섭 국방부 장관이 결재까지 한 조사보고서의 내용을 사실상 뭉개는 쪽으로 사건 처리 태도가 바뀐 것이 공교롭게도 대통령실 보고 이후여서, 이런 변화에 ‘윗선’이 개입한 게 아니냐는 말이 나온다.
해병대 수사단장 ㄱ대령은 지난달 30일 오후 이종섭 국방부 장관에게 ‘임성근 사단장 등 해병대 1사단 8명에게 과실치사 등의 혐의를 적용해 경찰에 이첩하겠다’는 내용을 보고했다. 조사보고서를 검토한 이 장관은 별다른 이견 없이 결재했다.
이후 ㄱ대령은 해병대 사령부 관계자한테 “보고서를 대통령실 국가안보실에 제출하라”는 이야기를 들었다. ㄱ대령은 “수사 중인 사안”이라며 거절했다. 그러나 김계환 해병대 사령관이 다시 ‘내일 진행할 언론 브리핑 자료를 안보실에 제출하라’고 지시했고, ㄱ대령은 이날 오후 6시42분 해병대 공보실을 통해 이 자료를 안보실에 넘겼다.
자료 제출 이튿날인 31일, 앞서 나흘 전 국방부가 예고한 사건 관련 언론 브리핑과 국회 국방위원회 설명이 돌연 취소됐다. 이날 이종섭 장관은 ‘경찰 이첩을 보류하라’는 지시도 내렸다. 전하규 국방부 대변인은 지난 7일 정례 브리핑에서 “31일 (이 장관이) 국외 출장 출발 전에, ‘법적인 추가 검토가 필요해 보이니 경찰 이첩 시기를 (자신의) 출장 복귀 후로 미루라’고 김 사령관을 통해 (ㄱ대령에게) 지시했다”고 밝혔다. 또 “수사에 영향을 미칠 수 있으니 혐의를 특정하지 말고, 사실관계와 관련한 자료만 넘기는 게 타당하다는 (국방부) 법무관리관실의 건의를 받아들여 장관이 그렇게 지시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바로 전날 이 장관 자신이 결재한 조사보고서를 사실상 뒤집는 내용의 지시를 했다는 것이다.
이와 관련해 국방부는 ㄱ대령이 이 지시를 어기고 경찰에 자료를 넘겨 ‘항명’을 했다고 설명하고 있다. 하지만 ㄱ대령의 변호인인 김경호 변호사는 8일 한겨레에 “원래 경찰에 자료를 넘기기로 한 건 2일 오전 9시30분이었고, 김 사령관한테 ‘이첩을 멈추라’는 지시를 받은 건 이날 오전 10시51분으로, 이미 경찰에 자료를 넘긴 뒤였다”고 반박했다. 이 장관의 지시 이후 ㄱ대령에게 전달되기까지 ‘시차’가 있다는 주장이다.
김 변호사는 또, 지난달 31일 ㄱ대령이 유재은 국방부 법무관리관한테 대여섯 차례 전화를 받았고 “과실 있는 사람만 조사보고서에 담으라”는 취지의 이야기도 들었다고 주장했다. “ㄱ대령이 유 법무관리관에게 ‘과실 있는 사람이라는 게, (총책임자인 사단장이 아니라 채 상병이 소속된) 대대장을 말하는 것이냐’라고 묻자, 유 법무관리관이 ‘네’라고 답했다”는 것이다. 보고서에 명시된 임성근 사단장 등의 혐의를 삭제하라는 요구로 받아들여질 수 있는 대목이다.
하필이면 ㄱ대령이 대통령실에 관련 자료를 제출한 이후 이런 일이 벌어진 탓에, 군 안팎에선 국방부의 태도 변화에 대통령실의 압박이 작용한 게 아니냐는 말이 나온다. 전하규 대변인은 “윗선의 개입은 전혀 사실이 아니다”라고 부인했다. 복수의 대통령실 관계자도 “말도 안 되는 얘기”라고 선을 그었다.
이날 군인권센터는 서울 마포구 사무실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임 사단장 등 지휘부가 ‘바둑판식으로 무릎 아래까지 들어가서 찔러보면서 정성껏 탐색할 것’이라는 등 “안전을 무시하고 무리한 지시를 남발하다가 사고가 발생했다”고 지적했다. 이들이 공개한 채 상병 소속 부대 카카오톡 대화 내용을 보면, 임 사단장은 사고 당일인 18일 오후 4시22분 ‘특히 포병이 비효율적’ ‘바둑판식 수색정찰을 실시할 것’ 등을 지시했다. 포병은 채 상병이 소속됐던 부대다. 임 사단장은 ‘군 기본자세 유지(특히, 방송차량이 올 시)’ ‘복장 착용 미흡, 해병대가 눈에 확 띌 수 있도록 가급적 적색티 입고 작업’ 등도 지시했다.
한편, 해병대는 이날 오전 해병대 사령부에서 보직해임심의위원회를 열어 ㄱ대령의 보직해임을 의결하고 그에게 결과를 통보했다.
신형철 기자 newiron@hani.co.kr 김가윤 기자 gayoon@hani.co.kr
지난달 호우 피해 지역에서 실종자 수색 작업 도중 순직한 해병대 고 채아무개 상병의 유족이 언론에 채 상병의 이름을 보도하지 말 것을 해병대사령부를 통해 요청해왔습니다. 한겨레는 유족의 뜻을 존중하여 ‘채아무개 상병’으로 표기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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