셰익스피어 작품, 학교에서 더 이상 못 읽는다? 美 플로리다에 무슨 일이
‘돈 세이 게이’ 법, 어기면 형사 고발
“성적 내용 빼고 발췌본만 교육”
미국 공화당의 유력 대선 주자 중 한 명인 론 디샌티스(44)가 주지사로 있는 플로리다주(州)의 일부 학교에서 영국의 대문호 셰익스피어의 작품을 가르치는 것을 꺼리고 있다고 지역 신문 템파베이 타임스가 8일(현지 시각) 보도했다. 이는 앞서 작년 3월 플로리다주가 일선 학교에서의 성적 지향·성 정체성 교육을 금지한 이른바 ‘돈 세이 게이(Don’t Say Gay·게이라고 말하지 말라)법’을 통과시킨 데 따른 것이다.
이 법에 따라 교사가 성적인 내용을 언급할 경우 형사 고발을 당할 수 있는 상황에서 교사들이 셰익스피어 작품 중에서 선정성 논란이 일만한 부분을 다루는 것을 피하고 있다는 것이다. 민주당 진영에서는 “교육에 정치가 과도하게 개입해 아이들의 학습 선택권을 지나치게 침해하고 있다”고 반발하고 있다.
템파베이 타임스에 따르면 플로리다주 탬파의 힐스보로 카운티 학교들은 최근 셰익스피어의 작품 중 특정 부분만 수업에 사용하기로 했다. ‘돈 세이 게이’ 법에 저촉된다는 논란이 일 만한 부분들은 학교 커리큘럼에서 빼기로 했다. 이에 따라 이 지역 초·중·고 학생들은 햄릿, 로미오와 줄리엣과 같은 작품의 전문(全文)이 아닌 발췌본만 공부하게 된다고 이 매체는 전했다. AP통신은 “학생들이 셰익스피어 작품 전체를 파악하고 싶다면 학교 밖에서 책을 읽어야 할 것”이라고 했다.
힐스버러 카운티 내 진보 성향 이사진들은 이 법 시행에 대해 강력하게 반발하고 있다. 힐스버러 카운티 공립학교 학교 이사진 소속인 제시카 본은 최근 페이스북에서 “대다수의 주의원들과 주지사가 직접 임명한 법이 지역 사회의 의견 수렴 없이 거친 규칙을 밀어붙이고 있다”고 했다. 이 지역 학교 교사인 조셉 쿨은 “셰익스피어 작품에 일부 ‘선정성(raunchiness)’가 있는 것은 사실이다. 그 당시에 그것이 인기가 많았기 때문”이라면서도 “로미오와 줄리엣의 관계를 지금 관점으로 받아들이는 것은 터무니없다”고 했다. 이어 “(셰익스피어 작품을 검열하는 것을 보고) 전세계가 우리를 비웃고 있을 것”이라고 했다.
작년부터 플로리다의 다른 학생, 학부모, 교사들은 “돈 세이 게이법이 표현의 자유를 침해한다”며 지난해 집단 위헌 소송을 냈다. 그러나 보수 성향의 플로리다주 대법원은 돈 세이 게이법에 제동을 거는 소송을 줄줄이 기각하고 있다.
플로리다주 외에도 미 전역 곳곳에서 공화당이 집권한 주(州)들이 동성애와 흑인 차별 실태 등 특정 주제를 다룬 책을 서가에서 퇴출시키려는 움직임이 일고 있다. 미국도서관협회(ALC)에 따르면 작년 한 해 동안 특정 도서를 학교·공공 도서관 금서로 조치해달라고 요청한 건수는 1269건이다. 전년(729건) 대비 74% 증가했다. 이는 ALA가 20년 전 처음 집계를 시작한 이래 최고치다. 금서 요청을 받은 도서 상당수가 LGBTQ(성소수자)에 관한 내용을 담거나, 흑인 차별 실태 또는 경찰의 폭력성 등을 자세히 다룬 책이다. 보수 성향의 학부모들이나 시민단체들이 주로 문제를 제기하고 있다고 한다. WP는 “일부 학부모 단체들이 시작한 금서 요청에 보수 정치권이 본격 가세하면서 검열·금서 조치가 전국적으로 확대되는 추세”라고 했다.
Copyright © 조선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김숙 “한가인 결혼식 가서 축의금 5만원 냈다”...사과한 이유는
- 김도영, 2홈런 5타점... 한국 쿠바 잡고 4강 불씨 되살렸다
- 日 ‘다카라즈카’ 음악학교, 여학생 뽑을 때 외모 안 따진다
- 강원 춘천 아파트, 지하실 침수로 정전...720세대 불편
- 손흥민 130번째 A매치 출격... 쿠웨이트전 베스트11 발표
- ‘정년이’ 신드롬에 여성 국극 뜬다… 여든의 배우도 다시 무대로
- 러시아 특급, NHL 최고 레전드 등극하나
- 김대중 ‘동교동 사저’ 등록문화유산 등재 추진
- 국어·영어, EBS서 많이 나와... 상위권, 한두 문제로 당락 갈릴 듯
- 배민·쿠팡이츠 중개 수수료, 최고 7.8%p 내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