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염 일수 ‘부울경 최다’ 창녕군… 쓰러진 어르신 한 분도 없는 이유

박상현 기자 2023. 8. 9. 03: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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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 기상청의 특별한 재난문자
농촌 어르신 자녀들에게 폭염 재난 문자를 보내는 아이디어를 낸 부산기상청 예보관들. 왼쪽부터 김영남 주무관, 이솔지 주무관, 김연매 사무관, 김수아 주무관. /부산지방기상청

“기상청서 다녀간 후로 억수로 더운 날 자식들한테 ‘엄마 문자 봤나. 오늘 밭일 나가지 마라. 위험하단다’ 하면서 전화가 오대요. 그 바람에 볕에도 안 나가고 조심하지예.”

경남 창녕군에 사는 어르신 27명의 자녀들은 폭염(暴炎)이 극심할 때 부산지방기상청에서 보낸 특별한 재난 문자를 받는다. “오늘 창녕이 어제보다 더우니 부모님께 외출은 피하시고 시원한 곳에서 쉬시라고 전화 부탁드린다”는 내용이다. 유어면 회룡마을 김순자 이장은 “멀리 떨어져 사는 자녀들이 안부 전화를 자주 거니 마을 곳곳에서 어르신들 웃음소리도 들리고, 뙤약볕에 무리하게 밭일을 안 나가서 (온열 질환) 사고도 없어졌다”고 했다. 작년 창녕군에선 내국인 온열 질환 사망자가 있었지만 올해는 없다. 작년 전국 온열 질환 사망자는 9명인데 올해는 24명이 돼 3배쯤으로 늘었다.

지난 6월 말부터 7월 중순까지 부산기상청 예보과 김연매(48) 사무관, 김수아(26)·김영남(47)·이솔지(33) 주무관 등 4명은 창녕군을 훑으며 어르신들을 만났다. 이후 여름철 폭염 사고 대부분은 농촌에서 발생하고, 재난 문자를 보내도 어르신들은 안 볼 때가 많기 때문에 자녀들에게 재난 문자를 보내자는 아이디어를 냈다.

예보관들은 한 달여간 어르신들을 일일이 만나고 자녀들과 직접 통화한 뒤 재난 문자를 보내도 되는지 허락을 받고, 개인정보동의서를 우편으로 보내는 작업을 했다. 그 결과 72명의 어르신과 만나 자녀 27명의 연락망을 확보했다. 효과는 바로 나타났다. 김연매 사무관은 “폭염에도 농사일 나가던 어르신들이 이젠 바깥으로 안 나가신다고 들었다”며 “통보식 재난 문자가 아니라 한 건을 보내도 받는 사람에게 의미 있는 재난 문자를 만들고 싶었다”고 했다.

재난 문자 내용도 매번 다르다. 김수아 주무관은 “단순히 ‘폭염이니 조심하라’는 내용을 반복하면 경각심이 떨어질 것 같아 한낮 기온이 37도까지 오르는 날, 열대야(熱帶夜)가 예상되는 날, 습도가 높은 날 등 그때그때 조심해야 할 내용을 담아 문자를 보내고 있다”고 했다.

부산기상청이 창녕군을 주목한 것은 관할 지역 중 한 해 폭염 일수가 가장 많은 곳이기 때문이다. 이솔지 주무관은 “최근 10년간 폭염 일수를 뽑아보니 창녕은 일년 중 31.4일이 폭염이고, 최고기온도 가장 높았다”며 “특히 농촌이라 폭염에 취약한 어르신이 많은 점을 고려해 창녕부터 재난 문자를 시작해보기로 했다”고 말했다.

곡절도 많았다. 김영남 주무관은 “자녀분들이 보이스피싱으로 의심해 부산기상청으로 ‘김영남 주무관이란 사람이 실제로 있느냐’는 식의 확인 전화가 쇄도했다”며 “그래도 재난 문자를 받은 자녀 분들이 ‘덕분에 부모님께 안부 전화 한 번 더 드리게 된다’며 고맙다는 말씀을 많이 해주셔서 뿌듯하다”고 했다.

기상청은 창녕군의 실험을 바탕으로 오는 12월 맞춤형 재난 문자 확대를 결정할 계획이다. 다만 예보관들이 어르신들을 일일이 만나야 하는 작업이라 다른 지역으로 확대하려면 시간이 더 걸릴 것으로 보인다. 거제시에 사는 안덕열씨는 “창녕에 어머니가 혼자 계시는데 기상청에서 문자 온 날은 특히 위험한 날이니 꼭 안부 전화를 드린다”며 “기상청 덕에 어머니 목소리를 자주 듣게 돼 좋다”며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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