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재붕의 디지털 신대륙] 전 세계 Z세대가 ‘코리아 잼버리’를 실시간으로 보고 있다
예민한 화장실·샤워실 문제 등 소셜미디어 타고 무차별 확산
디지털 세대 커뮤니티 시끌… ‘바뀐 잼버리’ 지금이라도 알리자
새만금 잼버리 사태로 우리나라 정치권은 물론이고 세계가 온통 시끌시끌하다. 아이들 축제를 열어놓고 ‘아프다, 벌레에게 물렸다, 더위에 쓰러진다, 샤워 시설도 엉망이고 얼음물 값까지 바가지다’ 온통 이런 불만과 끔찍한 사진으로 뒤덮이게 만들었으니 망신도 이런 망신이 없다. 우리는 과연 무슨 잘못을 한 것일까? 근본 문제는 잼버리 디지털 세대가 어떤 경험을 원했는지 이해하지도, 원하는 걸 준비하지도 못했다는 것이다. 어른들 시각으로, 어른들 관심에 맞춰, 오랜 관행대로 사업을 준비한 게 잘못이다. 이제 관행과 기준을 바꿔야 한다.
문제점을 살펴보자. 새만금을 잼버리 장소로 선정한 것은 세계 청소년에게 최적이기 때문이 아니라, 경제적 효과 6조원이라는 어른들의 정치적 의지와 의미에 따른 것이다. 우리나라 국제 행사는 대부분 그렇게 선정하고 다음에는 운영위원회를 결성하며 준비를 시작한다. 제일 먼저 해외 탐방, 벤치마킹이 시작된다. 참 관련성 없어 보이는 데에도 많이들 간다. 갔다 오면 부지런히 회의를 하고 시설 공사에 착수한다. 돈은 주로 어디다 썼을까? 인프라 건설비, 인건비 비율이 높고 참가자들 불만이 폭발한 화장실, 샤워실, 그늘막, 대형 에어컨 설비, 방충 설비 등등 조금 사소해 보이는 비용 투자는 6%에 불과했다고 한다. 우리나라 지자체 축제 행사 준비는 이 정도면 괜찮은 편이라고 한다. 말하자면 아예 기준이 소비자 경험과 무관하다는 거다. 그래서 어떤 도의원은 ‘곱게 자란 애들이 문제’라는 발언까지 했다.
153국 Z세대 아이들 4만3000명이 새만금에 모이면 인터넷 파이프라인 4만3000개가 세계로 펼쳐진다. 더구나 지난 3년간 코로나 봉쇄로 인터넷 활용도가 급상승한 아이들이다. 도착부터 이어지는 모든 경험이 소셜미디어를 타고 전 세계로 퍼져 나가 커뮤니티 사이트를 도배하기 시작한다. 사춘기 청소년들에게 가장 중요한 경험은 어디서 시작될까? 당연히 화장실과 샤워실, 예민한 영역이다. 더러워도 안 되고 남녀 구별도 명확해야 하고 길게 기다려서도 안 된다. 그런데 물이 넘치는 더러운 화장실, 내부를 볼 수 있는 샤워실, 이런 건 사진 몇 장 안 된다고 해도 10대 사이에선 폭발적으로 전 세계로 퍼져 나갈 뉴스 거리가 된다.
하필이면 폭염이 계속되어 나무 그늘 하나 없는 야영장은 그야말로 끓어 올랐다. 온열 환자가 속출했다. 쓰러져 있는 아이들 모습이 전 세계로 생중계된다. 밤이 되자 모기 떼가 습격한다. 모기에 화상 벌레라는 무서운 해충까지 창궐하는 지역에 몰아넣고 ‘생존 체험’이라고 우기려고 하니 아이들이 무시무시하게 물린 다리 사진을 찍어 올려놓고 ‘오징어 게임 실전 현장’이라는 제목까지 달아 전 세계로 날리는 것이다. 거기다가 곰팡이 계란에 얼음물 바가지요금까지 복장 터질 일이 끊이질 않았으니 전 세계 커뮤니티가 들썩거릴 만도 했다. 아무리 사서 고생한다는 잼버리라고 하지만 궁극 목표는 인생에 남길 행복한 경험이지 결코 참혹한 경험이 아니다. 이걸 왜 미리 예상 못 했을까?
코로나 봉쇄 3년간 아이들은 메타 세상에서 만나 끈끈하게 뭉쳤다. 10대 아이 4만3000명이 새만금에 왔다면 전 세계 10대가 모두 실시간으로 함께 보고 있는 셈이다. 거기에 부모들까지. 이 정도면 미국 대통령급의 절대적 권력이 새만금에 캠핑 온 것으로 판단해야 했다. 당연히 이 권력자인 아이들이 도착해서 떠날 때까지 ‘어떤 좋은 경험’을 하게 할 것이냐를 세심하게 준비해야했다. 그런데 아무도 고민하지 않았다. 애들이 좋아하는 틱톡이나 제페토 같은 플랫폼에서 데이터 분석만 좀 했어도 아이들이 어떤 것에 민감하고 어떤 것에 열광하는지 알 수 있었을 텐데 애당초 그런 시도조차 없었다. 아마도 잼버리 체험 프로그램은 알차게 잘 짰을 것이다. 날씨만 도와줬다면 별다른 불평 없이 넘어갔을 수도 있다. 문제는 그들이 중시하는 경험이 무시당했다는 거다. 어른들 기준을 적용했으니까.
디지털 시대 시민은 곧 권력자다. 정부와 지자체는 큰 사업 땄다고, 돈 된다고 자랑할 것이 아니라 왕이 되신 잼버리 참가자가 어떤 경험을 원하는지 세심하게 배려하고 준비해야 했다. 생각보다 어려운 일이 아니다. 아이들이 원하는 것은 화려한 의전이 아니라 사소한 경험을 잘 챙겨주는 것이다. 더욱이 잼버리에 참여할 만큼 고생을 사서 하겠다고 나선 아이들이다. 그들이 원한 것은 세심하고 따뜻한 배려였다. 화장실 좀 넉넉히 설치하고 청소도 자주자주 깨끗이 해주고 예민한 샤워실도 좀 꼼꼼히 만들어 배려해줬으면 어땠을까? 군데군데 우리 도시에 많은 바닥 분수도 설치해 아무 때나 열 식히며 놀게 하고 신호등 앞에 설치해서 칭찬받는 대형 그늘막도 미리 이곳저곳 설치하고 공짜 얼음물도 아무 때나 먹을 수 있게 해줬다면 어땠을까? 내 자식처럼 배려하려는 애틋한 마음이 있었다면 일주일 전에도 충분히 할 수 있는 일이었다. 실제로 문제가 뜨겁게 떠오르자마자 많은 부분이 바로 개선되지 않았는가.
세심한 배려는 전 세계의 팬덤을 만들 수 있지만 반대로 약간의 방심은 엄청난 비난 쓰나미를 몰고 오는 법이다. 새만금은 대회 유치로 6조원 경제 효과를 노렸지만 오히려 전 세계 비난의 상징이 되어버렸다. 마음을 사는 일은 따뜻한 배려심에서 출발한다. 마음을 사긴 어렵지만 잃는 건 순식간이다. 태풍 북상으로 새만금 철수가 시작되었다. 이제 새만금 잼버리가 아니라 코리아 잼버리의 시작이다. 아직 늦지 않았다. 이참에 우리가 얼마나 따뜻이 배려하는 나라인지 세계 아이들에게 제대로 보여주자. 그 팬덤이 메타 세상을 타고 세계로 퍼져 나간다면 미래 자산 수조원의 가치로 우리에게 돌아올 것이다. 좋은 경험을 디자인하라. 디지털 문명 시대, 새만금을 교훈 삼아 어른들이 마음에 새겨야 할 새로운 기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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